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윤리학(J. 다우마) 서평
이 책은 네덜란드의 캄펜 신학교에서 윤리학을 가르치고 은퇴한 요험 다우마 교수의 <책임있는 행동: 기독교 윤리학 개론, Responsible Conduct: An Introduction to Christian Ethics>라는 책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인의 책임 있는 행동을 위한 도덕 원리들을 소개하고 각 주제들을 연관시켜서 다루고 있어 유익하다. 도덕관 윤리는 무엇인가?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스도인이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데 있어서 성경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십계명과 율법은 현대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어떤 기능을 하는가? 양심은 도덕적 행동을 하는데 충족한 장치인가?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규범인 사랑은 계명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상황윤리는 책임있는 행동을 위한 새로운 기독교적 접근 방법인가? 윤리적 중립지대인 아디아포라(adiaphora)는 정말 존재하는가? 경우론(casuistry)은 기독교인의 도덕적 행동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으로 유용한가? 경건훈련 즉 수련은 그리스도인의 도덕적인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등의 주요한 질문들에 대하여 일관성 있게 다루고 설명하고 있다.
복잡하고 인본주의가 강한 현 시대를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자체가 쉽지 않다. 수많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부닥치는 상황 속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가는 매우 중요하다. 산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윤리적 도전에 직면하는 것이다. 윤리 문제에 제대로 대답하는 것은 항상 쉽지만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도전들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사람들은 윤리적인 문제들과 부단히 씨름해 왔다. 사실 어떤 문제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계속된다. 인간이 된다는 것 자체가 윤리적인 도전에 직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어떤 면에서 우리는 우리만이 겪는 독특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일면 우리 시대의 특징에 기인한다. 근대 과학의 발전, 의학적 발전, 인터넷의 발달 등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점들 수없이 많고 심각하다.
또한 도덕적 위기이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윤리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에 있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일치된 윤리적 결론이 어렵고 교회마저도 일치된 윤리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어 사회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리적인 면에서든 윤리적인 면에서든, 기독교는 더 이상 사회의 자기이해 혹은 사회의 목표 설정에서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아가고 있고, 도덕성은 약할 대로 약하여져 수많은 윤리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의 방식이 있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윤리적인 삶을 추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도전이다.
윤리학은 신학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신학은 윤리학의 기초자료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윤리적 삶이란, 각각의 삶의 정황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공유한 근본적인 신앙에 따라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본저서는 이러한 윤리적 삶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있는 행동으로 어떻게 지혜롭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아주 잘 설명하고 있는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 내용을 살펴본다.
1. 도덕과 윤리-"윤리"라는 용어는 헬라어 ethos로부터 나왔는데 신약성경에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습관'을 쫓아(헬라어: kata ta ethos, 눅 22:29) 감람산에 올라가셨다. 사도행전 기자는 로마인들이 고소한 사람과 대면할 기회도 주지 않고 피고인들을 넘기는 '관습'(ethos)을 가지지 않았다고 언급한다(행 16:21). 관습 혹은 습관이라는 의미 외에도 ethos는 영어복수형 mores(풍속, 사회적 관습)를 의미하기도 했다. 빌립보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인들이 받아들이거나 따를 수 없는 비합법적인 풍속(mores, ethe)을 가르친다고 고소하였다. 한 서신에서 바울은 "악한 동료들이 선한 '행실'(ethe)을 부패시킨다"는 이교도 시인 매난더(Menander)의 격언을 인용하고 있다(고전 15:33).
"도덕"은 전통적이고 지배적인 관습으로 이루어져 있고, "윤리"는 그러한 관습들에 대한 반성이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행동을 하는데(도덕), 과연 그렇게 행하는 것이 정당한가(윤리)? 도덕과 윤리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우리가 "혼자만의 윤리"(solo-ethics)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윤리에 관한 지침서를 개별적으로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도덕은 항상 집단의 도덕으로 존재한다.
윤리학의 분류
① 서술 윤리학(descriptive ethics), ② 규범 윤리학(normative ethics)
③ 특수 윤리학(special ethics) ④ 메타 윤리학(meta-ethics)
2. 기독교 윤리학의 정의-“성경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관점의 조명을 통해서 도덕적 행위를 반성하는 것이다."
윤리적 반성에 속한 것 7가지 특징
① 도덕은 인간의 행위라는 것이다.
② 도덕적 행위는 규범적이다.
