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웨스트민스터 신악고백 해설 삶의 적용 답 정리(16장-33장)

예림의집 2013. 6. 15. 22:00

웨스트민스터 신악고백 해설 삶의 적용 답 정리(16장-33장)

 

제16장 선행들

1-1. 아내 말에 순종하기, 설거지하기, 동역자들에게 격려의 메시지 보내기. 이웃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중고등부 아이들 토요일에 만나서 탁구치고, 공부하고, 함께 놀고, 성경공부하기. 영적 입양아를 위하여 기도하고, 기부하기.

1-2. 나는 선을 행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한다.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값없이 베푼다. 또한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을 행한다.

2-1. 신자들의 참 선행은 하나님의 계명들에 순종해서 행해지고,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의 열매들이자 증거이며, 우리는 선행들에 의해 감사를 나타내고, 확신을 강화하며, 형제들의 덕을 세우고, 복음의 고백을 자익하며, 대적들의 입을 막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이다.

2-2. 개신교인들이 ‘인신칭의’ 교리를 강자하기 때문에 선행을 소홀히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선행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언행으로 글로 약한 자들을 돌봄으로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우리 가정에 영적 입양을 통하여 그 아이를 후원하고 기도하는 일을 한다.

3-1. 나는 나의 마음속에서 선을 행하도록 강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을 체험해 본 적이 있다. 그 감동에 순종하여 지금 세 곳은 5명의 어린아이들을 영적 입장하여 후원하며 기도하고 있다.

3-2. 비록 성령의 특별한 움직임이 없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본적으로 행하여얄 선행들이 있다고 본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거나, 아픈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 내 안에 착한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것은 나의 삶에 필수라고 본다.

4-1. 내 안에서 무지부식간에 일어나는 많은 악한 생각들과 더러운 유혹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날마다 성령의 법과 육체의 법의 전쟁 속에 있다.

4-2. 내가 나의 본성, 성향, 사고, 의지, 또 현재 살고 있는 삶의 정황들을 살펴볼 때, 나는 결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오직 성령님의 강력한 인도만이 나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할 뿐이다.

5-1. 나의 최선의 행위들로도 죄의 용서나 영생을 받을 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의 선행들과 장차 올 영광 사이에는 큰 불균형이 있고, 나와 하나님 사이에 무한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한 때에라도 나는 그저 나의 의무를 다한 것뿐이요, 하나님 앞에서 무익한 종일뿐이다.

5-2. 내가 행하는 선행들은 그것이 비록 최선의 행위들일지라도 죄의 용서나 구원을 받을 만하지는 못하다. 나의 선행이 비록 성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나로부터 나오는 행위들은 더러워지고, 많은 연약함과 불완전으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나오는 행위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함을 견디어 낼 수 없다.

6-1. 자격은 없지만 자신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하신 일을 가슴에 받아 그분처럼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리고 내 안에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선한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까?

6-2.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이다. 나의 선행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나의 인격이 그리스도를 통해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선행들을 보시고 그것들을 성실한 것으로 받으시고 상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것이 비록 많은 연약함과 불완전한 선행일지라도.

7-1. 비난을 받을만한 일을 많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관이 잘못되어 있어 그들의 삶도 삐뚤어져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통곡할 일이다. 기독교인이라 하면서 그 삶은 비기독교인들 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참으로 회개하고, 돌이킬 일이다.

7-2. 일반인들과 성도들의 선행은 그 근본부터 다르다. 물론 일반인들의 선행이 평가 절하가 돼서는 안 되겠지만, 그들의 선행은 정결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따라 올바른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도 아니며, 또 올바른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는 것도 아니다. 성도의 선행은 위와 같아야 한다.

 

제 17장 하나님과 성도들의 견인

1-1. 나는 성도이다. 그러므로 나는 결국 궁극적으로 견인되리라 믿는다. 나는 내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반드시 이루실 것을 굳게 믿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에 순복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1-2. 성도의 견인 교리의 부정적인 측면은 없다. 단지 우리가 오해함으로 나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의 구원을 위하여 끝까지 일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더욱 분발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그분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1. 나는 성도의 견인 및 구원의 보전이 확실하다고 하여 안심하면서 나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감사와 감격 속에서 더욱 더 충성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이다.

2-2. 성도의 견인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선택의 작정의 불변성에 근거한다. 성도의 견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기도의 효력에, 성도들 안에 있는 성령과 하나님의 씨의 내주하심에, 또 은혜언약의 성질에 근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항상 우리를 택정하신 본래의 뜻대로 인도하실 것이다.

3-1. 성도가 극심한 죄에 빠질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전적 부패성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사탄과 세상의 시험들 때문에, 성도들 안에 남아 있는 부패의 우세성 때문에, 경건 생활을 게을리 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실족하지 않기 위한 신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죄에 빠졌을 경우 절망해서는 안 되며, 회개하고 영적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3-2. 첫째, 경건생활(말씀, 기도, 예배). 둘째, 모든 결정에 있어서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에 비추어 해야 한다. 셋째, 죄에 대한 바른 생각과 죄의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넷째,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섯째, 죄에 대한 바른 지식과 그 대처법을 익혀 두어야 할 것이다.

 

제 18장 은혜와 구원의 확신

1-1.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을 믿습니다. 나이 구원은 태초 전부터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으며, 그 구원을 이루시고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령님의 감동을 통하여 내가 죄인임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알게 하셔서 나이 죄를 회개케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구원의 근거입니다.

