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교회의 표지

예림의집 2014. 5. 19. 20:34

 

5. 교회: 참 교회(ecclesia vera): 진리, 건전한 교리의 일치와 성도의 사랑

-교회의 교제는 온전한 교리의 일치와 형제적 사랑이라는 두 고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로 연결될 때 참되다(빌 2:1, 5; 롬 15:5).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진리가 함께 역사하듯이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한 믿음 가운데서 그분을 한 주로 섬기고(엡 4:5) 그분을 머리로 한 연합체를 이룬다.

-참 교회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지배하고 그리스도의 홀이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그리스도의 영의 내주하심이 그 나라의 통치방식이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듯이(요 10:14, 27) 진리에 속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소리를 듣는다(요 18: 37).

-참 교회의 지표는 건전하고 타락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진리에 있다. 교회의 사도성은 정치적 사도권의 계승이 아니라 사도 시대 때부터 변함없이 만장일치로 보존되어 오던 교리의 계승으로부터 비롯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참된 것은 하나님의 교리에 대한 한 진리를 동일하게 믿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머리가 한 분 그리스도이시므로 그분만이 교회의 우일한 감독이 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임 당하신 어린 양으로서 목자가 되셨다. 우리를 위하여 종으로 오셔서 모든 일을 다 이루시고 이제 우리의 주가 되셨다. 그러므로 유일한 사죄권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께만 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열쇠의 권한은 복음을 전하고 그 약속으로 성도들을 권면하라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중보직을 대신하라는 뜻은 아니다.

-참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다. 참 교회가 빛으로 비추고 시내로 적시고 가지로 열매를 맺게 됨은 그것이 빛의 근원이시며 생수의 샘이시며 나무 되시는 그리스도께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하늘 교사의 교리를 미리 듣지 아니하였다면 언약의 율법이 구약 백성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였다면 교회의 주요한 신경이자 영혼이 되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이 단지 죽은 문자를 좇는 일에 불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제정되지 않은 성례들을 거행하고 여전히 구약의 피 제사와 같은 미사를 드리는 것은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려서 모든 사역을 다 이루신 그분을 여전히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이는 마치 벧엘에 제단을 쌓는 것 같아서(왕상 12:31) 하나님께서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워하신바 된 것이다.

-미혹의 터에 자리 잡고 우상의 가증스러운 것을 버팀목으로 서 있는 거짓 교회의 표는 단지 멸망 밖에 없다. 교회의 유일하신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속히 떠나 적그리스도를 그 중앙에 앉히고, 섬기고, 의지하는 사교에서는 합법적인 교회 형태를 찾을 수가 없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한 분이시므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통하여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교회는 지금부터 마지막까지 계속된다. 그리스도의 왕직이 영원하듯이, 그 백성의 모임인 교회도 영원하다(벨기에 신앙고백 27). 그러므로 교회를 단지 신약의 기관으로 보고 천년왕국이 도래하면 그것이 소멸한 것이라고 여기는 세대주의적 사고는 전혀 그릇되다.

-교회가 진리 안에서 진정 참된 것은 주의 자녀들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룰 때이다. 교회론은 삼위일체론적-기독론적 관점에서 구원의 구속사적-구원론적 의의를 파악할 때에만 개진될 수 있다.

“그리스도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로부터 인격을 박탈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자. 오히려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여기고 그분의 지체들로서 그분과 하나가 되도록 하자. 우리는 가장 아름답게 이 연합을 보존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한 분 되심이 무익하거나 무용하지 않듯이 그 연합의 능력이 성도들의 몸 전체로 퍼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본질을 우리에게 ㅈ입해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영의 능력으로 자신의 생명과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복으로 우리와 교통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삼위일체론적 기독론적 관점

-스스로 계신 하나님: 삼위일체

-우리를 위한 하나님으로 오심: 기독론, 예수 그리스도

*구속사적-구원론적 관점

-구속사적 성취

-구원론적 적용

 

제 5장 교회의 표지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수립된 후 교회의 속성은 유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으로 주로 논의되었다. 우리가 위에서 칼빈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종교개혁자들은 이 넷 가운데 앞의 셋을 비가시적 교회의 속성과 관련하여 더욱 중요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사도성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다. 반면 로마 가톨릭과 동방교회 등과 같이 교회의 제도와 직제의 서열을 강조하는 교파에서는 앞의 셋을 말하기는 하되 사도성에 더욱 집중하였다. 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은 교회의 무오성도 덧붙였다.

