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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람 마중물 뇌과학이 말하는 청소년의 모습

예림의집 2013. 5. 14. 06:52

 

청사람 마중물 뇌과학이 말하는 청소년의 모습

청소년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난해한 작업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발달심리와 청소년문화, 그리고 개인의 면담과 심리검사를 통해서 우리가 만나는 청소년을 이해하는 단서들을 얻곤 하는데 요사이 각광을 받는 뇌과학이 조금은 다르면서도 속시원한 답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우리는 청소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선영이 엄마는 장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여학생 세 명과 마주쳤습니다. 딸 선영이와 친구들이었습니다. 셋 다 교복 치마가 짧아 허벅지가 훤히 보였고, 수진이는 염색한 머리에 화장까지 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혜선이는 손톱에 매니큐어까지 바른 것 같았습니다.

“학원 가니? 잘들 갔다 와.” 아이들의 모습에 너무나 놀랐지만 선영이 엄마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던 선영이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일그러졌습니다. “알았어.” 선영이가 퉁명스럽게 대 답하고는 친구의 팔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선영이의 모습을 아빠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엄마는 선영이가 걱정되어 결국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선영이 이리 와서 앉아!” 선영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빠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아빠 옆에는 회초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오늘 너 뭘 잘못했어? 너 아빠하고 한 약속을 네 가지나 어겼어 알아? 빨리 말해 봐!” 검사 출신 아니랄까봐 아빠는 심문부터 시작합니다.

“……” 입을 열 선영이가 아니었습니다. 착하던 선영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점점 말이 없어지다가 최근에는 늘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계속 화를 내며 채근하자 몇 마디 대답을 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선영이 아빠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따 대고 신경질이야! 누굴 닮아서 성깔을 부려? 당신, 애를 어떻게 키웠기에 이 지경이야? 선영이 너, 똑똑히 들어, 네가 잘못한 게 뭔지 말해줄 테니까! 첫째, 내 말을 어기고 혜선이와 어울린 것. 그딴 애랑 어울리지 말라고 열두 번도 더 말했잖아 둘째, 치마 짧게 입은 것. 셋째, 화장한 것. 지가 연예인도 아니고! 넷째……”

“화장 안 했어요. 치마도 요즘은 다들 그 정도로 입어요.” 이렇게 대꾸하고 고개를 돌리는 선영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눈에는 슬픔이 아니라 독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아빠도 그 눈빛을 보았는지 멈칫했습니다. 엄마가 얼른 나서서 중재 역할을 하며 선영이의 등을 떠밀어 데리고 나갔고, 아빠는 못이기는 척 엄마가 하는 대로 놔두었습니다.

아빠는 분을 삭이지 못해서 베란다에서 담배를 꺼내 피웠습니다. 아빠는 자기 전에 선영이를 다시 앉혀놓고 말하지 못한 네 번째 이유를 설명할 것이 뻔했습니다. 선영이가 잘못했다는 것을 시인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영이는 일주일이 지나자 똑같은 짓을 되풀이했습니다. 오히려 갈수록 반항심은 더 심해졌습니다.

선영이의 사례가 남의 일 같지 않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많으실 겁니다. 청소년인 자녀나 학생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경험, 많은 분들이 해보셨을 겁니다.

훗날 선영이의 엄마는 자신과 남편의 훈육 방식이 선영이의 행동을 개선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왜 감정 조절을 잘 못하고 쉽게 짜증을 내며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지, 왜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하고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 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사춘기 아이들이 스트레스에 취약한지, 왜 쉽게 게임이나 담배, 인터넷 등 중독성 강한 것에 끌리는지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비밀은 청소년의 뇌구조에 있었습니다. 청소년의 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걸까요? 최근 들어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그 질문이 풀려가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뇌는 리모델링 중

청소년의 뇌 특성을 알아보기 전에 우선 인간의 뇌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의 뇌는 크게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일 아래층이 뇌간 입니다. 뇌간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집에 비유하면 지하층으로 볼 수 있지요. 지하층에 여러 가지 배선이나 보일러실이 있듯, 심장이 뛰거나 호흡을 하거나 체온을 조절하는 일 등은 뇌간에서 관

장합니다. 뇌간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거의 완성됩니다. 그래서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젖도 빨고, 소화도 하고, 배설도 하고, 잠도 자고, 체온 조절 도할수있지요. 뇌간의 구조와 기능은 파충류와 같다고 해서 '파충류의 뇌’라고도 부릅니다.

