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의 칭의론 그 때와 지금…
-잘 알려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잘 해내는 것이 실력이다.
-칭의론은 개신교 교리의 핵심이다. 칭의론 때문에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쫓겨났다.
-개신교가 인태 된 결정적인 원인이 칭의론이다.
-루터교와 카돌릭 교회가 오랫동안 에큐메니칼 운도을 해 왔다.
-칭의론을 적용해서 일치를 보게 되면, 교회 일치의 길이 열릴 것이다.
-칭의론, 마리아 숭배, 교황 무오설 등이 걸림돌이다.
-“오직 은혜로”로 바꾸어 부르자.
-카돌릭은 오직 믿음만으로가 안 되고 사랑이 더해져야 한다고 주장된다.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이 지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성명을 내고,
-카톨릭에서도 반발이 일어나 해결되지 않았다.
*신약신학께서 문제 발생
-새 관점 학파
-센더스, 제임스 던 톰 라이트
-칭의의 논쟁
-파이퍼와 논쟁
-바울 신학의 핵심이 칭의가 아니었다는 입장.
-제임스 던과 김세윤 교수와 논쟁이 붙었다.
-처음 다메섹 도상에서 이미 칭의의 복음을 받았다.
-톰 라이트와 존 파이퍼의 논쟁
-종교개혁자의 입장은 핵심을 칭의론으로 보았다.
-칭의론의 개혁이 종교개혁을 낳았다.
-칭의론이 매우 중요한 신학이라는 것을 깨닫고 확실한 칭의론을 정립하여야 한다.
-존 웨슬리, 존 버년도 칭의에 의해서 변화 받은 사람들이다.
-미국 각성 운동도 칭의를 설교한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읽기. 인디언 선교 시 칭의를 설교하였다.
*마틴 루터에 있어서 칭의론
-마틴 루터가 칭의론의 원조.
특징
①칭의론을 하나님의 영광을 사수하는 도구로 사용함.
-창조보다 더 위대한 구속의 원리
-가르치지 않으면 하나님께 합당하게 돌려질 영광을 가로채는 것.
②칭의론을 창조론의 틀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칭의, 구속, 창조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창조론의 틀 속에서 이해된다.
-하나님의 구속은 새 창조의 경륜 속에 있다.
-새 창조는 죄인의 의롭게 됨으로부터 시작된다.
-의롭게 된 사람은 창조의 사람이 된다.
③칭의 조항은 모든 조항의 핵심적으로 본다.
-교리의 주요 조항을 그 한 조항이 그리스도 교회를 의지한다.
-칭의 교리는 기독교 교리의 총체이다.
④목회자가 필수적으로 알고, 연구하고, 읽고, 명상하고, 연습하여야 한다.
-로마서, 갈라디아서 등을 자주 읽어야 한다.
-칭의가 고통당하는 자에게 가장 큰 위로를 줄 수 있다.
-가난한 자, 죄 의식 속에서 헤매는 자, 고통 가운데 있는 자 등.
-칭의론을 목양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위로 설교와 칭의 설교를 연결시켜야 한다.
-우리는 성도를 위로해서, 격려해서 세우는 사람이다.
-칭의 교리를 응용하는 연습을 하라.
-선생이 되려는 사람은 매일 칭의를 연습하라.
⑤자신의 신학의 제 1원칙을 칭의로 여겼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칭의 연구는 끝이 없다.
-어떻게 해서 내가 의롭게 되었는지를 다각도로 연구.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정돈하라.
-우리는 어떠한 공로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받는 것이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그 예수의 공로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계명을 지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자신의 몸을 드려 사랑을 실천하셨다.
- 그 예수의 공로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⑥이 교리는 시험당하는 신자를 위로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시험과, 공포와 좌절 속에서 칭의의 교리를 붙잡아야 한다.
-가르치는 우리가 시험에 들 수 있다.
