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제 1장 창세기 해설
1.오경 개관
*오경의 이름 설명
-현재 오경은 구약 정경 속에서 창세기로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을 가리킨다.
-이 다섯 권의 책은 랍비 전통 속에서 히브리어로 하미샤 훔쉐 핫토라(hrwth yvmx hvymx)))라고 불린다.
-토라 두루마리(세페르 토라 hrwt rps)는 손으로 쓴 토라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반면 인쇄본은 후마쉬(vmwx)라 한다.
-헬라어 이름은 “다섯 개의 책” 혹은 “두르마리”이다.
헬라어: pentateucoj (penta, “5” + teucoj, “scroll, 두루마리; “book, 책”)
라틴어: pentateuchus
영어: Pentateuch
-각 책의 제목은 유대교 전통 속에서는 책의 처음의 중요한 몇 단어로부터 파생되었다.
창세기: 브레쉬트(tyvarb), “태초에”-첫 단어
출애굽기: 쉐모트(twmv), “이름들”ß “이것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들이다”(붸엘레 쉐모트브네 이스라엘)이란 문구에서 파생
레위기: 봐이크라(arqyw), “그가 부르셨다”-첫 단어
민수기: 브미드바르(rbdmb), “광야에서”
신명기: 드바림(~yrbd), “이것은 그 말씀들이다”(엘레 핫드바림)이란 문구에서 파생
2. 오경은 다섯권?: 육경, 사경, 구경
*구약성경의 첫 구성물은 꼭 다섯 권이어야만 하는가?
①6경(오경+여호수아서)
-H. Ewald (Bonfrère [1625]; Spinoza [1670]; Geddes [1972]의 자취를 따라)의 6경 주장 이후 6경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유행을 탐
-G. von Rad는 소위 “역사적 신조”(historical creed)라는 것을 주장했다.
이 신조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의 기원에 대한 핵심을 담고 있다.
이 신조들은 신 6:21-23; 26:5-9; 수 24:2-13에서 발견된다.
이 신조들은 땅의 선물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오경은 틀리고, 여호수아서가 포함된 6경이 맞다.
②4경(창-민; 신명기 제외) (Tetrateuch)
-M. Noth, A History of Pentateuchal Tradition이 von Rad의 견해 공격하면서 신명기를 따로 떼서 뒤의 역사서들과 연결시킴.
-Noth의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1) 4경 속에는 “신명기적”(Deuteronomic) 본문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약간의 추가 본문들 뿐이다. 그러므로 4경과 신명기는 문헌상의 연결이 없다.
(2) 오경의 문서들은 여호수아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즉 4경은 여호수아서에서 연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6경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3) 신명기는 소위 “신명기적 역사”(Deuteronomistic History) (여호수아서-열왕기서)란 것의 서론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 1-3장은 민수기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명기가 역사서의 서론으로 작용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가 않다면 신 1-3장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MC: 역시 Noth는 문학성에 대한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 반복이라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신 1-3장은 또한 민수기의 무덤덤한 반복도 결코 아니다. 현재의 본문 내에서 신 1-3장은 완전히 논리적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Noth의 견해에 따르면 신명기적 역사는 “신명기의 빛 속에서” 읽혀야만 한다.
(4) 오경은 4경이 신명기적 역사와 합쳐져서 거대하고 단일한 역사적 작품으로 형성되었을 때에야 존재하게 되었다.
-신명기는 오경의 결말로서 기능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것을 수-왕의 역사기록으로부터 분리시켜줄 필요가 있게 되었다.
* Noth는 4경이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는 주장을 하는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4경이 정복의 기록까지 연결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MC: 여기에 Noth의 논리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 4경의 존재를 더 적극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스웨덴 학자 Engnell이었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4경은 P(제사장 기자, the Priestly Writer)의 작품이었다. 이 P는 고대의 구전 전승들을 수집하고 편찬했다.
-원시적 신명기(the primitive Deuteronomy, Dt)와 신명기적 역사는 이 P의 4경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Engnell은 이 이상 자신의 이론을 구체화하지도, 발전시키지도 않았다.
③9경(오경 + 수, 삿, 삼, 왕) (Enneateuch)
* 9경 전통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창세기-열왕기서로 구성된 저작이 세상의 창조로부터 바벨론 유수까지를 포괄하는 단일저작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중심 주제는 땅이다.
-D. N. Freedman은 이 단일저작은 이스라엘의 “제 1 일 역사”(the Primary History)이다.
-이 제 1 역사는 역대기, 에스라서, 느헤미야서로 구성된 역대기적 역사(the Chronicler’s History)와 구분된다. 제 1 역사는 창조부터 바벨론 유수까지, 제 2 역사인 역대기적 역사는 창조부터 이스라엘의 재건까지를 다룬다.
