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교회 사역...♡з/말씀노트

천국길의 장애물 (고전 10:1-11)

예림의집 2015. 3. 7. 11:23

천국길의 장애물 (고전 10:1-11)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들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이 시간에 “천국길의 장애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 죤 번연이 쓴 천로역정의 기독도와 같이 장차 멸망할 장망성을 떠나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이 땅의 나그네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온전히 이를 자신이 있습니까?


전에 소림사의 18동인이라는 무술영화가 있었습니다. 소림사에서 무술을 연마한 모든 이는 하산하기 전 반드시 의례와 같이 18동인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쏟아지는 기왓장, 예고 없이 찔러대는 무수한 창칼과 조여드는 벽 그리고 여러 가지 권법을 구사하는 구리 옷을 입은 18동인들, 그 관문 하나하나가 얼마나 통과하기 어렵고 스릴이 있고 박진감이 넘치든지 한 동안 큰 인기를 끌었던 쿵후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미래의 천국은 물론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습니다. 행14:22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했습니다.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관문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관문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할 가나안 땅은 바로 천국의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천국 가는 길에 어떤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1. 천국 가는 길에 무지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1-4절에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홍해 사건을 세례를 예표하는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신령한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바울 아주 성경해석 잘하고 있어요. 구약은 신약을 만날 때 올바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경해석법일까요? 그것도 포함되지만 바울이 진정 알기를 원하는 것은 바로 홍해와 광야사건을 통해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다 알길 원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다면서도 구원의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복음을 정확히 알아야 확실한 믿음에 서서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예비하신 구원의 은혜와 성령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복음에 대한 무지의 관문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는 물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일지라도 그 의미를 모른다면 그들은 그냥 육체가 기적을 경험한 일밖에는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세례의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세례를 줍니까? 예수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확실히 믿는 사람입니다. 세례의 다른 자격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준비를 위한 과정이고 세례 받을 가장 중요한 자격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세례란 죄씻음 받은 표인데 더 자세히 말하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영광스런 구원에 들어간 즉 하나된 신비적 연합을 말합니다. 신비가들이 합일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우리는 신비적 연합이라는 말을 씁니다. 왜냐하면 그들처럼 경건의 어떤 방법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안에서 하나된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됨을 누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2:3-8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루신 이 하나된 사실을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속죄를 믿음으로 죄 용서를 받았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옛사람이 못 박힘을 믿음으로 거룩해지며,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승천하여 승리와 영광의 자리에 이르렀음을 믿음으로 영화의 영광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그럼 다 끝난 것이냐? 그건 이미와 아직이라는 구원의 시제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이미이지만 그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는 아직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으로 예수 안에서 이미 이룬 것을 확신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 믿음의 분량은 시작이기에 각자 다릅니다. 각인의 분량  만큼 그 은혜를 누립니다.

 

이 복음의 확신에 무지하다면 어떻게 천국의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겠습니까? 죄 사함의 확신이 없이 어찌 마음의 평안이 있겠습니까? 예수 안의 승리와 영광을 모르고 어찌 기쁨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이 무지의 관문을 잘 통과하시기를 바랍니다.


 

2. 천국 가는 길에 우상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7절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는 길에 시험이 있었습니다. 우상의 시험입니다.


출 32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에 그 순간을 못 참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32:4) 하면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그 놀라운 은혜로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그토록 빨리 망각하고 모세가 없다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숭배하다니 이해가 되십니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의 우상은 종교적인 우상도 우상이지만 골3:5에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이 우상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도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이 우상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바로 무지몽매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믿음으로 가지만 씻어야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계22:14-15에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예수 믿는다면서도 더러운 맘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 은혜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마음의 방탕이 있습니까? 마음의 살인이 있습니까? 마음의 탐심과 우상과 음행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씻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 받지만 깨끗이 씻은 후에야 누릴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깨끗이 씻어보세요. 진정 엎드려 회개해 보세요. 더 낮추어 보세요. 더 사랑해 보세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심령 속에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천국 가는 길에 육체의 정욕이라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보세요. 8절에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이 사건은 민 25장의 바알브올 사건을 말씀한 것입니다.


모압왕이 이스라엘을 범죄케 해서 하나님께 버림 받게 하려고 미인계를 썼습니다. 거기에 많은 이스라엘의 청년들이 미혹되었습니다. 이 범죄로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거룩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육체를 가졌으니 이 육체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경고합니다. 고전3:16-17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골3:5-6에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남은 때를 평안하게 살고자 한다면 마음으로부터 거룩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특별히 돌보아 주십니다. 그래서 고전6:13에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우리 몸을 거룩하게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위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을 잘못 쓰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 습관 버리지 못하면 진리를 배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딤후3:6-7에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거룩하지 않으면 주님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난 성령으로 변화 받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마음은 변화되어도 육체는 그대로입니다. 육체의 본능은 변함이 없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육체의 본능을 통제할 수 있지만 통제 불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약점을 알고 피하는 것이 진정 자기를 아는 겸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천국 가는 길에 의심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9절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민 21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 물게 하신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도 조금만 어려운 일을 당하면 믿지 못하고 불평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도우신 우리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도우실 거야. 이렇게 믿어야 하는데 그들은 눈에 전개된 상황만 보고 불신했습니다. 이 믿지 못한 것이 곧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3:7-9에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기에 말씀하지 않으실지라도 믿어야 합니다. 체험 없어도 우리 앞길이 칠흑 같이 어둡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잡히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좀 믿어 드리세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세요.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오래 함께 살다보니 서로 알고 서로 믿기에 말이 필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표적을 주시면 감사하지만 표적을 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은 동일하시니 감사한 일입니다. 이것이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표적만 구합니다. 보여주면 또 보여 달라. 보여주면 또 보여 달라. 안 보여줘도 믿을만한 때가 되었는데 표적만 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가는 길에 어떤 고독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믿고 용기백배한 믿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5. 천국 가는 길에 원망과 불평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10절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했습니다. 민 11장에 원망하는 일이 있지만 여호와의 불이 진만 살랐지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민 16장에 고라사건을 가리킨 말씀으로 보입니다. 고라와 그 일당이 너만 하나님의 종이냐고 모세의 권위를 대항하다가 땅이 입을 벌려 삼키고 당을 지었던 250명 족장들까지 불이 태우고 이 일로 일만 사천 칠백 명을 염병으로 치셨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분수에 넘쳐서 모세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러니까 감사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지도자를 세워 주신 것도 감사하고 교회의 권위에 따를 수 있게 하신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환경이 어떻든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은혜로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성령의 은혜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 현실이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누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는 길에 많은 시험이 있었듯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길에도 통과해야 할 많은 환난과 방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될 뿐 아니라 복음에 대한 무지와 우상과 육체와 불신과 원망의 시험을 다 이기고 항상 예수 안에서 기쁨으로 신앙생활하므로 장래 천국만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동안에도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