1-2. 거짓된 확신-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 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도다(미 3:11).” 참된 확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씀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2-1.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경건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기도와 말씀 생활을 하고,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마음을 통하여 역사하실 때, 성경에서 그 증거를 삼아야 할 것이다.

2-2. 나는 성령의 강한 감동이나 보호의 역사 또는 알 수 없는 내적 탄식을 경험해 본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성령의 감동은 말씀을 전할 때, 보호의 역사는 선교지에서, 내적 탄식은 상처 입은 교회에 청빙되어 갔을 때와 학교 사태를 접했을 때이다.

3-1.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거나 성령의 부르심에 둔감할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경건의 삶을 살 것과 구원의 확신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3-2.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 전서 2장9절).”

4-1. 비록 구원의 확신이 흔들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경륜에 따라 그는 견인 될 것이며, 끝내 그는 구원에 이를 것이다.

4-2. 한 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삶의 소망이 끊어지고 모두 떠나고 삶의 목표를 잃어버려 죽음을 선택했을 때, 하나님께서 급하게 나를 건져 주셨고 천천히 나를 회복하시고 치료하셨다. 주님의 말씀과 은혜와 깊은 감동으로 나를 다시 세워 주셨다.

 

 

제 19장 하나님의 율법

1-1. 나는 예수께서 완성하신 율법을 잘 듣고 행하려고 합니다. 그 율법은 “내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라하라.”고 하신 대 강령에서 출발합니다.

1-2.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살자.

2-1. 나는 십계명의 열 가지 내용들을 다 요약해서 말할 수 있다. 십계명의 근본정신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법칙으로써 이는 도덕법으로, 십계명은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2-2. 십계명을 지키는 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법칙으로 작용을 한다.

3-1. 나는 주일 성수를 온전하게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의식법의 근본정신으로 비추어 볼 때, 나에게 주일은 주의 날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지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신령하게, 형식에 매이듯 하지 낳고 자연적으로 자발적으로 지킵니다. 예배와 경건한 생활로 하루를 보냅니다.

3-2. 오늘날의 한국 교회의 주일 성수는 너무 형식적으로 흐르고 있다. 면죄부를 찍듯이 예배 한번 드리고 주일 성수를 했다고 자위한다. 또한 주일의 주인은 삼위 하나님인데, 너무 행사나 봉사활동에 치우쳐 예배와 말씀이 소외당하고 있다. 사역으로 인하여 예배가 예배 되지 못하고 노동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4-1.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인간들이 세운 모든 제도에 주를 위하여 순복해야 한다. 모든 제도 또한 하나님의 주권 안에 허락되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 제도가 하나님의 의도와 영광을 가린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따를 것이다.

4-2. 만일 신자가 위정자들에게 순종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 수호에 대한 일일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를 회손 하는 일일 것이다. 순교의 각오로 수호해야 할 것이다.

5-1.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에 잠들다.”

5-2. 여기서 말하는 율법이란 도덕법일 것이다. 믿음은 사랑이다. 도덕법의 주제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그러므로 믿은 자는 율법을 완성해 가야 할 것이다.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두루 퍼지도록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고, 나의 소명이다.

6-1. 율법이 아직도 우리 신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이유는 첫째, 신자들의 삶에 크게 유용하고 둘째, 생활 규칙이 되며 셋째, 본성의 죄악을 드러내어 지를 깨닫고 겸손해 지매 하며 죄를 미워하게 한다. 넷째, 그리스도와 또 그의 순종의 완전함을 가져야 할 필요를 밝히 보게 한다. 다섯째, 거듭난 자들에게 그들의 부패들을 억제하기 위해 유익하다. 여섯째, 죄를 금하게 하고, 죄들 때문에 오는 환란을 보여준다.

6-2. 율법은 나에게 유익한 것이며 율법을 잘 지켜야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7-1. 율법의 용도들은 복음의 은혜에 순응하고 유용합니다.

7-2. 나는 비록 율법을 온전히 행할 수는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을 의지하여 그 율법을 준수하고, 지켜 갈 것입니다. 율법을 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나아가 율법이 보여주는 죄에 대한 단호한 결단과 대처를 할 것입니다.

 

제 20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1-1. 성도의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위해 값 주고 사신 자유이다. 이 자유는 죄책과 하나님의 진노와 도덕법의 저주로부터 그들이 자유하게 된다. 또한 이 악한 세상과 사탄의 종 됨과 죄의 지배와 환난들의 악과 사망의 쏘는 것과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그들이 구원받게 된다.

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완전한 자유이다.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었고, 그분과의 모든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그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다. 죄에 억눌림에서 회방 되었고, 캄캄한 인생에 빛이 들어와 나의 삶의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내 자신을 드렸다.

2-1. 하나님 말씀에 배치되는 거짓 자유를 멀리하고, 참된 양심의 자유 곧,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자유를 누리며 살 것이다.

2-2. 참된 양심의 자유를 잘 지키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 양심이, 또한 성령님이, 말씀이 그것을 지적하고 돌이키게 합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으나 이것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알고 늘 감사하며 순종하려고 합니다.

3-1.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자유로운 접근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기꺼이 하고자 하는 순종이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서 허락하신 값진 삶을 값지게 살아가게 하시려 함이다.

3-2.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주 앞에서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두려움 없이 주를 섬기려는 목적을 넘어서, 주님 앞에서 자유를 누리며, 찬양과 감사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주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누리며, 주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하게 한다.

