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신자가 당하는 환난, 연단을 성경에서는 십자가라고 부른다.

예림의집 2014. 10. 14. 15:30

3. 신자가 당하는 환난, 연단을 성경에서는 십자가라고 부른다.


루터는 그의 십자가 이해를 시편강의 다음에 이어진 로마서 강의(1515-1516)에서 좀 더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롬 5:3-5에 대한 주석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의인을 다루시는 행동방식을 또 한 번 꺼내면서 의인의 삶에 왜 십자가가 필요한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신자에게 십자가가 필요한 것은 신자의 신분에 기인한다. 신자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으로 살아간다. 루터에 의하면, 신자는 하나님이 의를 전가시켜 주심을 통하여서 그리고 그가 이 의를 믿음으로 의로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의롭다”기 보다는 “의롭게 되어졌다”고 칭해져야 한다. 그리고 “의”라기 보다는 “칭의”라고 칭해져야 한다. 신자는 “항상”의로워져야 하는 칭의의 과정 속에 있다. 오직 그리스도 자신만이 이미 의로우시고 완성된 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자의 신분 상태로 인하여 의인의 현재의 삶은 필연적으로 모순적인 삶이다. 신자들은 양심 안에서와 영 안에서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지고 있지만, 육체와 세상과 악마와는 불화를 가지고 있다.

루터는, 롬 5:3-6에 대한 주석에서, 문장론의 저자인 롬바르트의 소망을 이루는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비판하면서, 그의 십자가 이해를 계속 드러낸다. 그는 여기에서 신자가 칭의 후에 당하는 환난을 믿음, 소망, 사랑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하고 이 환난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 말하는 이런 환난은 하나님의 자비의 증거로 본다. 그는 자비로 말미암은 환난과 심판으로 말미암은 환난을 구분한다. 이런 하나님이 주시는 환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체와 같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유물을 흠모하면서도 환난과 역경을 피하는 자는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환난들이 성경에서는 본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칭해진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환난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들이다. 그는 계속하여 환난의 목적은 신자로 하여금 인내를 배우도록 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연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받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이런 연단이 필요한 것은 이간 안에 남아 있는 원죄 때문으로 본다. 하나님은 자신이 받으시는 아들 마다 이런 연단을 허락하신다고 마한다. 이런 환난만이 참된 소망으로 이끈다고 본다. 소망은 롬바르드가 말하는 것처럼 공적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망은 환난과 연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환난이 참된 사랑으로 이끈다. 그는 이런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Caritas Dei)”이라고 부르고 “인간의 사랑(Amor Homini)”과 구별시킨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어지나 인간의 사랑은 반복되는 행동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덕이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인간의 연민을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연님으로 바꾸고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감정(purissima affectio on Deum)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올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창조하고 그들로부터 불의를 제하고 자신의 의에 대한 향유를 없애준다. 그는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과 같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교만하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다. 루터는 이런 사랑을 로마서 8장 28절에 대한 해석에서 “십자가”라 부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Deus iustificans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다.

-루터 신학은 바울 신학이다. 바울을 통해서 성경 전체를 보려했다.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성토하며 살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다짐했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임하여야 한다. 목회의 최고의 무기.

-끌어 오름이 있어야 한다.

*iustifacatio(칭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십자가 없이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없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해야 한다. 8:2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ex fide(믿음으로)

-개신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믿음이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고, 우리의 자력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늘 기도해야 한다.

-약속의 핵심은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주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하나님과 화목 되는 것이 복이다.

-당시에는 믿음보다 사랑이 강조되던 시대이다.

-사랑은 믿음의 열매인 것이지 사랑 때문에 믿음이 오는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신득의는 있을 수 없다.

*Sanctifatio(거룩) 하게 만드심(성화)

-의롭게 된 자들을 가만히 두면 성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닮기까지 이끄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열심이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이루어가시고, 완성시키는 것이다(박영선 목사).

-신앙인의 상태가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기 때문에.

-항상 머리 속에 넣고 목회를 해야 한다.

-인간된 우리는 자기 영광을 구하려 하고, 안주에 빠지고, 게을러지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율법(처서 굴복시키는)이 필요하다.

 

신자의 십자가

*tribolatio(환난, 고난)

-처음에는 감당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계속되는 고난으로 시험이 들어 버린다.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한 분이신가? 믿음이 없는, 경험이 없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금식기도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시험에 들 수 있다.

*tentatio(시험)

*oratio(기도)

-울부짖는 기도, 간절한 기도. 가슴을 찢는 기도, 통회하는 마음, 쏟아놓는 기도.

-환란과 시험을 거친 신앙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이것이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의롭게 만든 다음에 가만히 두지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에까지 이끄시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신자의 십자가를 모두 설파해야 한다.