-우리는 교회의 무오성을 받지 않는다.

 

①교회의 유일성(unitas)

-교회의 우일성은 토일성이라고도 불리나 어원상 유일성이 더욱 적합하다. 교회의 하나임. 유일성은 정체성과 직접 관계된다. 교회에 필적하는 어떤 모임도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언약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의 공로로 말미암아 의를 전가 받은 사람들의, 한 성령의 감화 가운데 한 믿음을 지닌 공동체라는 측면에서 유일하다.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이며 한 세례를 받아 한 성령을 마셨다. 그리하여 한 주를 섬기게 되었다. 의의 전가 공동체, 성령의 임재 공동체.

-교회를 이루는 각 족속은 한 어버지께 예배드리고(엡 3:14-15), 목자이자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동일한 인도를 받는다(요 10:16; 엡 4:5). 성도가 한 교회를 이루는 것은 주께서 육체의 죽음으로 서로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이다(골 1:22). 그러므로 오직 그분의 죽으심과 합하여 한 세례를 받는다(고전 1:13; 롬 6:4). 그리고 성찬 가운데 그분의 몸을 받는다(고전 10:17). 뿐만 아니라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심과 연합하여(롬 6;4) 그분의 영을 받아(롬 8:9) 서로 사랑 가운데 하나가 된다(빌 2:1-2). 성도는 한 진리의 영을 받게 되므로(요 14:17; 15:26) 각양의 은사의 조화를 이루어(고전 12-14) “아름다운 것”을 함께 지킨다(딤후 1:14). 이러한 교회의 ‘유일성’은 주님이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분명한 간구로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약속 있는 명령이기도 하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교회의 유일성은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라는 의의 전가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신앙고백, 공예배, 직분의 통일성 등에도 나타난다. 비록 종교개혁자들이 비가시적 교회의 유일성에 주목했다고 하더라도 그들도 가시적 교회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명심할 것은, 이 경우 그들은 조직체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유기체로서의 교회를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기구적-가시적 일치 즉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일치를 이 땅에서 이루는 것은 불가하다. 이는 unity(하나)가 아니라 uniformity(한 모습)에 불과하다. 교황은 가시적 머리로 내세우는 로마 가톨릭의 억지는 논의의 가치조차 없다.

 

②교회의 거룩성(sanctitas)

-교회의 거룩성은 성도의 거룩함과 궤를 같이한다. 로마 가톨릭과 같이 교회와 성도를 분리하여 교회는 흠 없이 거룩하나 성도는 여전히 죄인이라고 보는 이분법에 서지 않는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다(고전 1:2). 주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엡 2:11-22). 교회 안의 참 성도는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전 6:11).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 성도에게 주어졌다(살후 2:13). 이렇듯 교회의 거룩성. 이미 법정적으로 의롭다 인침을 받았으나 그 은혜 가운데 여전히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 성도의 구원 서정 중 성화 과정에 부합한다.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의 인친 자 곧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을 일컫는다(출 19:5-6; 벧전 2:9-10). 거룩함은 하나님의 자녀가 그렇게 드러나야 할 마당한 바이다(고후 6:16-7:1; 빌 2:15). 거룩함은 구별됨과 드려짐의 두 측면이 있다. 흠과 티가 없이 잘 자란 짐승을 제물로 드리듯, 자신을 잘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릴 때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함은 제사와 예배에서 그 본질이 가장 잘 제시된다(롬 12:1; 딤후 2:15).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다(고후 11:2). 성도를 향하여 그러하듯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다(살전 4:3). 교회의 ‘거룩성’은 교회의 ‘유일성’을 전제한다. 교회는 거룩한 유일한 모임이다. 오직 교회만이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진 모임이다. 교회의 ‘거룩성’은 이 땅에서 그 완전함을 볼 수 없다(살전 4:17; 롬 8:30). 성도의 성화와 교회의 ‘거룩성’은 함께 이루어진다. 다만 교회의 ‘거룩성’은 주 안에서 머리이신 그분께로 ‘함께’ 자라간다는 측면이 더 많이 부각될 뿐이다(엡 4:13-15).