③ 도덕은 선과 악의 측면에 따라 조망되는 행위이다.
④ 도덕적 행위는 적절한 동기에 의한 행위여야 한다.
⑤ 행위를 볼 때 우리는 쉽게 선과 악의 구별과 관련지어 이해한다.
⑥ 윤리학은 우리가 덕(virtue)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다룬다.
⑦ 우리는 늘 "우리가 왜 이렇게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관심이 있는데, 그 질문은
"무슨 목적으로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는가?"라는 의미이다.
기독교 윤리- 도덕적 행위를 성경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관점의 조명 아래 반성하는 것
3. 기독교 윤리학의 범위
1) 헤르만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는 실재(reality)를 15가지의 양상(aspect)
으로 구분하면서, 도덕적 양상을 법적 양상과 신앙적 양상 사이에 분류하고 있다.
2) 도덕은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뿐 아니라 인간과 뒤엉켜 있는 모든 만물에 대한 우
리의 책임과도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해 도덕적 행위를 반성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들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이다.
3) 교의학과 윤리학-교의학은 성격상 신학분과에 속하지만 윤리학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초창기에 윤리학은 교의학과 마찬가지로 신학분과에 속했다.
교의학이 교회의 교의(dogma)를 다룬다면, 윤리학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룬다. 우리는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이 처음부터 끝까지 교리와 함께 삶을 다루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교의학은 '올바른 믿음'(correct faith)을 강조하고 윤리학은 '지도된 믿음
'(directed faith)을 강조한다.
4. 성경의 사용
1) 어려움
기독교 윤리학을 위한 규범(norm)을 성경에서 찾는다. 성경의 역사적 특징에 있다.
우리가 직면하는 어려움은 바로 현대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많은 윤리적 문제들이 성경의
2)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3) 해석학이 요구됨
4) 성경문자주의(Biblicism, 성서주의)적 해석을 피해야 함
5) 구약에서 신약으로 변화 : 구원이 유대인들에게 한정되지 않고 만국의 이방인들에게로
확장되었을 때, 사회적 경제적 규례를 포함하는 구약은 법률로서 그 효력이 상실되었음
이 분명해 졌다. 그럼에도 모든 교회에서 구약은 신약과 함께 권위가 존속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강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구약의 법과 적용할 수 없는 구약의 법이
자연스럽게 구분되었다. 요컨대, 의식법, 시민법, 도덕법 이렇게 세 종류로 구분된 것이
다. 의식법, 시민법, 도덕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될 때 성경
안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설명할 때 구속사를 고려해야 한다.
6) 성경에 대한 책임 있는 호소
분명히 성경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4가지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① 안내자(guide)로서의 성경
② 보호자 혹은 파수꾼(guard)으로서의 성경
③ 나침반(compass)으로서의 성경
④ 모범의 원천(source of examples)으로서의 성경
7) 이성의 사용
칼빈은 이성을 우리 모두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ratio ingenita(태어나면서 받았던
이성), 인간 타락으로부터 생겨난 ratio vitiosa와 tertia ratio(제 3의 이성)를 구분했다.
우리는 성경에서 명백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원한 계명을 우리가 처한 환경과 시대
속에서 순종해야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성경 뿐 아니라 이성이 필요하다.
물론 여기서 이성은 자율적인 이성이 아니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
하며 진심으로 지키리이다"라는 시편 11:34절에서 말하는 의미로서의 이성이다.
8) 주지(주지, motif)를 주의 할 것.
5. 십계명
1) 중심되는 계명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책임있는 행위에 관해 성찰할 때 십계명을 거론한다. 종교개혁 훨씬
이전부터 교회의 가르침은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에 집중되어 있었다. 칼빈은 특히 십
계명이 신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표현되는 것으로 다루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런 칼
빈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2)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도 교회는 여전히 시내산에 가만히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교
회의 윤리가 도덕주의와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면 결코 교회는 기독교 윤리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
한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십계명으로 되돌아가지만 말이다.
율법의 세가지 역할
① 율법의 제 1용법(usus legis primus)
② 율법의 제 2용법: 교육적 용법(usus paedagogicus) 혹은 경책적 또는 고소적 용법
③ 율법의 제 3용법(usus legis tertius): 제 3용법은 교훈적 용법(usus didacticus)
이러한 구분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할 수 있다.
