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4. 제목별 연구법(the Topical Method)

예림의집 2014. 10. 4. 13:47

 

4. 제목별 연구법(the Topical Method)


제목별 연구법은 구약 자료들과 주제를 읽고 배열하고 체계화시키는 틀로서, 바깥의 범주(예로서, 조직신학적 범주)를 부과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교리적-교훈적 방법과 구별된다. 또한 이것은 교차법으로 구약 사상 세계를 종합하는 것과 다르다. 여기에서 개괄하고 있는 제목별 연구는 구약에서 단순 중심을 두거나 혹은 이중 중심을 두거나 혹은 아무런 중심도 두지 않는 입장들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맥켄지는 제목별 연구를 탁월하게 한 사람이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수많은 학자들의 견해와 달리, 그는 “마치 신약성경이 존재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구약신학을 쓴다”고 강변한다. 이런 그의 입장은 성경신학이 정경 위에 근거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차일즈와 통시적인 전승사 방법을 성경신학 방법론으로 제시하는 구미의 학자들과도 강한 대조를 이룬다. 매켅는 자신이 하르낙과 불트만에게 가까이 서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생각에는 “구약성경은 기독교인의 책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움가르텔에 가까운 것 같다. 맥켄지는 “삶의 방향이 신약성경에서 구약성경으로 거꾸로 흐르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믿는다.

맥켄지는 구약신학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에서 “경험의 총체성(the totality of experience)”을 찾는 작업이다. “성경에서 야웨를 경험한 여러 사건들과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 똑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약신학은 “총체적 경험(the experience of th totality)”을 추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맥켄지는 구약성경의 “내적인 통일성”을 구체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야웨를 경험하는 방식들”과 연관되어 있고, 이 경험의 총체성은 “각 권들이나 문단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야웨의 실재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구약신학의 구조와 그 범주들 혹은 주제들은 이 “총체적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바로 이 경험은 “논리적인 설화의 통일성과는 다른 내적 통일성을 지닌 하나의 역사적 경험을 인위적으로 통일성 있게 분석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체험의 양적인 총체성에 근거하여, 매켄지의 제의(cult)를 선두에 둠으로써 이전에 있었던 모든 구약신학의 구조를 떠난다. 그리고 그는 “계시”, “역사”, “자연”, “지혜”, “정치와 사회 기구들”을 다룬 후에 “이스라엘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끝을 맺는다.

맥켄지는 자기 방식대로 작업을 하였고 제목별 연구라는 새로운 방법을 시작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격찬할 만하다. 어떤 방법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매켄지의 구약신학 방법론에서도 일면 선택의 원리에 대한 문제와 또한 제시한 방법에 대해 끝까지 일관성을 지키는 원리의 문제가 중심 문제로 제기된다. 두 번째 문제를 먼저 생각해 보자. 우리가 제목별 연구를 선택하면, 무엇보다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맥켄지가 이 일관성을 끝까지 지킨 것 같지 않다. 그는 “계시”를 다루는 장에서 성물록을 다를 때 자기의 길을 떠난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다루는 부분에서 그는 다루어야 할 주제들이 너무나 방대하여 역사적인 순서와 문학비평을 따라 각각 한 권의 책으로 쓰여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자주 일반적인 주제들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일관성은 없다. 요엘서와 스가랴 9~14장은 마지막 장에 있는 묵시록과 연관하여 다루어진다. 나훔과 오바댜는 “역사”를 다루는 방에서 나타난다. 나훔과 오바댜가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열국에 대한 경고들과 연관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의 전부이다. 요엘과 스가랴 9~14장도 마찬가지다. 이 둘은 두 쪽(페이지)으로 처리도고 있을 뿐이다.