4-1. 성도의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제한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도덕의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자유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 또한 성도의 자유는 성령의 법 즉,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무제한적이다.

4-2.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핑계로 국가나 정부기관 등 합법적인 권세에 반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규례에 반항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자들이 교회에 생긴다면 교회는 그들에게 권면과 경고를 해야 하며 그래도 따르지 않으면 교회의 합법적인 권징을 해야 할 것이다.

4-3.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나를 주관하시기 전까지는 나는 언제나 이 죄와의 싸움에서 패배자였다. 언제나 처참했으며, 피투성이였고, 연민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내 안에 성령님께서 나를 조금씩 자리하시면서 승률이 높아졌다. 마침내, 결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선한 일을 지속하는 일이 남았지만,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할 수 없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제 21장 종교적 예배와 안식일

1-1. 하나님은 인간의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함으로써 하나님의 뜻하신 목적을 이룰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행복하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서로 만나는 경이로운 행동인 것이다. 하나님은 예배를 제정하심으로서 우리와의 교제를 풍성케 하셨다.

1-2.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일뿐 아니라 유일하신 분이시다. 예배는 우리 인간의 목적이자 존재의 이유여야 한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예배로 드려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심으로, 온 힘을 다해서 살아야 하고, 예배해야 한다.

2-1. 나는 예배할 때 오직 그리스도의 중보만을 의지하여 예배한다.

2-2. 로마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와 천사들과 성인들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으로 숭배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 숭배 교리는 결코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마리아 숭배는 인간들의 전설과 그리스 철학 사상, 이방 종교 및 위경들의 가르침이 그 뿌리이다. 마리아 숭배는 사탄의 간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믿고 예배해야 한다.

3-1. 나의 삶 중에 감사가 넘친다.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살다가 감사로 하루를 마친다.

3-2. 대표기도: 찬양합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에 성령님께서 충만히 역사하소서.

개인기도: 아빠 아버지.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오늘도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열정으로 채워주소서. 나의 입술과 생각과 행동으로 범죄 하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합니다.

4-1.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교회를 위해, 목사님과 부교역자들을 위해, 교회 선생님들을 위해, 영적 입양아들을 위해, 선교사님들을 위해, 선교지를 위해, 기숙사 같은 방 동역자들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오늘 만날 불신자를 위해, 나라의 정치가들과 경제인들을 위해,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해, 섬기는 아이들을 위해.

4-2. 죽은 자들과 사망의 이르는 죄를 범한 자들을 위해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망의 이르는 죄를 범한 자들이란 누구일까? 로마 카톨릭이나 무속 신앙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헌물이나 헌금을 바치는 것들에 대하여 나는 그 잘못을 분명히 지적할 수 있다.

5-1. 내가 사역하는 교회에서는 음향실을 담당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 담당한다. 그러다보니 예배에 집중하기가 무척 힘들다. 나름대로 최대한 집중하고 바른 자세와 전심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씀 선포 때에는 모든 것을 중지하고 음향실에서 나와 이해와 믿음과 존경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양심적으로 듣는다.

5-2. 나는 찬송할 때에 온 마음으로, 전심으로, 열정적으로 노래한다.

6-1.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 자체가 영적인 삶이 되어야 하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한 성경의 삶이 되어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6-2. 원칙적으로는 없다. 하지만 나의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편차가 생기는 것 같다. 기도가 가장 잘 되는 때는 운동장을 돌며 mp3로 찬양을 들으며 주님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이다. 예배에 대한 집중도는 내가 담당한 중고등부 예배 때인 것 같다. 장소로 따지면 편차가 없는 것 같다.

7-1. 안식일의 참된 정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안식일의 참 의미는 엿새 동안에 힘써 오던 온갖 세상일을 일단 그치고 쉬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이 날은 오직 경건을 도모하는 일과 부득이 한 일, 자비를 베푸는 일 등을 위해서만 활용되어야 한다.

7-2.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안식일에 다른 약속을 잡지 않는다. 특히 예배에 방해되는 일들을 일체 정하지 않는다. 또한 가급적이면 주님과 함께 나도 안식을 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직업들과 오락들에 대한 자신의 일들과 말들과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안식인은 거룩히 보내야 할 것이다.

8-1.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마음을 정당하게 준비해야 하고 일상적인 일들로부터 정리해야 한다. 다음에 세상 직업들과 오락들에 대한 일들과 말들과 생각들로부터 떠나야 한다. 그래서 거룩한 휴식을 온종일 지켜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적 행사들과 사적 행사들의 모든 시간동안 주께 온전히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부득이한 의무들과 자선의 의무들에 바쳐지는 때에도 거룩하게 지켜져야 한다.

8-2. 토요일 오후는 사역함으로 교회서 주일을 준비하고, 정한 곳에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저녁때에는 식사 후 학교 운동장을 돌며, 찬양을 듣고, 내일 전할 말씀을 묵상한다. 그 후 편안한 휴식으로 주일을 준비한다.

 

제 22장 합법적인 맹세들과 서원들

1-1. 농담 삼아 ‘하나님의 뜻이야’라고 말한다거나. 가볍게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라고 말하는 경우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써 먹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이 아니라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자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항상 하나님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과 그분의 거룩하심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1-2.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라고 직접 밝히셨기 때문에 함부로 쓰지만 않으면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라는 단어는 원래 낮춤말이 아니라 높임말이다. 그 의미를 바로 알고 쓴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2-1. “하나님 맙소사”,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이들하고 놀 때”, “어이쿠, 하나님!:넘어졌을 때”

2-2.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 하는 것에 대한 효율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 것이 어떨까?

