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D. 1세기부터 5세기까지
이 시기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교부시대 그리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의 교회의 선교 역사를 의미한다. AD500년으로 이 시기의 끝을 잡은 것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서로마가 AD 476년에 멸망한 것과 서로마가 대변한 서방 기독교의 흐름이 그대로 프랑크 왕국의 크로비스에 의해 그가 로마교회 출신인 한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것을 기점으로 AD 496년에 계속되어진 역사의 전환기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1) 환경적 요소들(Environmental Factors)
①헬레니즘 문화와 로마 제구그이 등장이다.
②시대 정신의 쇠약과 신비주의적 밀교의 등장
③국제주의(Cosmopolitan)적 상황과 디아스포라 된 유대인들의 로마 제국 산하의 모든 지역에 확산된 것이다.
④연속적인 핍박을 통한 교회의 정화와 제국의 정치적인 불안정
세기부터 4세기 초에 로마 제국의 황제들에게서 대략 10여 차례의 계속되는 핍박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1세기의 네로와 3세기 중엽의 데시우스와 4세기 초의 디오클레티안의 핍박이었다. 이런 연속적인 핍박 속에서도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나 폴리갑 그리고 오리겐 저스틴 마터 등의 지도력과 기독교에 대한 효과적인 변증 등은 당시의 지배 계층뿐 아니라 서민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고 교회는 핍박 속에서 비록 도처에 흩어져 비밀스럽게 예배드리며 명맥을 유지하였지만 위축되지 않았으며 산불처럼 확산이 되었다.
콘스탄틴이 그의 군대에 의해 그의 아버지인 콘스탄티누스 클로루스의 후계자로서 아우구스투스로 추대되었을 때 경쟁자들이 있었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장기간의 전쟁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기독교에 호감이 있었고 콘스탄틴 주변에 기독교인들이 있었으며 그에게도 기독교의 영향이 있었는데 막텐티우스와의 결전에서 십자가를 상징하는 군기를 만들게 하여 전쟁을 했을 때 승리하는 체험을 하였다. 그는 이때의 그의 체험을 유세비우스에게 이야기함으로 기록으로 남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는 콘스탄틴이 로마 황제로 등극함을 계기로 잠시 핍박도 있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평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콘스탄틴은 317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임으로 핍박의 시기는 지나가고 새로운 기독교의 시대가 열려지게 되었다.
⑤북방 흉노족의 계속적인 침입과 로마 제국의 쇠퇴와 기독교의 확산
로마 제국의 멸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본은 로마 제국이 멸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서 교회가 비생산적인 재화를 많이 소유하고 지배 계층으로 군림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지만 그의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로마 제국의 도덕적인 타락과 일반 서민들의 사치와 방종에 대하여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경고한 암브로스와 어거스틴 같은 지도자가 있었고 대(大) 그레고리는 오히려 북방 흉노족들의 침입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로 생각하였고 저들을 복음화하는 것이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서로마는 정치적으로 멸망하였어도 침입해 들어온 고트족, 비트 고트족, 반달족, 버간디족, 롬바르드족은 아리안 기독교의 영향이 있었으나 이것을 궁극적으로 극복하고 기독교의 영향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
2) 신학적 요인들(Theological Breaktrough)
①선교자들과 사도들로부터 전수되어 온 복음의 유산에 대한 공통의 확신과 신앙고백이 있었다.
3세기 초에 성경 66권이 하나님에 의해 기록된 계시의 말씀으로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 온 신앙의 규율이 있어서 2세기 말과 3세기 초에는 공통적으로 교회에 의해 권위 있는 교회에 의해 권위 있는 교회에 대한 지침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신앙의 규율은 오리겐과 이레니우스에 의해서도 그 존재가 언급되었는데 세례에 관한 지침과 특히 초신자들에 대한 가르침이 조직적으로 성경에 의거해서 정리되어 있었다. 이렇듯이 이 시대의 교회는 사도들로부터 저들에게 전해진 복음의 유산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이것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전수하였으며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데 열심을 내었다.