구약신학에 무엇이 포함되고 무엇이 배제되어야 하느냐 하는 선택의 원리, 혹은 매켄지의 말을 빌리자면, “동등한 심오성(equal profundity)의 원리”는 “이스라엘이 가장 빈번하게 야웨를 경험하는 양상”을 찾아내는 것으로 결정된다. 여기에서도 한 경험이 빈번하게 많이 나타나는 것을 따라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다. 바로 이 선택원리가 주제의 선별과 주제의 흐름에 대한 기준이 된다. 맥켄지가 구약신학에서 제의를 제일 먼저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야웨와의 양적인 교통 체험이 개인의 질적인 체험보다 우선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지지될 수 있을까? 정기적인 의식의 경험이 모세,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등의 개인적인 경험과 비교할 때 “동등한 심오성”을 지니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우리는 수많은 “총체적 경험(totality of experience)”이 주제 선별과 배열을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돌려 또 다른 두 명의 신학자들이 구약신학에 대해 어떤 기여를 했는지 살펴보다. 포러는 예비적인 연구 논문을 여러 개 쓰고 널리 인정받는 『이스라엘 종교사』를 출판 후, 1972년 『구약성경의 기본 신학 구조들』을 썼다. 포러는 구약성경이 중심이 “하나님의 통치와 신과 인간 사이의 교통”으로 구성된 “양면 개념(dual concept)”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포러는 이 구도를 따라 구약의 자료를 체계화하고 다음어 구약신학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포러의 구약신학은 교차법(cross-section method)과 신론-인간론-구원론의 구조를 가진 교리적인 방법도 피하고 있다. 이와 반면에 그는 서술적인 목적을 가지고 현재를 위한 의미를 찾아내는 주제별 방법론을 구약신학을 위한 방법으로 창안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재구성(reconstruction)과 해석(interpretation) 혹은 “원래의 의미”와 “현재의 의미” 사이에 있는 거리를 메우려고 한다.

포러의 방법론은 그의 책 제 4장 “다양성 속의 통일성(Unity in Manifoldness)”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신과 인간 사이의 교통”이란 중심을 탁월하게 펼쳐 나가고 있다. 첫 세 장에서 다루는 주제들, 즉 “구약 해석의 유형들”, “구약 성경과 계시”, 그리고 “존재에 대한 다양한 태도들”은 제 4장에 표현된 중심 관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변화의 힘과 변화의 수용 능력”을 다루는 제 5장은 그의 구약신학의 전체 구조 속에서 약간 동떨어진 인상을 준다. 이 장은 하나님의 통치와 신과 인간 사이의 교통이라는 신학적 중심이 이스라엘의 믿음과 그 신학적 중심 자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다룬다. “발전”을 다루는 다음 장은 무엇이 발전해 왔는지를 지적해 주며, 마지막 장인 “적용”은 현대인이 오늘을 위해 어떻게 해석할 것이지 제시한다.

포러는 아주 참신한 해석을 시도하였기 때문에 좀더 시간을 보내야 할 피요가 있는 것 같다. 제 3장에서 포러는 인간존재에 대한 태도의 다양성을 다룬다. 여기에서 그는 첫째 “주술적(magic)”태도를 제시하며, 이것은 부정적인 것이므로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태도는 의식적인 것(cultic)으로서 주로 주술의 영향을 받아 “모세 시대의 믿음을 변화시킨 것”으로 본다. “모든 의식은 하나님에게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한다.” 포러는 의식을 철저하게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이 점에 대한 의식을 첫 장에 둔 맥켄지와 대조해 보라. 나아가 포러에 따르면 율법은 “하나님의 선심을 얻게 하고 그의 은총을 확증한다.” 이것 역시 부정적인 것이다. 포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이란 믿음은 기본적인 것이지만”, 이것에 대해서조차 그는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포러는 주술, 의식, 율법, 선택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존재에 대한 선지자적 태도”만 유일하게 긍정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존재에 대한 역동성 있는 예언적 태도는 지혜를 극복한다. 왜냐하면 지혜는 “내가 어떻게 내 인새으이 주인이 될 것이가를 최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포러에 의하면 존재에 대한 다섯 가지의 태도, 즉 주술, 의식, 율법, 민족적 선택과 지혜는 모두 일시적인 것이며 참된 존재를 찾는 데 있어서 부정적인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존재에 대한 선지자적 태도는 초시간적이며 따라서 긍정적인 것이다. “그 핵심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통을 위해 복종과 순종을 다하는 삶이다. 따라서 이것은 지속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제 포러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태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명료해졌다. 사람이 “인생의 주인”이 되려는 존재의 태도는 일시적인 것이므로 부정적이다. 초시간적인 질과 지속적인 의미를 지닌 존재의 태도는 “복종과 순종의 봉사로 사는 것”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런 평가가 어느 정도 주석적이고 신학적인 결론들에 의존하고 있을까? 예를 들자면, 지혜신학의 대가들은 포러가 구약의 지혜를 보는 관점을 따르고 있지 않다. 포러가 제가한 문제들을 좀더 살펴보아야 하겠다.