* 이 주장을 하는 학자들의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의 역사”는 땅의 정복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삿 2:8, 10은 출 1:6, 8과 연결되어 있다. (중요인물 죽음; 모르는 새 세대의 등장)
-이러한 문학적 “괄호”(bracket)들은 내러티브 덩어리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며, 이스라엘 역사의 다른 시대들을 연결시켜준다.
(2) 책의 연대기적 구성이 이 포괄적 역사의 단서를 보여준다.
-출 12:40-41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430년 살았다고 말한다(참고, 창 15:13 400년)
-솔로몬 성전은 출애굽의 480년만에 지어진다(왕상 6:1) (430+50).
-솔모몬 성전 건축이 제 4 년인데, 이것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멸망 때까지의 연대가 역시 430년이다. 여기에 50년의 바벨론 유수 기간을 더하면 480년이 된다. (이 480의 기간은 대략적인 것임에 유의하라.)
(3) 블렌킨솝(Blenkinsopp)은 오경이 모세의 죽음으로 끝날 수 없는 이유를 세 가지(a/b/c) 제시한다.
a. 여호수아서가 없다면 족장들에게 주어진 땅의 약속은 성취되지 못한 채 끝이 난다. 참고로 수 21:43-45는 정복이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의 성취라고 말한다.
b. 창조(창 1장), 성막 건설(출 35-40장), 약속의 땅에서의 성막의 설치(수 18-19장) 사이에는 상응성이 존재한다. 또한 솔로몬 성전은 출애굽 후 480년 만에 지어졌다(왕상 6:1).
c.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언약과 율법에의 순종이다.
-신명기적 역사는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인해 땅에서 쫓겨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창 2-3장의 아담과 하와 역시 불순종으로 인해 땅에서 쫓겨난다.
* 9경 개념이 많은 재미있는 통찰들을 던져주기는 하지만 아직은 역사비평학적인 견지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3. 여전히 오경
①신명기 34:10-12는 오경과 구약의 나머지 책을 나누어주는 “결정적인 구분선”(the dividing line)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본문의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주장한다.
a. 모세는 모든 선지자보다 위대하다.
-이 점은 모세의 율법이 구약의 다른 모든 계시보다 우월한가 하는 것의 토대이다.
-구약에서의 오경의 권위는 모세의 특별한 영감에 기초한다.
b. 모세의 위대성은 여호와와의 특별한 관계에 기인한다.
-모세의 여호와와의 특별한 관계는 출 33:11; 민 12:6-8(참고, 요 1:18; 3:11) 등에도 표현되어 있다.
-Ska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세와 여호와는 “막”(screen) (즉, 꿈이나 이상[vision] 등; 참고, 민 12:6-8)이나 중계자(intermediary)가 없는 “직접적 접촉”(direct contact)을 통한 관계이다.
c. 출애굽은 이스라엘 역사의 토대(foundational)가 되는 사건이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스라엘이란 국가적 존재의 출범은 다윗이나 솔로몬이 아니라 모세에 기인한다.
이스라엘의 존재는 왕조나 정복 활동 이전부터이다.
②정경 제 2 부분(전후 선지서): 그 시작과 끝이 오경의 존재 확인
a. 수 1:1-8
* 선지서(즉 전선지서)의 첫 본문인 이 본문은 오경과 선지서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의 사항들을 명시해준다.
(1) 여호수아는 모세의 계승자이다.
(2) 모세는 여호와의 종(에베드 아도나이)이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므샤레트 모쉐)이다.
-모세는 여호와와의 관계에 의해서 그의 정체성이 표현되지만 여호수아는 모세와의 관계에 의해서 그의 정체성이 표현된다.
-여호수아서 24장에 가면 여호수아 역시 “여호와의 종”이라고 불린다.
(3) 모세와 여호수아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그러나 이 연속성은 모세의 시대에 시작된 일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
(4) 여호수아의 성공은 그가 “모세의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하는 것이다(7-8절).
-이러한 성공의 기준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걸쳐서 계속 적용된다(왕하 17:7-23)
-솔로몬: 왕상 2:2-4 (특히 3절)이 더 확실.
b. 말 3:22-24
*선지서의 마지막인 말 3:22-24도 비슷한 사항들을 담고 있다.
말4: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말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 본문은 여호수아 1장과 inclusio를 형성하고 있다.
*이 장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a. 선지서들은 모세의 율법에 비추어서 읽어야 한다.
b.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c. [Ska는 이 본문이 신명기 법이 모세의 율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언급]
d. 선지자들 중 엘리야만 언급.
-엘리야만 언급된 이유는 그가 모세와 가장 닮았기 때문이다(왕상 19장; “사십일 사십야, 출 24:18; 34:28; 신 9:9; 왕상 19:8).