3-1. 맹세가 엄숙하고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맹세할 수 없다. 맹세는 하나님께서 보증하시고 판단하시기 때문이다.

3-2. 자기가 이행할 수 없으며 이행하기로 작정하지 않는 맹세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러한 맹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행할 수도 없고, 이행할 의지가 없는 것을 맹세한다는 것을 하나님과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동인 것이다. 또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4-1. 잘 몰랐을 때에 함부로 잘못 맹세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언제인지는 또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4-2.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증하시고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국가 간의 맹세, 개인 간의 맹세,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맹세에 있어서 신의와 성실성이 지켜져야 한다.

5-1. 서원이나 맹세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에 의한 자발적인 신앙 고백적 헌신이다. 서원이나 맹세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들을 하나님이 보증하고 판단하시기 때문에 신의와 성실히 지켜 나감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신앙의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서원이나 맹세가 잘 지켜질 때 많은 유익을 창출하게 된다.

5-2. 서원이나 맹세는 나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또한 상대방이 있다. 그 상대방이 사람이거나, 어떠한 행도이거나, 하나님이거나 간에 반드시 신의와 성실히 지켜질 때 많은 유익을 얻게 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엄중한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 고 2때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로 서원하였고, 15년간 평신도 사역자로 헌신하다가 40살이 되어서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어 설교자로서, 목양자로서, 선교자로서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다.

6-1.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것이 어떤 군중 심리에 의해서가 강제로 되어 진 것이 아닌 자발적인 헌신으로 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나 또한 건축 헌금을 서원하여 이행한 적이 있다. 몸 된 교회를 위해 서원을 하고 헌진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배당을 짓는 것 또한 교회를 위한 길인 것이다.

6-2. 서원이란 어떤 행위에 대한 서원과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하나님께 받은 긍휼과 구원의 감격하여 나의 삶을 주님께 서원으로 헌신하였다. 그리고 굴곡도 있었지만 지금껏 그 서원대로 살아가고 있다.

7-1. 서원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하나님이 말씀에 금해진 것을 서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서원이 아니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여서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7-2.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독처하도록 두지 않으셨다. 남녀가 서로 동거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카톨릭의 신부들이나 수녀들은 이 창조 질서에 역행하는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독처하는 것이 허락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것을 서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 23장 국가의 위정자

1-1. 나는 국가 기관이 하나님의 대행기관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온 세계의 왕으로서 국가의 위정자들을 자신의 영광과 공공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밑에, 백성들의 위에 임명하셨기 때문이다.

1-2. 하나님께서는 국가 위정자들에게 권력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선한 자를 보호하고 격려하며 또 행악자들을 벌하시도록 하셨다. 그 이유는 세상의 질서를 확립하며,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공공의 유익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위정자들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순복하는 것이 마땅하다.

2-1. 그리스도의 위정자들은 그 직분을 수행하는데 각 국가의 건전한 법률들에 따라 해야 하되, 특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경건과 공의와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인 위정자들에게 바라는 바는 제발 정직하고 욕심 좀 부리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국가를 섬기라는 것이다.

2-2. 기독교 정당과 기독교 사회 운동은 그 목적과 방법이 성경적이라면 기꺼이 용이하다고 생각된다.

3-1. 비록 그들에게 불공평하게 보일 지라도, 모든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나옴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의하여 각 위정자들은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건 비 그리스도인이건 상관없이 적용된다.

3-2. 공직자들은 종교에 대하여 보호는 하되 관여는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회 공공질서를 위해서 세워진 것이지 종교를 판단하고 치리하라고 세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위정자들이 종교를 자신의 정치 목적에 자주 이용해 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4-1.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나에겐 너무나 부족한 부분이다. 하루에 단 10분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있다. 잘못된 일이다. 위정자들이 주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정의롭고 균형 있게 다스리도록 기로로 도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위정자들을 위해서 더욱 많은 기도를 해야 되겠다.

4-2. 오늘날 이 부분은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표면적으로 잘 시행되고 있다고 보아진다. 다만 위정자들이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인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많은 기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의 정신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그대로 살아날 수 있기 위하여 바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위정자가 되어 하나님의 참 뜻대로 정치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제 24장 결혼과 이혼

1-1.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결혼의 법칙에 위배된다. 하나님께서는 둘이 한 몸이 되는 법칙을 세우셨다. 이것들은 여럿이 한 사람을 차지하기 위하여 시기하고 질투하며 모략하는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게 되고, 사랑으로 세워져야 할 가정을 미움과 저주에 빠지게 만든다.

1-2. 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의 경우 한 여자를 섬기기에도 너무나도 벅차기 때문이다. 서로가 1:1의 관계에 있을 때만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서로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어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1. 나의 가정(아내와 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 몸과, 온 마음과, 온 삶을 헌신하였다. 우리는 서울신학교 1학년 때 만나서 함께 공부하며 결혼하고 한 곳 즉,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사역을 위해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우리 가정을 통하여 많은 영혼이 주님을 만나기를 기도한다.