②복음의 전인 구원적 온전성이다.
당시 유행하던 밀교는 대개가 영혼 구원이나 혹은 극단적으로 현세의 육체적인 쾌락만 좇게 하는 특성이 있었다. 도한 당시의 지성인들의 이데올로기로서 소토익 주의나 에피큐리안니즘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양상을 때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구원하는 전인적인 구원이었으며, 당시 그리스도인의 내세에 대한 소망과 현세의 삶에 대한 도덕적인 고상함과 생활의 순결성과 성실성 등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에 대한 생생한 표징이었고 전인 구원에 대한 매력이었다. 이것이 복음이 각계 각층에게 확산되는 큰 요인이 되었다.
③초대 교회 때부터 각종 이단들에 대한 단호하고 효과적인 대처가 있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7 초두에서 다른 복음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는 초대 교회시에 이미 발호하기 시작한 헬라 사상에 영향을 받은 그노시스파(Gnosist)들에 대한 경고를 발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고 그의 신성을 믿지 아니하는 이단 사설에 대하여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골 2:8-9).
이 시대의 이단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2세기 초의 마시온파(Marcionist)와 2세기 후반부에 등장하는 몬타누스(Montanist) 운동이 있었다. 마시온은 그노시스파의 일종으로 구약과 신약의 신을 구분하며 그리스도의 환영설을 주장하였다. 몬타누스 운동은 일종의 광신적인 성령 운동인데 자신을 위로자가 되시는 성령과 동일시하였고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수차례 예고하였다.
4세기 초에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리우스가 등장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특별한 피조물로 여기는 이단적인 기독론을 확산시켰다. 이러한 교회의 정체성과 복음의 생명력을 위협하는 이단 사설들에 대하여 교회는 단호하게 대처하였고 특히 콘스탄틴이 소집한 325년의 니케아 교회회의는 아리우스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삼위일체의 교리를 확립하였다.
3) 영적이 원동력(Spiritual Dynamics)
①사도 공동체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과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예수께서 사도 공동체를 직접 세우셨으므로 저들을 통한 복음의 전수는 권위가 있었고 능력이 있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은 먼저 사도 공동체에게 그 부르심을 확정 받아야 했고 그는 이 과정을 통과한 이후에 비로소 공식적인 교회의 인준을 받으며 활동할 수 있었다(해 9:26-27). 또한 사도 공동체에게 사도 됨의 표징으로서 비상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으며(행 4:33) 저들은 사도 공동체의 권위를 가지고 교회의 분쟁을 해결했으며 이단들을 물리치고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함으로 주의 교회의 기반을 굳건히 세울 수 있었다.
②성령 강림으로 탄생한 초대 교회 공동체와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이 강림하셨고 신약 교회를 탄생시켰다(행 1-2장). 신약 교회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 속에서 교회의 생존을 위협하는 안팎의 위협들을 극복하면서 복음을 힘 있게 증거하였다(행 4장). 성령은 개인의 중생과 성화와 영화의 열매를 맺게 하실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며 성도를 온전케 하도록 은사와 직분을 주시며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는 비상한 그분의 능력을 쏟아 부어 주셨다(고전 12:3; 갈 3:15; 엡 4:7-12; 행 1:8). 교회를 향한 이런 성령의 역사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인데 선교 역사를 통해서 교회가 역적으로 화석화되고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성령은 종종 교회를 영적으로 각성시키시고 부흥케 하셔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또한 교회가 감당할 수 없는 핍박과 교회의 생존을 위협하는 도전 속에서 성령은 교회를 위로하시고 교회가 그런 혹독한 상황하에서도 복음을 증거할 수 잇도록 배후에서 역사하심으로 생존케 하셨다(마 10:20).
4) 선교 매체(Transfer Means)
①핍박과 흩어짐을 통해서 교회는 복음을 편만하게 많은 지역에 전파할 수 있었다.