-사람들을 위해서… 너무 고생하면서 목회하지 말라.
-환란과 시험 속에서 칭의의 신앙이 그를 붙잡을 것이다.
-내가 너무나 부족해 보이고 처량해 질 때, 하나님의 칭의의 신학을 묵상하라.
-하나님의 자녀요, 상도 받을 사람인데, 그 은혜에 합당치 못하게 살아가지 말고 합당하게 살아가자.
-이것으로 인해서 구원과 상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행한 대로 상 받는다?
-선택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절대 놀게 만드신지 않는다.
-받은 달란트대로 살 수 밖에 없도록 하신다.
-그 사람이 그 맡은 달란트를 행할 수 있도록 하시고,
-십자가를 허락하사 주님의 뜻을 이루신다.
-이것이 행한 대로 상 받는다는 것이고, 모든 신자가 상을 받은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 되는 사람은 택함을 게으름 많은 사람이 아니고, 못 받은 사람이다.
-구원은 은혜로 받고 상급은 행위로 받는다는 잘못된 편견에서 벗어나라.
-가장 많은 은혜가 넘치는 사람이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선포된 복음의 말씀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⑦성경 이해의 열쇠로 본다.
-스콜라 신학자들은 성경을 칭의론 중심으로 보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다.
-가죽옷, 아브라함의 믿음, 모세를 통한 구출, 제사제도 등이 모두 칭의의 복음이다.
내용
*전가 교리
-톰 라이트는 루터가 이야기했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심의 칭의를 거부하였다.
-법정적 칭의, 전가적 칭의를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드릴 수 없다.
-우리가 받는 구원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가서 의로다 함이 판결받은다고 주장.
-이 의는 노력을 해서 획득한 우리 안에 있는 의가 아니라 밖에서부터 내려오는 전가시킴으로 획득한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전가(轉嫁) 되어 성취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서 구원 받은 것이다.
-우리는 전적 타락한 자로 자기의 의로 구원받을 수 없다.
-카돌릭은 전가 교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여 이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트랜트 종교회의).
-우리는 그리스도의 전가 교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낮선 의: 밖에서 값없이 주어진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
-시민 의: 이런 의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가 없다.
-두 종류의 의를 가지고 있다. 낮선 의와 시민 의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고 내가 이 땅 위에서 의롭게 살려고 살아갈 때 일어나는 의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Simul iustus et Peccator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인 그리스도인.
-이를 모르면 죄를 지을 때 칭의의 교리를 놓치게 된다.
-카돌릭 교회서는 50%는 의인 50%는 죄인이라고 하느냐고 외곡 하여 정죄를 하였다.
-루터는 totaliter(전인)를 이야기 한 것이다.
*더욱 더 교리적으로 설교해야 한다.
-칭의와 십자가를 설교해야 한다.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인 것을 설교해야 한다.
-전가의 은혜를 설교해야 한다.
-영적 싸움에 대해서 가르쳐야 한다.
*의인도 두 종류의 의인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은 의인과 그렇지 않은 의인
-은혜를 아는 죄인과 그렇지 않은 죄인
*성령세례의 관계
-성령세례만 받으면 죄를 안 짖고 승리하며 살 수 있다고 설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기도하고, 말씀보고,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운명론적 결정론적으로 가르치지 말라.
-우리에게 마귀를,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신앙의 동역자를 보내 주셨다.
-10번 싸워 몇 번 이기는가?
-그리스도를 붙잡고, 성령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붙잡는 것.
3. 신자가 당하는 환난, 연단을 성경에서는 십자가라고 부른다.