먼저 포러가 제사한 여섯 가지 태도를 살피면서 구약성경과 구약신학의 중심 문제를 다루어 보자. “하나님의 통치와 신과 인간과의 교통”이라는 이중 개념은 포러가 발견한 구약의 존재 태도 여섯 개에 모두 나타나는가? 포러 역시 이 중 다섯 개는 그렇지 않다고 인정한다. 베스터만은 포러가 그의 중심을 여섯 개 존재 태도 모두에서 끌어내었다고 한다. 나아가 그는 포러가 자신의 구약신학에서 두 가지 독자적인 방법론, 즉 존재 태도의 원리에 근거하여 세운 것과 구약의 중심 원리에 근거하여 세운 것을 합성시켰다고 결론 내린다. 나는 베스터만과 달리 생각한다. 포러는 자신의 중심을 존재에 대한 하나의 진정한 태도와 그것을 반영하는 전통에서 찾고 있다. 그 중의 것이 족장들의 체험과 모세 신앙의 순결성으로, 바로 이 수결한 모세 신앙으로 선지자들의 존재 태도는 지속된다. 만약 내가 이해한 포러의 입장이 옪다면, 그는 방법론들을 섞어버렸다거나 혹은 그에게 방법론적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우리가 옳다면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즉 구약신학의 중심은 이 경우에 구약 증거의 전체성과 동일한 것이 아니며, 이스라엘 경험의 어떤 부분들은 중심과 연관하여 생각할 때, 맨 끝자리에도 둘 수 없고, 중심에 의해 배제된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순간에 우리는 “정경 안의 정경(a canon within the canon) 문제와 그 부수적인 내용비평(content criticism)에 부딪치게 된다.

“정경 안의 정경” 문제, 혹은 라이트가 말한 것처럼 구약 안의 “권위 있는 핵”의 문제는 성경 연구에서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종교개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이후 성경 연구에 계속 영향을 미친 문제이다. 포러의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그가 자신의 중심을 선택할 때 자신이 이해할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좀 더 부연하자면 그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과 폰 라드나 다른 학자들이 강조한 이스라엘의 중심 전통들의 고리를 끊어버렸다. 어쨌든 포러가 주술, 의식, 율법, 지혜 그리고 선택을 부정적인 존재 태도로 해석한 것이 이후의 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계속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러가 제기한 “정경 안의 정경” 문제는 오늘날 상당히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차일즈는 성경신학에서 구약의 정경성을 새롭게 제기하였고, 샌더스는 “정경비평”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블렌킨솝은 자신의 논문에서 히브리 성경은 기본적으로 “예언적”이라고말한다.

구약신학의 또 다른 거장은 침멀리이다. 그의 『구약신학 개요』는 그가 평생 동안 연구하여 발표한 작품이다. 이것은 1978년 영어로 출판되엇고 그보다 육년 전에 나온 독일어판과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주제별로 자료를 배열하였으며, 신학적인 주제들을 강조한다.” 제목별-주제별 연구가 핵을 이루고 있다.

침멀 리가 생각한 구약신학은 서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약신학은 “구약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일관성 있는 전체(coherent whole)”로 제시하는 것이다. 침멀리는 “일관성 있는 전체”를 폰 라드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처럼 “역사의 연속성, 즉 역사적인 전후관계를 따라 흘러가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연속성은 “야훼의 이름으로 나타난 불변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고 있다.

모세에게 계시되고 십계명을 선포할 때(출 20:2이하; 신 5:6이하) 통합시킨 야웨 이름에 대한 고백에서 연속성을 찾은 후, 침멀리는 구약신학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제 1-3부는 “근본들”, “야웨가 주신 선물들” 그리고 “야웨의 계명”이란 제목으로 구약신학을 다루고 있다. 제 1부는 침멀리가 설정한 구조의 두 초점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모세 시대 이후로부터 시작하여 오경에 나타난 야웨에 대한 “근본들”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육경의 신학을 제 1부에서 다룬 폰 라드와 유사하다. 그러나 폰 라드는 원시사와 족장사를 이 부분에 포함시키고 있다. 침멀리의 또 다른 관점이 일종의 구원론이라고 볼 수 있는 제 5부 “위기와 희망”에 나타난다. 여기에서 그는 각 권별로 요약된 문필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중심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오경에 나타난 야웨의 모습이 기초이며, 그 위기는 구약의 예언서 그 절정에 이른다.