2-2. 돕는 배필이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의지하며 그리스도의 가정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남편은 가정의 대표로서 가정을 보호하고 중심을 잡으며 가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성실히 일해야 할 것이며, 아내는 지혜와 현숙함으로 가정을 잘 보존하고 가정 속에 평온함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3-1. 우리 어머니가 그렇다. 불신 집안에 시집와서 온갖 신앙의 핍박을 받고, 고통을 당하였다. 중 1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까지 우리 어머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지키신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모른다. 아버지가 죽기 1년 전에 아버지는 믿고 세례를 받으셨다.

3-2. 의미 있는 결혼이 될 수 있지만, 그 멍에는 이루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무겁고 고통스럽다. 같은 그리스도인과 결혼하여 온 가정이 복음 사역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

4-1. 내 주변에는 없다.

4-2. 근친상간이 죄이고, 하나님이 협호하시는 것임을 알려주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돌이키도록 간청하고 인도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근친상간 당사자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이웃들에게 심각한 죄와 피해의식을 오염시킨다.

5-1. 이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여 용납될 수 없다고 권면하겠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은 방대방의 어떤 허물(심지어 음행과 간음까지도)도 용서하고 고치게 하며 품어야 한다. 간통이나 간음의 경우 순결한 쪽에서 이혼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호세아처럼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5-2. 이혼한 사람에게는 먼저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권면하겠다. 이혼은 당사자들에게도 아픔이지만 그들을 짝지어 주신 하나님께도 더 없는 아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후 순견한 삶을 살 것을 권면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해서 다시는 이혼하지 말고 잘 살 것을 권면하겠다.

6-1. 이혼은 하나님의 질서 법칙을 깨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혼하려는 당사자들이 그들 자신의 의지들과 자유재량에 그냥 방임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의지와 재량들은 순간적일 수가 있고, 오해일 수도 있고, 잘못된 결정일 수도 있다. 나는 이혼하려는 당사자들에게 이혼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말해주고 싶다.

 

제 25장 교회

1-1. 나는 내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지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또한 그 지체로서 마땅히 할 기능을 하며 건강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성결과 정직과 영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선포하며,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우는 것이다.

1-2. 나는 신자들 전체가 비가시적인 전반교회로 인하여 궁극적으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과거, 현재, 미래에 하나로 모이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내가 섬기는 교회의 구성원들에게도 이 의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알아보아야겠다.

2-1. 나는 가시적인 교회를 떠나려고 한 적이 있다. 그 때에는 목회자들과 교회 신자들의 잘못된 행태와 비 성경적인 면을 보고 회의를 느껴서 혼자 신앙생활을 하겠다며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회 안에서 참으로 많은 악행들이 행해지는 것을 목도했다.

2-2.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진행하신다. 교회를 통하여 일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시며, 교회를 통하여 이루신다.

3-1. 나는 교회의 제도나 또는 그 지도자에게 기쁘게 순종하며 기쁘게 협조한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할 계획이다.

3-2. 만일 내가 교회에서 지도자가 된다면, 동역자를 세울 때에는 먼저 그의 신앙관과 성경관이 바른지를 볼 것이다. 그리고 성실하게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한 자를 세울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임을 알고 거룩하고 성결 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자를 세울 것이다.

4-1. 섬기는 교회를 출석한지 체 3달이 되지 않아서 나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씀은 건전하고 참되게 전파되는 것 같다. 성례는 돌아오는 종료주일에 한다. 권징은 아직 보지 못했다.

4-2. 나는 교회의 예배를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고 있다. 또한 내가 어떠한 이유로 교회의 권징을 받게 되었을 때, 교회의 권징에 주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억울하다면 하나님께서 풀어주실 것이다.

5-1. 교회에 있는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가만 놓아두다가 추수 때 가서야 비로소 불사르시는 이유는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해서이다.

5-2. 나는 교회 생활을 하다가 죄의 유혹을 받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유혹에 넘어진 적도 있다. 승리하지 못하고 죄 가운데 빠진 적이 있다. 또 그 당시에는 죄인지 몰랐을 때도 있다. 또 알면서도 무뎌서 죄를 지은 적도 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 다행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죄들을 자복하고 회개하며 용서함을 받았다.

6-1. 로마 카톨릭의 오류들은 신격화, 우상화, 성경의 비하, 면죄부, 성자숭배, 성좌 숭배, 성화 숭배, 마리아 숭배 등 이루 말할 수가 없다.

6-2. 나는 교회에서 교육전도사 겸 찬양사역자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 나는 로마 교황과 같은 교만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와 같이 안하무인인 사람이 있다면, 일단 그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고,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보여줄 것이다. 나의 삶으로 보여 줄 것이다.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기대할 것이다.

 

제 26장 성도들의 친교

1-1. 일단 인사를 잘 하려고 한다. 또한 맡은 부서의 선생님과 청년들에게 최대한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견디어 줘서 고맙다. 힘내라. 사랑한다.”는 예수님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이러나라 함께 가자고 손을 잡아주고 싶다.

1-2. 주일에 할 수 있는 것: 성경공부 모임, 중보기도 모임, 웃음이 함께하는 티타임, 엄지 모임 등

주중에 할 수 있는 것: 자투리 모임, 축복 문자 릴레이, 좋은 수다 모임, 조찬회, 등·하교 엄마 모임 등

휴일에 할 수 있는 것: 테마 캠핑, 길 따라 말씀 따라, 숲 속의 만찬, 공원에서 찾는 공동체 등.

2-1. 주님과 함께하는 공동체 훈련, 한 지체 친교, 엄지 모임 등은 교회 밖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비전을 나누는 교제와 위로하고 세워주는 교제가 더욱 필요한 것 같다.