루터는 그의 십자가 이해를 시편강의 다음에 이어진 로마서 강의(1515-1516)에서 좀 더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롬 5:3-5에 대한 주석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의인을 다루시는 행동방식을 또 한 번 꺼내면서 의인의 삶에 왜 십자가가 필요한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신자에게 십자가가 필요한 것은 신자의 신분에 기인한다. 신자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으로 살아간다. 루터에 의하면, 신자는 하나님이 의를 전가시켜 주심을 통하여서 그리고 그가 이 의를 믿음으로 의로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의롭다”기 보다는 “의롭게 되어졌다”고 칭해져야 한다. 그리고 “의”라기 보다는 “칭의”라고 칭해져야 한다. 신자는 “항상”의로워져야 하는 칭의의 과정 속에 있다. 오직 그리스도 자신만이 이미 의로우시고 완성된 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자의 신분 상태로 인하여 의인의 현재의 삶은 필연적으로 모순적인 삶이다. 신자들은 양심 안에서와 영 안에서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지고 있지만, 육체와 세상과 악마와는 불화를 가지고 있다.
루터는, 롬 5:3-6에 대한 주석에서, 문장론의 저자인 롬바르트의 소망을 이루는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비판하면서, 그의 십자가 이해를 계속 드러낸다. 그는 여기에서 신자가 칭의 후에 당하는 환난을 믿음, 소망, 사랑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하고 이 환난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 말하는 이런 환난은 하나님의 자비의 증거로 본다. 그는 자비로 말미암은 환난과 심판으로 말미암은 환난을 구분한다. 이런 하나님이 주시는 환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체와 같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유물을 흠모하면서도 환난과 역경을 피하는 자는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환난들이 성경에서는 본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칭해진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환난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들이다. 그는 계속하여 환난의 목적은 신자로 하여금 인내를 배우도록 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연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받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이런 연단이 필요한 것은 이간 안에 남아 있는 원죄 때문으로 본다. 하나님은 자신이 받으시는 아들 마다 이런 연단을 허락하신다고 마한다. 이런 환난만이 참된 소망으로 이끈다고 본다. 소망은 롬바르드가 말하는 것처럼 공적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망은 환난과 연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환난이 참된 사랑으로 이끈다. 그는 이런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Caritas Dei)”이라고 부르고 “인간의 사랑(Amor Homini)”과 구별시킨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어지나 인간의 사랑은 반복되는 행동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덕이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인간의 연민을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연님으로 바꾸고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감정(purissima affectio on Deum)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올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창조하고 그들로부터 불의를 제하고 자신의 의에 대한 향유를 없애준다. 그는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과 같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교만하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다. 루터는 이런 사랑을 로마서 8장 28절에 대한 해석에서 “십자가”라 부른다.
4. 하나님은 십자가라는 정반대 형태를 통해 신자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십자가 신학은 기도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환난 당하는 성도는 기도하기 때문이다. 롬 8:26절에 대한 해석에서, 루터는 기도응답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기도응답에 있어서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기대에 거슬려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며 그 이유를 하나님의 행동방식에 돌린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파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하나님의 선물들을 받기 위해 인간은 수동적으로 견뎌야 하는데, 이렇게 견디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의 선물들을 고난이라는 “정 반대 형태 아래(Sub contraria specie)"로 선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을,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때 사용하셨고, 신자들 역시 이런 정반대 형태의 방법으로 인도하신다.
루터는 이런 맥락에서 신비주의자 타울러를 인용하는데 이는 그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고난이 가지는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그가 스콜라 신학자들을 비판했던 것은 이런 하나님의 지혜를 성경적으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methaphysice)으로, 존재유비의 방법(anologia entis)으로 이해하려했기 때문이었다.
5. 하나님은 낮선 일(opus alienum)을 통하여 본래의 일(opus proprium)을 이루신다.
'서울신학·총신신대원 > 교의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세 시대와 마틴 루터 (0) | 2014.10.13 |
---|---|
하나님의 형상의 역사적 개념 (0) | 2014.10.11 |
제 6장 논리(logic)와 증거(evidence)② (0) | 2014.10.09 |
무천년설(Amillennialism). (0) | 2014.10.09 |
율법과 복음 (Law & Gospel) (0) | 2014.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