사도행전 8:1-3은 이런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사마리아 교회도 수리아 안디옥 교회도 핍박 중에 흩어진 교인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됨으로 세워지게 되었고 교인들이 도처에 흩어짐으로 복음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3세기 초에 순교한 터툴리안은 교회가 아무리 핍박을 받을지라도 오히려 핍박이 교회를 더욱 전세계에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놀라운 진술을 하고 있다.
②순교가 복음 전파의 한 통로가 되었다.
스데방의 순교가 바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듯이 초대 교회 성도들의 순교는 당시의 로마 제국 산하의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엇고 그리스도인들의 충성과 헌신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감화력이 있었다. 2세기 중엽에 서머나 교회가 폴리갑의 순교 사건을 기록한 서신을 당시 교회들에게 전달하였는데 그 내용 안에 순교가 복음 전파의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③이 시대 교회의 전도 방법으로서 개인 전도와 노방 전도 그리고 가정 전도와 서신 전도가 있었다.
초대 교회시부터 교회는 개인 전도와 노방 전도를 실시하였고 또한 각 가정을 방문하여 인가 구원을 시도함으로 가정에서부터 교회가 시작이 되었다. 초신자임에 틀림이 없으며 아직도 복음 진리에 대하여 확실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 데오빌로에게 누가는 두 개의 서신을 보냄으로 저를 복음의 내용과 교회 공동체의 역사로 인도하였다. 2세기에 콰드라투스, 아리스티데스, 저스틴 마터, 아테나고라스 등과 3세기의 오리겐과 터툴리안 등은 그들의 서신들을 통하여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인들과 그리스 철학자들과 로마의 관원들에게 복음을 변증했을 뿐 아니라 효과적으로 복음의 진수와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구별된 삶을 나타냄으로 복음을 능력 있게 증거하였다.
④순회 전도자들을 통한 복음의 확산이다.
요한삼서는 초대 교회 때에 이미 복음 전파를 위해 순회하며 활동하는 순회 전도자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종종 이들은 교회의 임명을 받고 특정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하였는데 교회 개척과 교역자가 없는 교회들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였다. 성경은 포괄적 의미로서 이들을 광의적인 의미의 사도로 호칭하고 있는데 이것은 순회 전도자라는 의미 이외에 다른 아무 의미도 아니었다(행 13:3; 롬 16:7). 12사도의 가르침으로 불리는 『디다케』도 이 순회 전도자의 역할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또한 거짓 순회 전도자의 피해를 경계하여 저들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말하고 있다.
⑤복음이 로마 제국의 상업로와 해상로를 통하여 신속하게 확산되었다.
바울의 3차에 걸친 선교 여행이 바로 이런 로마 제국의 상업로를 중심으로 전략적으로 수행되었으며 로마 제국의 중요 도시 전역에 2세기 중엽에는 교회가 없는 곳이 없었다. 이러한 선교 통로는 로마 제국 전역에 교회를 확산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결국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를 받아들일 정도로 영향력 있게 확장이 되었다. 터툴리안은 이런 상업로와 해상로를 통하여 복음이 편만하게 확산된 것에 대한 충분한 암시를 주고 있다.