2-2. 세상의 빛, 세상의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이 부분이 나에게 턱 없이 부족한 부분이다. 세상과의 접촉이 거의 없다. 접촉이 있어야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가 형성되어야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제는 교회 사역, 학교 공부로 인해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3-1. 자기의 모든 재산을 다 교회에 바치는 삶이 때와 상황에 따라서 유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과 방법이 불건전하다면 유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현재에도 이러한 일은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그러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3-2. 전혀 알지 못한다. 교육전도사들에게는 그런 것들을 알 권리가 차단되어 있다. 심지어 규정된 헌금들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고 있다.

 

제 27장 성례들

1-1. 나는 성례를 받을 때마다 겸손하고 순복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희생과 섬김을 생각하며 받았으며, 지금은 더욱 나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받고 있다. 만약 나의 주변에 성례를 무성의하게 받는 사람이 있다면 성의 있게 받으라고 권면해 주겠다.

1-2. 나는 성례를 받을 때에 그것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가 이슬처럼 임한다는 사실을 믿고 또 경험한다. 성례를 받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 속에 촉촉이 젖여듬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성례를 받을 때에 이것이 교회에 속한 자들과 세상 사람들 사이에 있는 분명한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성례를 받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성례에 임하지 않는다.

2-1. 나는 어떤 성례에 임할 때마다 그 성례를 통하여 임하게 될 주님의 은혜를 갈급한 심정으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간절히 사모한다.

2-2. 성례와 그 성례로써 표시되는 내적, 영적 은혜 사이에 성례전적인 연합이 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성례를 받을 때에 더욱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고, 그것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게 경험하게 된다. 성찬 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살을 내어주심을 묵상하며, 세례식 시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묵상한다.

3-1. 이단은 성령의 참된 사역과 성경의 무오성과 충족성을 교묘하게 부인한다. 고로 이단으로 판명된 어떤 사역자로부터 성례는 진실성이 떨어지고 하나의 형식에 지나지 않음으로 무효하다고 본다. 성령의 역사하심도, 성례 제정과 관련된 말씀에도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본서의 의견과는 조금 다른 나의 소견이다.

3-2. 내 주변에 이단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직접 권면하기 보다는 담임 목사님께 상담을 연결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나는 그것을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4-1. 성찬과 세례가 없다고 하더라도 구원에 대한 하등의 문제가 없기 때문에 구지 그것을 문제 삼을 수 없다. 성찬과 세례를 할 여권과 상황이라면 구지 그것을 고집하여 스스로 올무를 멜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공동체의 공동 식사 때 마다. 주님의 희생과 부활을 기념하고, 세례는 마음에 하면 될 것이다. 현상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4-2. 위에서 말했듯이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꼭 받아야 한다는 그 집착이 어떤 면에서는 나의 이기적인 욕망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엔 하나님은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마음으로 기념하고, 마음으로 받으면 될 것이다.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을 늘 생각하고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살면 되는 것이다.

5-1. 실체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 단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의 모형이다.

5-2. 실체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 단 구약의 유월절은 신약의 성만찬의 모형이다.

 

 

제 28장 세례

1-1. 내가 중 2때 세례를 받았는데, 그 때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 받은 세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세례라는 해위 자체가 구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는 않는다. 나는 세례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생명 안에서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인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생명 안에서 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1-2. 솔직히 세례 받기 전과 받은 후에 삶의 변화는 없었다. 마음의 세례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한 후에 모든 거시 변했다. 어쩌면, 현대의 교회에서 세례를 형식적으로, 단지 교회 나온 기간을 기준으로 얼렁뚱땅 문답을 억지로 통과시켜 주기 때문에 일어나는 병폐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세례는 진정한 의미의 세례라고 할 수 없다. 믿음의 고백이 없는 자에게 주는 세례였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세례 받지 못한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그의 믿음을 먼저 살필 것이다.

2-1.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줄 것을 제정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성부의 은혜로 성자의 공로로 성부의 인도로 믿음을 고백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기에 마땅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2-2.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는 표징이기 때문이다.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

3-1. 세례와 침례의 공통점은 물을 사용하다는 것이고, 세례는 물을 붓거나 뿌리는 것이고, 침례를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이것이 차이점이다. 그러나 모두가 세례에 허용되는 방법으로 논쟁할 필요가 없다.

3-2. 내가 세례를 받았느냐 또는 침례를 받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나의 안에 있느냐이다.

4-1. 나는 세례의 절대적인 필요성 즉 구원을 받으려면 반듯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기 때문에 유아에게 세례를 구지 주는 것을 장려하고 싶지 않다. 내가 보기에 유아 때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보다 성인이 된 후 세례를 받는 사람이 그 세례를 받으며 더 은혜를 받고 그 의미를 더 잘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4-2. 나는 자녀들에게 유아 세례를 받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위의 내용과 동일하다. 부모들에게는 은혜가 있을지언정 당사자인 유아에게는 그 은혜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내 자녀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마음을 의심 없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었을 때 받게 하고 싶다.

5-1. 만일 예수를 믿었지만 세례 받을 기회가 없어서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다면, 나는 이 사람이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의 조건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이고 성령에 조명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5-2. 세례에 은혜와 구원이 분리될 수 없이 꼭 붙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명제의 성경적인 근거는 대표적으로 누가복음 23장 40절에서 43절에 나오는 십자가상의 강도와의 대화이다. 한 강도는 세례 없이 즉시로 구원을 받았다.