제 2부와 3부는 선물과 임무(Gabe-Aufgabe)로 서로 이어져 있다. 야웨의 선물을 다루는 부분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포함된다. 즉 “전쟁과 승리”, “땅과 축복”, “하나님 임재의 선물”, “지도력의 카리스마와 가르침”이 다루어지고 있다. 야웨의 계명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십계의 첫째와 둘째 계명이 지나치게 강조된다. 예배, 의식, 사회적 취지를 지니는 율법들은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다. 맥캔지에 의해 부각된 이스라엘의 제의는 포러에 의해 부정적인 것으로 다루어지고, 침멀리에게 오면 완전히 무시된다. 그의 구약신학에는 제의가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침멀리와 카이저의 체계에는 구약신학 안에 히브리 제의를 포함시킬 여지를 두지 않는다.

침멀리는 제 4부를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란 제목으로 소개한다. 이것은 폰 라드가 그의 구약신학에서 쓴 “야웨 앞의 이스라엘”을 상기시켜 준다. 폰 라드가 그의 구약신학에서 쓴 “야웨 앞의 이스라엘”을 상기시켜 준다. 폰 라드는 이 부분에서 야웨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을 다루었다. 이 두 신학자가 사용한 제목의 유사성 외에도, 침멀리는 폰 라드가 설정한 것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침멀리는 훨씬 축약하고 있으며, 구약신학의 양자인 지혜신학에 대해서는 오직 10페이지만을 할당하고 있다. 이 때가 지혜신학이 구약신학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게 된 때이며 지혜신학에 대한 테릭의 새로운 방향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침멀리의 방법론적인 절차는 어떤 점에서 볼 때 아주 특이하다. 제목이나 주제들은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다루는 부분에서 묶여지고 있다. 우리 생각에는 여러 역사서들이 각자의 신학적 강조점들을 드러내도록 따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 같다. 또한 왜 각 권의 순서를 따라 제시된 선지자들의 신학이 “구원과 심판”으로 특징지워져야 하며, 심판과 소망이라는 장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가? 포러는 이것을 그의 구약신학의 중심으로 삼았고, 폰 라드는 그의 구약신학의 제 2권에서 방대하게 다루었는데, 침멀리는 이것을 다른 문제들 속에 감추어 버린다.

맥켄지와 포러와 침멀리의 구약신학자들은 어느 정도 제목별 접근을 다 같이하고 있지만, 방법론적으로 너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할 수가 없다. 각자의 출발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맥켄지는 “내적 통일성”을 야웨를 많이 경험하는(quantitative experience of Yalweh) 형태로 제시한다. 이 기초 위에서 제의가 제일 먼저 나타났다. 이런 논리로 보면 맥켄지가 마지막에 다룬 “이스라엘의 미래”는 구약에서 제일 적게 나타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제 배열에 논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포러와 침멀리는 구약의 명백한 중심에서 출발하지만 각각 자기 길을 간다. 포러는 선지자들이 가진 존재의 태도에서 중심을 찾는다. 그에 따르는 주술, 제의, 율법, 선택 그리고 지혜와 비교해볼 때 이것만이 유일하게 정당한 존재의 태도이다. 바로 이 예언적 태도에서 후대의 “발전”과 “적용”이 나오게 된다. 침멀리도 중심으로부터 나아간다. 그것 역시 오경, 곧 구체적으로 모세 시대에 그 뿌리와 기원을 갖고 있다. ‘위기’가 또 다른 축을 가지며 그것은 원시사로부터 출발하여 오경의 몇몇 전통과 역사서들을 거쳐 선지서에 도달한다. 이 아치(arch) 사이에 있는 세 부분은 선물과 의무와 반응으로 보여 진다. 침멀리의 책, 5부 중 4부는 다소 제목별 연구이다. 그러나 그의 구조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기둥을 차지하고 있는 마지막 장은 역사적인 순서를 따라 각 권별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맥켄지 역시 “계시”라는 장에서 “선지자들의 메시지”라는 주제를 다룰 때 각 권별로 연구함으로써 제목별 연구 방법에서 떠난다. 요약하자면, 십년 사이에 나온 제목별 연구를 대표하는 세 개의 중심 작품은 그 (1)출발점, (2)자료의 구조, (3)주제 선정, (4)순서, (5)구약신학의 중심, (6)구약 자료의 강조점과 평가 그리고 (7)각자의 구조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