서울신학·총신신대원/실천신학

태어나려는 자

예림의집 2015. 7. 7. 09:11

태어나려는 자

      

내 생에 최고의 순간이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나는 무슨 글을 써야할까 하고 고민했다. 21년을 살면서 여러 일들이 많았지만 걔 중에서 무엇이 최고였다고 꼽을 만큼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그러나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최고의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부터 쓸 이야기는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경험이다.

나는 아주 작은 것에도 집중을 놓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3~4살 때의 기억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잘 기억하고 있다. 어릴 적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현재에 필름과 같이 남아 있다는 점은 신기하면서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것은 내가 더 넓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족쇄가 되었다. 사소한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다 보니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할 무렵에는 넓어진 환경에 익숙하지 못해 매우 혼란스러웠다. 일말의 정리도 없이 나는 대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느꼈다. 세부적인 정보를 모두 다 수용하면서 나는 완전히 겁쟁이가 되고 말았다. 앞일을 신경 쓰는 날이 많아졌고 결정을 내리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 또한 늘어났다. 나는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문제를 느꼈다. 아무 일도 하기 싫고 무기력했다. 그리고 별 일 아닌 것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몸살을 앓거나 불면증에 걸리는 등의 신체적인 부분에서도 탈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고심 끝에 1학기만 마치고 바로 휴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고향인 울산에 내려가 요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학교생활처럼 무기력하게 몇 달을 지냈다. 그 뒤에는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떠오르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보았지만 여전히 나는 의욕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책이나 만화조차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는 듯 했다. 그러다 어느 날 TV프로그램에서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걷기가 좋다는 정보를 얻었다. 나는 반신반의 했지만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에 오래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은 편한 운동화의 끈을 조여매고, 나는 무작정 길을 나섰다. 그래서 집에서 걸어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구립 도서관으로 가기로 했다.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는 숲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적지 않은 나무로 이루어진 나지막한 산이 있었다. 인도 옆에는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뻥 뚫려 있었다. 도로의 차들은 쌩쌩 달리고 있었고 나는 풀냄새와 흙냄새를 맡으며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목적지인 도서관에 도착할 때 쯤, 놀랍게도 내 머리 속은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뿌듯함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나의 신경증과 무기력증이 완화된 것이다!

이 날 나는 4시간 동안 주구장창 걸었다. 그런데도 피곤하기는커녕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뒤부터 나는 여러 운동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필라테스(요가와 유사한 실내운동)와 수영을 배우며 나의 예민한 성격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었다. 해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신경질적이고 무기력할수록 신체 활동을 늘려야 했던 것이다. 좀 더 많이 움직이고 바깥의 햇살과 공기를 느껴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운동을 시작한지 3주가 되지 않아 나는 놀라울 정도로 상태가 나아짐을 느꼈다. 더 이상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고, 사람들을 멀리 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나 함께 놀기도 했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은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이제야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 같네. 네가 웃으니까 훨씬 낫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 놀라운 변화는 단지 겉모습으로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에도 무언가가 달라진 것이다. 무기력하고 아무 것에도 흥미가 없었지만 드디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영어가 좋고 또한 교육에 대한 흥미가 있었다. 오래 전에 알고 있었던 사실 같았지만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새로 태어났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겪었던 힘든 상황들은 모두 하나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태어나려는 자였다. 내가 말하는 생에 최고의 순간은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니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동 이전에 내 모습은 알을 깨지 못한 사람이었고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자였다. 나는 이 순간을 경험케 하신 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다. 그 분은 내 삶에 개인적으로 찾아 오셔서 내가 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휴학을 할 때 많이 망설였고 또한 복학을 할 때에도 두려운 마음이 앞섰지만,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시기도 했다. 나는 비로소 자유함을 얻었다. 앞으로의 내 삶이 어떨지 날마다 기대 된다. 부화한 새가 하늘을 멀리 나는 것처럼 나도 큰 세계를 꿈꾸며 나아갈 희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