-여기에서 “모세의 법”이라는 표현에만 주목하면 될 듯.
③정경 제 3 부분: 그 시작과 끝이 오경의 존재 확인
*참고: 구약정경상의 성문서는 시편으로 시작해서 역대기로 끝이 난다.
*시편 1편: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
*이 시편 1편의 내용들은 시편과 성문서를 율법과 연결시키는 기능.
-인과 악인의 구분 기준은 율법의 묵상이다. 율법은 또한 판결의 기능도 한다(시 1:5-6).
-율법은 여호와의 율법(토라트 아도나이)이라고 불려진다.
-시편 1편은 시편과 모든 성문서의 글들(the Writings)을 여호와의 율법에 대한 묵상으로 이해하도록 초대한다.
* 시편 1편과 여호수아서 1:1-8은 연결되는 표현들이 많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
-“네가 하는 모든 일에 형통”
-이런 점에서 볼 때 시편 1편은 의도적으로 여호수아서 1:1-8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마 구약정경의 편찬 과정에서 분명히 이 점은 계산된 것으로 생각된다.
*대하 36:22-23
*이 대목은 좀 약하다.
*여기에서 Ska는 고대의 구약 정경상의 순서는 역대기-에스라서-느헤미야서가 아니었나 추론한다.
-이 경우 느헤미야서의 중심은 8장이다. 거기에서 모세의 율법은 중요하다.
④오경 정경 정리
* 신 34:10-12가 구약의 나머지 책들과의 확실한 구분선이 된다.
* 정경의 제 2 부분(선지서), 제 3 부분은 오경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4. 창세기: 시작의 책
세상의 시작(창 1-2장)
인류의 시작(창 1-2장)
결혼의 시작(창 2장)
죄의 시작(창 3장)
구원의 시작(창 3:15; 6-9장; 12장 등)
각종 문명의 시작(창 4장)
출생의 시작(창 4:1)
살인의 시작(창 4장): 가인
죽음의시작(창 4장): 아벨
영생의 시작(창 5:24): 에녹
국가의 기원(창 10-11장 )
인간의 종교(무화과 나무 옷)과 하나님의 구원(가죽 옷)의 대조의 시작
구속사의 진정한 시작(창 12:1-3): 아브라함,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스라엘의 시작(창 12-50장): 아브라함-시조; 야곱-12지파의 조사
제 2장. 창세기 1-11장: 원역사
1. 창세기 1-11장의 구조
1:1-2:3 창조기사 I
2:4-2:25 창조기사 II
3장 타락
4:1-5 가인과 아벨: 첫 살인
4:16-26 가인의 계보
5장 셋 계보
6-9장 노아 홍수
10장 세상의 지파들
11:1-11 바벨탑 사건
11:12-26 셈의 족보
11:27-32 데라의 족보: 아브라함의 배경
*창 1-11장을 접근할 때 유의할 사항
-창세기의 기록은 있었던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다 기록한 글이 아니라 그 시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선택적으로 언급한 것.
-이 선택과 상세함의 기록정도는 경우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본문에 안 나타난 점보다는 나타난 점에 집중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이전에는 회의론자들이 이 점들을 중시해 왔지만, 이제는 점차 창세기가 철저한 기록이 아니라 선택적인 기록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인정한다. 하나님께서 이 선택적인 내용을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신 바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본문의 줄거리에 나타난 중요한 점들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다” (아더 컨덜, 창세기-출애굽기: 15).
-1-11장은 창조와 세계의 시작 때에 일어난 여러 일들의 신학, 정신, 인간이고통을 겪게 된 이유 등의 문제를 간략히 제시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고, 이후는 그 문제의 해결을 지향한다.
-글의 주요 관심사와 분량은 상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경 및 창세기에서의 글의 분량을 생각해 볼 때 1-11장은 창세기의 정말 관심사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오경 및 창세기는 문제의 원인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결에 관심이 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1-11장은 창조부터 역사의 시작 때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한 상세한 과학적,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과학적 지식과 연결시켜서 다루는 데에는 항상 조심해야한다. 물론 우리가 가진 정보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항상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적 지식에 맞추어서 성경을 재단하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글들을 접근할 때 성경이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야지 아닌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구조: 각 부분 연결고리 고려
- 원역사가 어디에서 끝나고, 족장사가 시작할까?
- 사실 본문은 이 두 부분을 나누어주고 있지 않다. 11:26/27을 보면 내용이 반복된다. 이렇게 두 부분은 연결되어 있다. 또한 11:27-32는 원역사와 족장사의 중첩부분이다.
2. 창 1:1-2:3 제 1 창조 기사
*1장은 반복적인 문구가 많이 나타난다.