① 율법은 인간을 보호하는 방화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② 율법은 인간의 비참한 상황을 보게 하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③ 율법은 인간이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척도의 역할을 한다.
6. 기독교 도덕
기독교적 삶의 양식은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강요된 기독교 도덕은 항상 율법주의와 손잡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
다. 기독교 도덕 안에서 아주 큰 다양성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에 기초해서 우리는 하나
의 단일한 기독교 도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기독교적 형식(관습, 도덕)은
다양할 수 있지만, 기독교적 삶의 양식은 동일하다.
7. 사랑과 양심
1)계명에 요청된 통일성은 사랑 안에서 성취된다. 어거스틴은 "사랑하라, 그리고 당신이 기
뻐하는 일을 하라"고 말하고 있다. 조셉 플레처는 어거스틴의 원문을 "바램을 가지고 사
랑하라 그리고 당신이 기뻐하는 일을 하라"가 아니라 "주의를 기울려 사랑하라 그 다음에
당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상황윤리를 전적으로
상황을 기초로 해서 우리의 도덕적 행위를 분류하는 윤리 체계로 이해한다. 상황 윤리는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인간은 제약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유로운 존재이며, 항상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한다.
2) 상황 윤리-사랑만이 행위의 유일한 규범으로 기능한다는 주장에 대한 세 가지 반론
첫째로, 인간 사회가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랑만이 유일한 규범이라고 주장하
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로, 우리가 새롭게 대면하는 상황이 각각 예외적이기에, 새로운
유형의 행동마다 새로운 분석이 필요하다는 말은 얼핏 보면 그럴듯하지만 사실 옳지 않
다. 세 번째로, 비록 사랑이 위대한 계명이고 사랑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
이 옳다고 하더라도(고전 13:1-13), 그것이 사랑과 다른 계명들과 별개인 것으로 생각해
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다른 계명들 또는 덕목들과 함께 나열되고 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사랑은 계명과 상치되지 않는다. "사랑은 율법을 성취하지만, 율법을 대치할 수
는 없다"(Schrage)
3) "양심"이란 사람 안에 있는 권위인데, 그 권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내린 과거나
미래의 결정 앞에 서게 하고, 또한 그러한 결정들을 용인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를 평결
한다. 구약에서는 마음으로, 신약에서는 양심은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라 아주 다양
하게 기능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양심은 상대적인 것이고, 항상 하나님의 평가에 복종하
는 것이다.
8. 아디아포라(Adiaphora)
아디아포라(adiaphora)란 사람들이 선하다고 할 수도, 악하다고 할 수 없는 사물이나 행
동을 말한다. 아디아포라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묘사하는 용어로 사용되며, 선과 악 사이
에, 절대적인 명령과 절대적인 금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아디아포라는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는 적용되지 않는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 영역 안에서 거기서 사람
들은 자유롭게 어떤 행동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아디아포라'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그 용어를
사용함으로 옹호하려 했던 그리스도인의 자유마저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
의 자유란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리에 있게 하며, 모든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누릴
수 있게 한다.
9. 의무들 간의 충돌/ 절충(compromise)
'의무들 간의 충돌'(collisio officiorum)-행동이 자유롭다는 것은 한 가지 이상의 길을 선
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그 자체로 '절대적'이지 않다. '절대적인
계명'이란 다른 계명에 상관없이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계명이다.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과 세 번째 계명이 바로 그런 계명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라는 명령은 그 자체로 절대적이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과 사람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사이에 의무의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10. 경우론
다우머는 세 가지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계명을 특수화시키는 것과 산산조각을 내는 것은 다르다. 건전한 형태의 경우론에서는 특수화된 조항이 개인적인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세부적인 것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둘째로, 비록 경우론이 율법주의로 갈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큰 공헌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 우리가 처한 삶의 상황이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독특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우리 모두가 비슷한 삶의 양식을 보여준다는 점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우머는 경우론보다 "도덕적 조언"(moral counsel)이라는 말을 제안한다.
11. 영성
“영성이란 우리가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것이다.
윤리와 영성의 관계는 두 개의 돌판을 가진 십계명을 생각할 때 너무나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영성(삼위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행위와 윤리적 반성을
위해 영양분을 공급해준다. 선한 영성은 이론적인 것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경건의 훈련으
로 가야만 한다. 영성은 장식이 아니라 책임있는 행위(responsible conduct)를 위해 절
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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