6-1. 우리는 세례를 대할 때에 우리의 죄인 됨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의 고속을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과 또한 그와 함께 삶을 생각해야 한다. 세례의 본래 성질과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제정하신 목적 등을 심각히 또한 감사히 고찰해야 할 것이다.

6-2. 나는 현재의 삶 중에서 넘어질 때마다 세례 받은 사실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힘을 얻고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또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감격하는 삶을 살고 있다.

7-1. 나는 비록 내가 그 은혜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받은 세례였지만 삼위 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목사님을 통하여 받았다고 생각한다.

7-2. 먼저 그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화신이 있는 것을 확인한고 세례를 받을 것을 권하겠다.

세례란 그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셨고, 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았다는 표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제 29장 주의 만찬

1-1. 나는 성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모든 은택들이 참 신자들에게 인 쳐진다는 점에서 성찬이 ‘은혜의 방편’ 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 이 사실이 더 잘 믿어지기 위해서보다는 이 사실을 늘 기억하기 위해 주의 성찬에 참예하는 것이다.

1-2. 나는 성찬을 통하여 참 신자들이 영적으로 양육되고 주 안에서 성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성찬이 ‘은혜의 방편’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므로 성찬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는 겸손함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며 임하여야 할 것이다.

2-1.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를, 자신들의 죄와 부족을, 자신들의 지식, 믿음, 회개, 하나님과 형제들에게 대한 사랑, 모든 사람에게 대한 자선, 그들에게 해를 준 사람들에게 용서를, 그들의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욕망을, 그들의 새로운 순종을 검토함으로써, 이 은혜들의 운용을 새롭게 함으로써, 심각하게 묵상하고 열렬히 기도함으로써 성찬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2-2. 나는 성찬으로 산 자나 죽은 자의 죄 사함을 위한 어떤 실제적인 희생제사가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성찬이 오직 ‘은혜의 방편’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성찬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오직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스스로 십자가에서 단번에 바치신 일의 한 기념일뿐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3-1. 사역을 시작한지 2달이 되었기 때문에 성찬에 참여한 적이 없다. 돌아오는 부활주일에 성찬 예식이 있는데 그 때 확인을 해야 할 것이다.

3-2. 성찬 날이 선포되면 그 선포된 날부터 그 은혜를 사모하며 준비해야 할 것이다.

4-1. 나는 성찬 시에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제정하실 당시의 원래의 의도와 정신을 생각하면서 성찬에 임한다.

4-2. 혼자서 성찬을 받는 것은 그 본질과 그리스도의 제정 정신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성찬이란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기념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서로 기념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5-1. 자기를 살핀다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를, 자신들의 죄와 부족을, 자신들의 지식, 믿음, 회개, 하나님과 형제들에게 대한 사랑, 모든 사람에게 대한 자선, 그들에게 해를 준 사람들에게 용서를, 그들의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욕망을, 그들의 새로운 순종을 검토하는 것이다.

5-2. 성찬의 성례를 받은 후에 나는 그 받은 은혜를 유지하기 위하여 또는 확산하기 위하여 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찬 외에도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6-1. 화체설은 성경과 직접적으로 반대되며, 상식과 이성에도 반하며 성례의 본질을 뒤집어 놓는다. 성찬은 구속의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고 기념하는 것이지, 그 어떠한 화학적 물질적 변화도 없기 때문이다.

6-2. 로마 카톨릭에서는 미사가 거행될 때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반복되었으며, 이것이 비록 십자가에서 지불하신 희생과는 다를지라도 참된 희생이라고 단언한다. 이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많은 이단들이 파생되었다.

7-1. 나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더욱 큰 은혜를 체험한다. 아마도 그 은혜는 날마다 새롭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신앙이 발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7-2. 성찬 때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모든 은택들은 영적으로 임한다. 그런데 이 영적 임함은 어떤 상상이나 체면이 아니라 실재적인 임함이다. 성찬에 참예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분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동참함을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임제인 것이다. 이 은혜는 가히 설명할 수가 없다.

8-1.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일이 혹시라도 있지 않기 위하여 나는 성찬 전에 먼저 나를 살펴보아 거리끼는 것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8-2. 내가 성찬에 참여하게 된 것은 다행히 무지하거나 불경건하지 않고, 또 개나 돼지처럼 거룩한 것을 받지 못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니 참으로 그 은혜에 감사하다. 나는 내가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다. 앞으로도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찬에 임할 것이다.

 

제 30장 교회의 권징들

1-1. 교회 안에서 권징에 대한 권한이 왜 교직자들의 손 안에 있어야 하냐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교직자는 하나님께 합당한 자가 세워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무질서해지고 파괴될 것이다.

1-2. 교회 안에서의 통치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왕고 머리되심으로 그분의 귀하신 뜻에 따라 행하여 져야 할 것이다. ‘권위’를 가지고 ‘은혜’로 통치권이 행사되어야 한다.

2-1. 뭔 이야기인지 도통 모르겠다. 문구도 너무 어렵고 설명도 들은 바가 없어서 대답을 보류한다. 교직자들에게 하늘 왕국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권세를 가졌으며 죄들을 각각 보류하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이야기다.

