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상을 받는 성도 (막 10:28-31)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 시간에 “큰 상을 받는 성도”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연말을 맞이하여 특별히 상에 대한 말씀을 준비해보았습니다. 상 받는 것 싫으신 분 안 계시죠? 우리 성도들은 세상이 주는 상은 무관심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은 모두 받으시기 바랍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상은 잘 아시는 대로 노벨상입니다. 노벨상은 1896년 스웨덴의 화학자이며 발명가인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상으로 매년 12월 10일마다 인류복지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 상을 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상을 받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이와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상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힘쓰면 충분히 그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이 얼마나 많고 또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이걸 다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하다가 그 중 몇 가지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상을 주시되 큰 상을 주십니까?
1.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큰 상을 주십니다.
시19:11에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했습니다. 여기 큰 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큰 상을 주십니다. 작은 상이 아닙니다. 큰 상을 주십니다.
목동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목동이 왕이 되는 큰 상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다해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릴 때도 전무후무한 지혜와 구하지 아니한 권세와 수와 부와 귀까지도 주셨습니다. 늘 은혜를 사모하여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그 시대를 이끌어간 리더로서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신28:1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하셨고 10절에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113:5-9에도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니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 고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 가 되게 하시는도다” 했습니다.
눅 11장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어느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27절) 예수님 무엇이라 대답했습니까? 28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성경에 동정녀 마리아가 복 있는 여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복 있는 사람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래서 계1:3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런 가장 큰 상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2. 복음전도자에게 상을 주시되 큰 상을 주십니다.
본문 29-3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여기 전도자에게 하늘과 땅의 큰 상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를 포기하고 복음의 멍에를 멘다는 것이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유로운 야생마가 타는 자를 떨어내려고 뛰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분이 자기 아들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자기가 아들에게 목회자의 길을 권했답니다. 그러자 아들이 놀라 정색하며 묻기를 “아버지, 그럼 제 인생은 어떻게 됩니까? 제 사생활은 어떻게 됩니까? 제 꿈은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더 이상 말을 걸지 못했답니다. 그 아들 믿음은 없지만 성직자의 길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로서는 사생활은 사라지고 일생 십자가 지고 나를 죽이고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감상적으로 따르려는 자에게 “여우들도 굴들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둥지 들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도다.” 라고 거절하셨습니다. 그 뿐일까요? 예수님을 따를 때 때로는 가족의 행복과 관계 없는 결단을 내리기도 하고, 인간적인 권리도 버릴 때도 있고, 자기 생명까지도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니기에 그 일을 기쁨으로 충성하는 자에게는 큰 상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상을 말씀하시면서 현세의 복을 더 강조하신 이유는 뭘까요? 핍박도 함께 받는 십자가 지는 길이지만 현세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믿음이 있다면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주의 일을 한다는 그것 때문에 믿음의 어머니가 되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얼마며, 아버지처럼 저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이 얼마며, 저를 격려해주고 따라주는 형제자매가 얼마입니까? 전토도 100배나 주신다 했으니 교회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채워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의 자손들에게 복을 왜 그리 많이 주시는지 모르고 자식 자랑했다가는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런 걸 보면서 성경 말씀은 틀림없는 말씀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사생활을 버린 자에게 왜 큰 상을 주시겠습니까? 그런데 사역자가 아닐지라도 그 상을 받을 수 있어요.
마10:40-41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단12:3에서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도 전도하시면 하늘의 상이 크단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큰 상을 주십니까?
3. 담대한 믿음에 상을 주시되 큰 상을 주십니다.
히10:35-36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담대한 자만이 큰 상을 받습니다.
보세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담대한 사람들입니다. 담대하기에 나라를 다스리고 담대하기에 큰 기업을 일으키고 담대하기에 큰일을 합니다. 모세가 담대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 앞에서도 떨지 않고 하나님의 기적을 본 것입니다. 담대하지 못하면 100만원도 두려워 쥐고는 벌벌 떱니다. 벌 때는 떨지 않는데 신기하게 써야 할 때는 떱니다. 이래가지고 뭘합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합니다. 담대해야 응답을 답더라도 큰 응답을 받습니다. 그래서 시27:14에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기도를 해도 담대하지 못하면 구하는 것조차 한심스럽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것을 구하지 못합니다.
딤후1:7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운 맘 주신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은혜 받으면 연약한 여성들도 여장군이 됩니다. 모두 장군이 됩니다. 담대한 마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담대한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사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나폴레온 힐이라는 철학자는 현대인들을 파괴하는 7가지 공포가 있는데 그것은 가난에 대한 공포, 질병에 대한 공포, 혹시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을까에 대한 공포, 사랑의 상실에 대한 공포, 늙음에 대한 공포, 자유를 상실할까봐 하는 불안의 공포, 죽음의 공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 받지 못한 마음입니다. 바울은 담대하여 말하기를 몸을 떠나 천국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천국의 소망과 영광도 담대한 자의 것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담대한 사람을 크게 쓰시고 큰 것을 이루어주십니다.
4. 신앙의 고난을 받을 때 상을 주시되 큰 상을 주십니다.
마5:11-12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여기 상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바울의 상이 큽니다. 그는 온갖 박해를 무릅쓰고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권능 목사님의 상이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먹지 못하면서 박해를 이기며 수십 개의 교회를 개척하며 전도했습니다.
주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은 절대 공짜가 아닙니다. 하늘의 영광된 상과 순교자의 자손에게 한없는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를 보세요.
히11:24-26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했습니다. 여기 더 큰 재물은 재물이 아니라 더 큰 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배가 폭풍을 만나 어떤 무인도에 도착하였습니다. 배는 다 깨졌지만 다행히 무인도에서 몇 달 동안 살 수 있는 식량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땅은 비옥해서 씨앗을 심기만 하면 몇 달 후에는 풍성한 추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씨앗을 심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땅에 황금이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흥분하여 씨를 심는 것을 잊고서 황금 찾기에 바빴습니다. 몇 달 후에 황금은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 그들의 식량은 바닥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밭에 나가 땅을 일구어 씨를 뿌렸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을 바라보며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혹시 우리들은 그런 사람이 아닌지요? 이 세상이 좋아 천국에 관심이 없이 모든 것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살이도 필요지만 천국 가서 상 받을 준비에 더 힘써야 합니다. 상을 무시하는 것이 성숙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에는 하나님의 목표와 뜻하신 바가 있으니 하나님의 상을 무시하지 말고 바울처럼 상주심을 바라보며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에게 주실 상을 가득히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도 주시고 영원한 나라에서도 주십니다. 상이란 받는 사람도 기쁘지만 주시는 분도 기쁩니다. 그러므로 상 받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공경도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복음전도하고 말씀대로 살며 담대한 믿음 가지고 신앙의 고난을 기쁨으로 받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상을 받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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