5) 선교 구조(Mission Structure)
이 당시의 교회의 선교 구조의 효시는 바울의 선교팀이다. 바울은 현지 교회를 세우고 현지에 두 가지 종류의 동역자를 세웠는데 지역 교회를 섬기는 장로와 그의 선교팀의 동역자가 되는 사람들이다(행 14:23; 15:40; 17:15; 18:18; 19:22; 20;17; 딤후 3장). 지역 교회를 섬기는 장로들을 감독이라 호칭하기도 하였는데(행 20:28) 이들은 오늘날 교회의 치리와 말씀을 전하는 목사, 장로의 효시가 된다. 바울의 선교팀은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지역 교회에 고정되어 사역하지 않고 기동성 있게 사역하였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에베소로 보내기도 하였고 마게도니아에 내려오도록 하게도 하여 그의 사역을 돕도록 하였다. 바울은 또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2차 선교여행을 함게 떠나기도 하였고 저들을 에베소에 남겨 놓기도 하였다. 이러한 바울의 선교팀의 동역자가 없었다고 하면 바울은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울의 선교팀의 특징은 자원적인 헌신으로 이루어졌으며 교회를 섬기는 사역을 하였고 지역 교회를 통해서 배출이 되었으며 기동성 있게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저들은 광범위한 지역을 순회하였으며 각 지역에 대한 전문성과 동질 단위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바울의 선교팀의 전통은 그대로 후대 교회에 계승되어서 순회 전도자들이 구성되었고 때로는 저들은 팀을 이루어 교회 개척 사역과 연약한 교회를 돌보는 선교사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이들을 가리켜서 광의적인 의미의 사도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 의미는 문자 그대로 선교사라고 하는 뜻인 것이다.
6) 지리적 확장(Geographical Expansion)
로마제국 산하의 통치 지역들에는 교회가 확산되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그 지역들은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근동, 이베리아 반도, 발칸 지역, 라인강 유역, 스위스 일부, 남부 불란서와 남부 독일, 아르메니아, 아일랜드와 페르시아의 에뎃사 지역 드에 교회가 있었다.
7) 종족, 종족 그룹, 계층(People, People Group, Class)
초대 교회의 종족 분포로는 우선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과 로마인들과 소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복음은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확산이 되어 그 지역의 종족들을 복음화하였고 남부 독일과 불란서에 걸쳐 있는 골족(Gaul)과 버간디족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또한 발칸 반도 유역과 남부 유럽까지 진출한 훈족과 고트족과 투르크족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고 로마의 식민지인 영국의 앵글로 색슨족에게도 미약하지만 복음이 전파되었고 후에 신성 로마 제국으로 등장하게 되는 프랭크족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종족 그룹으로는 유대인들 중에도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이 있었으며 히브리파 유대인은 아람어를 사용하였고 헬라파 유대인은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였다. 또한 고트족과 비시 고트족은 같은 종족 계열이지만 지리적인 분포 지역에 따라 갈라지게 되었고 언어와 문화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 이렇듯이 이 시대의 복음 전파는 다양한 종족들뿐 아니라 종족 그룹에 이르기까지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되어졌고 교회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외부적 환경의 여건에 개의치 않고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략적으로 능력 있게 증거하였다. 교회의 선교 대상은 사회 계층적으로 각계 각층이었으며 계층의 차별을 두지 않았으나 바울이 고린도전서 1:26-31에서 충분히 암시하고 있는 바처럼 저소득 계층이 복음에 가장 수용적이었으며 교회가 제도권하에 편입이 되자 점차적으로 상류 계층 위주의 선교가 수행이 되었다.
8) 중요 인물들(Key Persons)
①예수 그리스도, 사도 공동체, 사도 바울
②그레고리 타우머터거스(Gregory Thaumaturgos)
③계몽자 그레고리(Gregory th Illuminator)
④투루즈의 마틴(Martin of Tours)
⑤클로비스(Clovis)
⑥올필라스(Ulfilas)
⑦어거스틴
9)토착화(Indigenization)
①로마 제국 산하의 일반 서민들과 지성인들의 언어로 사용이 되던 그리스어로 신약성경이 기록되었다는 데 성경적인 토착화의 모범이 있다.
②로마 제국의 라틴 문화권하에서의 제도적 토착화이다.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
-기독교의 도덕적 우월성
-당시 사람들의 전인적인 필요성을 복음이 능히 충족시켜 줌
-복음의 불변성과 성경적 토착화
-교회의 각계각층에 대한 포용성
-로마 사회의 단일 조직체로서 교회 같은 범세계적인 기구가 없었다.
-사회의 해체화 현상
-콘스탄틴의 정치적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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