(1) “하나님이 가라사대”(10회: 3,6,9,11,14,20,24,26,28,29)
(2) 명령구, “~이 있으라”(8회: 3,6,9,11,14,20,24,26)
(3) 성취에 대한 보도: “그대로 되니라”(7회: 3,7,9,11,15,24,30)
(4) 창조 행위 기술, “하나님이 만드사”(7회: 4,7,12,16,21,25,27)
(5) 결과 승인 문구(7회: “4,10,12,18,21,25,31)
(6) 이름 짓거나 축복하는 말씀(7회: 5[x2], 8,10[x2],22,28)
(7) 날짜에 대한 언급(6/7회: 5,8,13,19,23,31[2:2])
-7회의 반복구가 두드러짐.
-3일과 6일이 강조됨
-나중의 창조의 6일의 도표에서 보게 되겠지만 첫 3일은 3일에서 정점에 이르고, 나중 3일은 제 6일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은 제 7일에 의해 모든 창조는 끝을 맺는다.
-두 날 모두 “하나님이 가라사대”가 다중적으로 사용되고, 몇 중의 구조를 띠고 있음.
*1:1-2 서론: “하늘과 땅” 창조
-한자말 “천지”는 온 세상, 우주와 동일한 의미.
-히브리어 “하늘과 땅”도 마찬가지(merism: 제유법 ).
-땅은 창조된 것인가? 아닌가?
-성 오거스틴은 고백록 제 11-13장에서 창세기 1장에 대해서 자세히 다룬다. 그 중에서 오거스틴은 이 1:1의 “하늘과 땅”은 이후에 나오는 표현들과는 다르게 이해해야 함을 지적한다. (참고: 김용규,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서울: 휴머니스트, 2010], 349쪽 이하).
-성경신학자들이 가진 한계들 중의 하나는 너무 계몽주의적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1+1=2이지요. 하지만 조금만 해석학적 지평을 넓혀서 생각해보면 1+1의 답은 무한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열려 있습니다. 위의 김용규가 지적하듯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란 주기도문의 표현에서 “하늘”은 어디일까요? 결코 허블의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하늘은 아닐 것입니다. 과학의 눈으로 이 하늘에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가 도착하는 종착역은 리차스 도슨의 결론 뿐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은 그런 물리적 세계를 가리키는게 아니지요. 창세기 1:1의 하늘과 땅 역시 통상적인 어법과는 다르게 읽는 것이 조금 더 타당성을 갖겠지요.
*1:3-5 첫 째날
-빛의 창조: 보시기에 좋았더라.
-빛과 어두움을 나누심
*1:6-8 둘 째날
-궁창(=하늘)을 만드셔서 물과 물을 나눔: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심.
*1:9-13 셋 째날
-9-10절: 뭍이 드러나게 하심*
-11-12절: 식물을 만드심(식물은 제 6일의 생물들의 식량)
-13절: 결구, 날짜에 대한 언급.
-“하나님이 가라사대”란 말이 두 번 나오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한 번 나온다. 이 두 말이 제 6일과 마찬가지로 이 날의 기록을 구조적으로 나누어준다.
-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뭍이 드러나게 하심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땅은 1:2의 땅?
-뭍에서 식물을 내게 하심(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4-19 넷 째날
-광명
-해, 달, 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20-23 다섯 째날
-물의 동물들/하늘의 새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축복하심: 최초의 축복을 받은 것은 인간이 아니라 바다와 공중의 생물들
-22절:“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hrp, hbr, ~ymh-ta alm, hbr)
*1:24-31 여섯 째날
-“하나님이 이르시되”란 말이 구조 분석에 중요(24,26,28,29). 여섯 째 날에만 총 네 번이 반복된다(וַיֹּ֣אמֶר אֱלֹהִ֗ים).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란 말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세 째 날과 마찬가지로 이 문구들이 이 날에 대한 기록의 구조를 나타내준다.
a. 24-25절: 땅의 짐승 창조
b. 26-31절: 사람 창조
1) 창조(26-27절)
2) 지상 명령(28)
3) 음식공급(29-30)
d. 31 결론: 31절은 1장 전체의 창조 기록에 대한 정리이기도 하다.
*2:1-3 일곱 째날-결론
-“일곱 째날”이 세 번 반복됨 일곱 째 날에 대한 강조
-안식
-축복하심
-거룩하게 하심: “구분하게 하다”
1일 | 빛과 어둠(시간적 나눔) | 4일 | 발광체들 |
2일 | 하늘/물의 나뉨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수직적 나눔) | 5일 | 새들과 물고기 하늘의 짐승과 물의 짐승 |
3일 | 뭍과 물 나눔(수평적 나눔) 식물 (뭍은 식물의 처소) | 6일 | 동물들과 사람 |
7일 | 안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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