-교회의 거룩성은 교회가 날마다 거룩해지므로 거룩하다는 의미이다. 거룩하다는 법정적인 측면에서 이 속성은 비가시적 교회에 더욱 관계된다. 그러나 거룩해지고 있다는 과정적인 측면에서 이는 가시적 교회의 속성으로 더욱 부각된다. 이러한 이해는 오직 교회의 ‘거룩성’을 교회의 구조와 직제 그리고 도덕성에서 찾는 로마 가톨릭의 입장과는 양립할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거룩성’을 세 가지로 파악하였는데 이는 우리의 입장과 부합한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의로 인친 모임으로서 객관적인 의미에서 절대적으로 거룩하다. 이는 우리가 말한 법정성을 말한다.

둘째, 교회는 거룩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거룩하다. 이는 교회의 성도들이 성화의 과정에 있음과 일맥상통한다.

셋째, 교회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하나님께 봉헌되었다는 측면에서 거룩하다.

 

③교회의 보편성(catholicitas)

-위에서 보았듯이, 교회의 ‘유일성’은 그 고유한 정체성을 지시한다. 반면에 교회의 ‘보편성’은 이러한 유일한 교회가 전 인류, 전 우주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롬 10:12-13) 인종, 신분, 성별에 무관하게(갈 3:28) 구원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주의 은혜로 만물이 회복되며 서로 화목하여 다 하나가 된다(엡 1:10; 갈 1:19-20). 이러한 진리 자체는 교회의 ‘유일성’에 부합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에 따라서 교회가 모든 곳에 존재하게 된다는 점을 말할 때 이는 ‘보편성’을 일컫게 된다.

-헬라어 “카톨리코스”는 라틴어 universalis와 catholicus로 번역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지역적 보편성으로 인식된다. 초대 교회의 속사도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교가 나타날 때마다, 무리가 있게 될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 예수가 계실진대, 그곳에는 보편적 교회가 있다.” 로마 가톨릭은 교회의 보편성을 유형의 조직체로서의 로마 교회에 한정함으로써 철저히 지역적 개념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보편성을 시간의 연속성과 진리의 일치성에까지 확장해서 본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시적 교회의 보편성뿐만 아니라 비가시적 교회의 보편성을 함께 논하였다. 이는 가시적 교회를 조직체로서 뿐만 아니라 유기체로서 파악하는 칼빈과 개혁주의 신학자들에 있어서 현저하다. 이러한 경향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도 뚜렷이 나타난다. 교회론을 다룬 제 25장의 서두 처음 1-2조에 이를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The catholic or universal Church, which is invisible, consists of the whole number of the elect.

that have been, are, or shall be gathered into one, under Christ the head thereof: and is the

spouse, the body, the fullness of him that filleth all in all.

 

The visible Church, which is also catholic or universal under the gospel (not confined to one

nation as before under the law) consists of all those, throughout the world, that profess the

true religion, and of their children; and is the kingdom of the Lord Jesus Christ, th house

and family of God, out of which there is no ordinary possibility of salvation.

-영원하신 말씀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독생자의 영광을 드러내셨다(요 1:14, 17). 이러한 충만이 교회에 임한다. 교회의 보편성은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제시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히 채우심에 있다(엡 3:19).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3).” 이러한 교회의 보편성에는 종말론적 성경이 있다. 교회의 충만은 지상에서 충분히 실현되지 않는다. 마지막 완성의 때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외치며 찬송하는 그 때에 교회는 공간·시간·진리·영광에 있어서 오직 하나로 충만하게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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