-해방신학, 민중신학 정치신학에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전하지 않는다. 인간의 원제와 대속이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아이러니이고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루터정통주의, 칼빈정통주의 -> 화란 개혁주의

-정통주의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어떤 것이 정통 교리인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에 대해서는 흠 없이 전하지만, 신자에게 임하는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여러분에게도 십자가가 왔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한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신다.

*대속의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은

-마귀가 제일 싫어한다.

-온갖 방법으로 방해한다.

-행위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비판을 받는다.

-반드시 안팎으로 핍박을 각오해야 한다.

-올바른 목회를 하면 사탄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세상이 하는 말을 교회에서 똑같이 하게 된다면 교회는 텅텅 비게 된다.

-복음은 칼 막스 이후에 사회 경제의 문제로 세상을 보는 잘못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이다.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아무런 핍박이 없다는 것은 복음을 잘 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님의 도우심

-신자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을 성령이 도우시고 영화에 이르게 하신다.

-성화되어가며 마지막 날에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가 영광의 자리이다.

-뽑고, 뽑은 자리가 나의 자리이다.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다. 함부로 건딜수 없게 하라.

 

*glorificatio(영화)

-마지막 날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나를 쓰시는 그 자리

-나는 부족하지만 나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영적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아무도 날 건딜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단회적 사건-의롭게 되는데 까지

*반복적 사건-성화(환난, 시험, 기도), 성령의 도우심, 영화

 

*찬송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예베소서 1:3 고전 1장 벧전 1장 “찬송하리로다”

-칭의론의 꽃은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는 것이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50%)

 

4. 하나님은 십자가라는 정반대 형태를 통해 신자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십자가 신학은 기도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환난 당하는 성도는 기도하기 때문이다. 롬 8:26절에 대한 해석에서, 루터는 기도응답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기도응답에 있어서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기대에 거슬려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며 그 이유를 하나님의 행동방식에 돌린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파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하나님의 선물들을 받기 위해 인간은 수동적으로 견뎌야 하는데, 이렇게 견디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의 선물들을 고난이라는 “정 반대 형태 아래(Sub contraria specie)"로 선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을,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때 사용하셨고, 신자들 역시 이런 정반대 형태의 방법으로 인도하신다.

루터는 이런 맥락에서 신비주의자 타울러를 인용하는데 이는 그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고난이 가지는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그가 스콜라 신학자들을 비판했던 것은 이런 하나님의 지혜를 성경적으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methaphysice)으로, 존재유비의 방법(anologia entis)으로 이해하려했기 때문이었다.

*Sub contraria specie(정 반대 형태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지 못하는 방법으로 응답해 가신다.

-우리 이성하고 반듯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스콜라 철학은 하나님은 합리적 하나님이다. 이성과 일치하는 하나님 ->계몽주의, 자유주의로 연결된다.

-성공적인 복음을 전하는 사람: 실패를 하게 되면 마귀가 했다는 입장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성공하게도 할 수 있고, 실패하게도 할 수 있다.

-결국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요셉의 경우).

-내 맘과 내 뜻대로 내가 기도한대로 이루지지 않을 수도 있다.

-비참하게 여길 정도로 우리를 이해 못하는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

-하나님을 합리적으로 만들어 가르치면 안 된다.

-신자를 향해서 목회를 해야지 대중을 향해서 목회하지 말아야 한다.

-율법주의(종교)와 합리주의(철학)를 주의해야 한다.

*형이상학적, 존재유비의 방법

-존재와 존재자는 닮았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 악한자가 아니라 선한 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가 세리들을 사랑하셨다.

-그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성경을 나와 있는 대로 하나님을 이해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는가?

 

5. 하나님은 낮선 일(opus alienum)을 통하여 본래의 일(opus proprium)을 이루신다.

루터는 이런 하나님의 구원 방법을 히브리서 강의(1517-18)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히 2장 8절에 대한 해석에서 그는 하나님의 인도방식을 다시 꺼낸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를 살리시기 위하여 죽으신다. 또한 그를 높이시기 위하여 낮추신다.” 그는 그리스도 역시 높임을 받기 전에 먼저 낮아짐을 당했다고 말한다. 그는 바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전 2:2)”고 말했을 때,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인도방식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다고 본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과 십자가를 지고 따름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를 이룬다는 것이다. 히 2잘 24절에 대한 해석에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악마와 죽음에 대한 승리의 비밀임을 분명히 한다. 이는 하나님의 일의 독특성에 기인한다. 하나님은 성도를 낮선 일(opus alienum)을 통하여 본래 하고 싶은 고유한 일(opus proprium)을 행하신다. 하나님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마귀를 사용하신다. 마귀를 통하여 생명의 원수 죽음을 없애신다. 그리고 본래 주시고자 하시는 생명을 주신다. 그리스도인도 사는 날 동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시험당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기억하고 그에게 스스로 성례와 본이 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짐을 통하여 시험을 극복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살리시기 위하여 죽이시고, 높이시기 위하여 낮추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예수님의 생애, 노 크로스 노 크라운.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대속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신자의 십자가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십자가 신학을 정립하라.