2-2. 우리가 남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할 근거는 첫째, 우리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다. 둘째, 주님도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 셋째, 우리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넷째, 서로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3-1. 교회 내에 권징이 필요한 이유는 첫째, 범죄자의 교정 둘째, 범죄의 예방 셋째, 오염 제거 넷째, 신앙고백의 옹호 다섯째, 하나님의 진노 예방이다. 만일 하나님의 언약과 그 인호들이 범죄자들에 의해 더렵혀지는 것을 그대로 묵인하면 교회 위에 내려질 수 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3-2. 잘 모르겠다.

4-1. 그 영혼을 사랑함으로 그 죄를 범한 사람이 돌이켜 회개하고 본래 신앙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그를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되, 마치 내가 회개해야 할 당사자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나서 치리해야 할 것이다.

4-2. 죄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 31장 대회들과 공의회들

1-1. 각종 교회회의들이 필요한 이유는 교회의 보다 좋은 통치와 보다 나은 건덕들을 위하여서이다. 나는 현재 교역자회의 이외에 참여할 수 있는 회의가 없다.

1-2. 각종 종교회의와 관련된 직분과 권세를 개교회들의 감시자들과 다른 통치자들에게 주신 이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회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그 결정에 따를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런 직분과 권세를 위임받은 개교회들의 감시자들과 다른 통치자들은 성실하고 신실한 자세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2-1. 나는 한국 교회에서 이제까지 있어 온 중요한 회의들이 결정 사항들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고,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2-2. 나는 종교회의들에서 정해진 법령들과 결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다면, 하나님의 규례로서 존경심과 복종심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3-1. 그 어떤 종교회의의 결정이 절대적일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종교회의들이 오류를 범할 수 있고, 또 실제로 오류들을 범하여 왔기 때문이다.

3-2. 그 이유는 위의 대답과 동일하고 내 의견은 인간은 모두 다 불완전한 존재들이고 완전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 때문에 어떠한 종교회의의 결정도 성경이나, 신앙의 규칙이나, 관습의 규칙을 앞설 수 없고 다만 참고하고 도움만 될 뿐이다.

4-1. 강력하게 항의해야 한다. 종교적인 차원의 문제를 떠나 인간의 기본권의 침해이다. 주일은 공식적이고 국가적인 공휴일이기 때문이다. 쉴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헌법에도 위배된다. 교회 차원에서 할 것이 아리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4-2. 교회나 기독교인이 국가 정책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표명해야 할 때, 성경에 비추어 대답하면 될 것이다. 성경에 비추어 옳은 것은 옳다. 틀린 것은 틀리다 하면 될 것이다.

 

제 32장 사람들의 사후 상태와 죽은 자들의 부활

1-1. 내의 영혼은 내가 죽을 때에 온전히 거룩해져서 지극히 높은 하늘로 영접될 것을 믿는다. 또한 이 사실이 나에게 큰 소망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 땅에서 역시 천국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소망을 가지고 천국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겠다.

1-2. 나는 사람들의 몸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은 죽지도 않고 자지도 않아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리거나 아니면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니 그 상황을 결정하는 것은 이 땅에서 살아 있을 때에 단 몇 십 년 동안의 나의 행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 결정된다.

2-1. 부활 후 우리 성도들은 영기 충만한 상태인 ‘신령한 몸’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 사실 실감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히 믿는다. 그 ‘신령한 몸’은 고통도, 괴로움도 없는 깨끗한 몸일 것이다.

2-2. 나는 내가 죽은 이후 세상 끝 날에 부활하게 되던가, 아니면 당신이 살아 있을 때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어떠한 의심 없이 믿는다. 이 사실을 믿는 까닭은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고, 내 마음속에 성령님께서 확신을 주신다.

3-1.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되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된다. 이 사실은 나로 하여금 소망과 은혜를 준다. 현제의 고난이 그 날의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2. 그 날에 우리의 낮은 몸이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소망이 된다.

4-1. 강력하게 항의해야 한다. 종교적인 차원의 문제를 떠나 인간의 기본권의 침해이다. 주일은 공식적이고 국가적인 공휴일이기 때문이다. 쉴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헌법에도 위배된다. 교회 차원에서 할 것이 아리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4-2. 교회나 기독교인이 국가 정책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표명해야 할 때, 성경에 비추어 대답하면 될 것이다. 성경에 비추어 옳은 것은 옳다. 틀린 것은 틀리다 하면 될 것이다.

 

제 33장 최종 심판

1-1. 최종 심판의 그 날은 인류 역사에 꼭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죄와 악과 음행과 모든 더러운 것이 그 보응을 받아 없어지고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이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 날이 꼭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2. 우리는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보응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나, 궁극적으로 나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 예수께서 해결하셨기 때문에 소망을 갖는다.

2-1. 우리가 영벌 교리를 전파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돌이키게 함이다. 또한 영혼을 향한 사랑에 근거한다. 영벌 교리를 들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경외함을 가져 주님께 돌아오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소망이 있겠는가!

2-2. 심판의 목적이 피택자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고, 피기자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앞에서 배웠던 제 3장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하여’ 에서의 선택과 유기의 목적과 동일하다.

3-1. 나는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 날이 오면 모든 만물이 원래 목적으로 회복될 것이고, 나 도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더 이상 선과 악, 죄와 구원 사이에서 고민하고, 아파하고, 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3-2. 그리스도께서 그 날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 날이 속히 오리라는 믿음으로 그 날을 준비하며 살아갈 것이다. 마치 지금 예수님과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예수님을 닮아가며, 모든 것에 자족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면 살아갈 것이다. 주님의 사역의 마지막 완성을 위하여 내가 쓰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