-사고를 자극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을 읽으라.

-공부하면서 십자가 안지는 사람은 거짓말 장이이다.

-조금 더 씹어 먹을 수 있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책을 읽으라.

*십자가 신학은 고달프게 사는 인생을 가르치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를 안주하지 말고,

-방학 때를 나를 위하여 사용하라.

-영어 성경도 읽어야 한다.

-라틴어, 히브리어, 헬라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등

-스스로 속이지 말고, 십자가를 지라.

 

*Deus absconditus

-숨어계신, 숨겨진 하나님(hidden God)

-하나님께서는 항상 십자가 안에 자신을 숨겨서 계시하신다.

-십자가를 가면으로 사용하신다.

-이성적으로 추론해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아퀴나스: 우주 만물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추론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오류이다.

-루터는 인간이 아무리 이성적으로 추론해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없다.

-하나님을 알려면 십자가로 가야 한다.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계시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뺀 것은 자신의 경험일 뿐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이야기함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Sub contraria speciae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코드를 맞추어 일치하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거슬려 응답할 수 있다.

-때로는 원하는 소원대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때로는 이성과 맞지 않게 역사하신다(사 55:).

 

*Opus aliemum(낮선 의) -> Opus proprium(본래 의)

-오히려 사탄을 허용하심을 통해서 신자들의 하나님을 은혜를 깨닫고 생명을 주신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을 없애기 위해서 사탄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지혜

-오늘날 교인들이 성경을 자기 식으로 배우기 때문에 하나님을 합리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합리적인 분이 아니시고,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이성과 합치시키려고 하면 끝없이 고통에 빠지게 된다.

 

5. 이렇게 십자가를 통하여 신자를 구원하는 방식을 그는 십자가 신학이라고 부른다.

루터는 이 사실을 우선 히 12장 1절에서 6절의 해석에서 설명한다. 그는 신자의 삶에 있어서 징계의 필요성에 대하여 주장한다. 그리고 징계가 당시에는 쓰라리게 보이나 이를 통하여 연단될 때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고 본다. 이런 하나님의 지혜를 그는 히 12장 11절의 난외 주해에서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이란 말로 대체한다. 앞에 언급했던 시편, 로마서, 히브리서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고난에 관계된 구절들을 모자이크하여 십자가 신학의 틀을 형성하였다.

“성경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개념들이 병행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심판과 의, 진노와 은총, 사망과 생명, 악과 선 등이 그러하다. 이것은 ‘대저 여호와께서 … 일어나시며 …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사 28:21)’의 구절에서 언급된 것이다. 왜냐하면 시편 4편 1절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에서 표현된 것처럼, 하나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양심을 기쁘시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 구절은 ‘당신은 나를 중시하셨으며 향상시키셨습니다.’의 뜻이다. 이런 것은 은총이 주어졌을 때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로마서 5장 4절에는 ‘연단은 소망을 이루고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이라고 쓰여져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십자가 신학을 발견한다. 또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1장 18절과 23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다.’라고 말한 것처럼, 십자가의 도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의롭게 하신 후 환난을 보내시어 그를 훈련시키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신자를 다루시는 지혜이다. 루터는 이런 지혜를 십자가의 지혜 혹은 십자가의 신학이라 부른다.

-모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십자가라는 정반대, 낮선 일을 통해서 구원하신다.

-히 12:1-9 징계

 

*영광의 신학(thologia gloyriae)

-천주교에서 영광을 강조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들어내시는 것

-사람들을 전도할 때 부정적인 것보다 좋은 것을 설명해야 된다고 주장함.

-루터는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을 찾아오셨다.

-영광의 신학자들은 결과적으로 저주받은 자들이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우리는 십자가 신학을 말한다.

-하나님을 잘 믿어도 우리의 삶 속에 병이 안 고칠 수도 있고 부자가 안 될 수도 있다.

-십자가 신학은 전천후 신학이고, 영광의 신학은 편 가르기 신학이다.

-우리의 영광은 예수 믿고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 신학만이 진정으로 성도들을 위로하고 축복할 수 있다.

-곤란을 주셔서 곤란 중에 축복을 주시는 귀가 막힌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의 도가 다른 사람에게는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능력이 된다.

-성경 전체에서 설명하고 있다.

-예수를 믿는데 아무런 고난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역경과 고난과 멸시를 당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해주어야 한다.

-진리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