감정뿐 아니라 기억, 식욕 성욕도 주관하지요. 집에 비유하면 1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변연계의 구조와 기능은 포유류와 거의 같아서 ‘포유류의 뇌’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강아지나 고양이 등 포유류도 사람처럼 감정이 있습니다. 좋아하고, 싫어하고, 놀라고, 화내고, 무서워하는 등 감정이 있지요.

뇌의 맨 윗부분이 전두엽입니다. 말과 글을 배우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종합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리정돈하고, 감정이나 충동을 조절하는 등의 일을 하는 부위입니다 집에 비유하면 2층입니다 전두엽은 언제 완성될까요? 과거에 장 피아제(Jean Piaget, 1896~1980)라는 심리학자이자 인지학자는 전두엽이 사춘기에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뇌과학에서 그보다 훨씬 늦게 완성된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뇌간이 엄마 뱃속에서 완성되고, 변연계는 영유아기와 사춘기에 완성된 다면, 전두엽이 완성되는 시기는 평균 스물일곱 살 정도입니다 여자들은 스물 네 살, 남자들은 그보다 늦은 서른 살쯤에 전두엽이 완성됩니다.

뇌과학이 연구되기 전에, 특히 청소년기에 전두엽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연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많은 어른들이 오해를 했습니다. 체격이 크고 성숙해 보이는 청소년은 판단도 어른만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청소년들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사춘기의 의도적인 사악함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전두엽은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가완성이 되어 책을 읽고, 숙제를 하고,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부모의 말을 듣는 등의 일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다가 빠르면 5~6학년, 늦어도 중학교 1~2학년 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전두엽이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행동하거나 논리적으로 사고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른들을 골탕 먹이려 한다고 생각하거나, 고집을 피우거나 성질이 나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듣는 것 같을 때는 아이가 연기를 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뇌의 1층에 머물러 있는 청소년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얘기하는 어른들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생각이 들고, 2층에 있는 어른들은 ‘도대체 이 아이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래서 소통이 단절되고 관계가 끊기는 것입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생각한다

백순미 선생님은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딸 민주 걱정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엄마와 아빠의 기대 이상으로 공부와 생활을 반듯하게 해주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6학년 겨울방학 무렵부터 이유 없이 짜증이 늘었고, 새벽 1,2시까지 노래를 듣다 불을 켜둔 채로 잠들고 아침에는 못 일어나 힘들어하기 일쑤입니다. 부모님이 두 마디 이 상 말을 하면 “네?” 하며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방학 계획을 세우라고 했을 때는 한 시간 동안 공책을 만지작거리다가 낙서만 해놓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와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백순미 선생님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는 부모들의 얘기는 남의 일로 여겼고, 자신의 딸은 안 그럴 거라고 믿어왔는데, 자부심과 자신감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민주 부모님과 면담을 하고 민주와 30분간 상호작용 놀이 관찰을 하고 나서 제가 내린 진단은 간단했습니다. 민주의 모습은 전두엽이 리모델링 중인 사춘기의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생각, 판단, 계획, 충동 조절, 감정 조절 등을 관장하는 전두엽은 사춘기에 대대적인 리모델링과 확장공사를 겪습니다. 집에 비유하자면 20평 아파트를 100평으로 확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요.

확장공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4학년 때까지 가완성된 전두엽으로도 학교와 집을 오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성인이 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복잡다단한 일들을 다면적으로 처리하려면 20평짜리 집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소년기 내내 전두엽의 확장공사가 이루어져서, 여자는 스물네 살쯤, 남자는 서른 살쯤 돼야 완성됩니다,

사춘기에는 공사 중인 집처럼 머릿속이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상태가 정상입니다 이전까지 약속도 잘 지키고 말도 잘 알아듣던 아이가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사 중인 뇌는 이전보다 더 많은 수면이 필요합니다. 특히 청소년기의 수면 특징은 밤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확장공사를 하면서 뇌세포의 연결망이 과잉 생산되고, 뉴런과 시냅스의 연결이 굉장히 많이, 빠른 속도로 일어납니다. 연결망이 과잉 생산되면서 회질은 일 년에 두 배나 증가하고, 뉴런과 연결되는 시냅스가 너무 많아서 다면적인 사고를 잘 못합니다. 마치 전선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어질러져 있는 상태와도 같죠. 그러니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거나 올바른 판단을 내리 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딸은 미국의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습니다. 대학에 가면 기숙사에서 혼자 살아야 할 테니까 미리 딸에게 살림을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한 엄마는 세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방법을 알려주고 쇼핑을 다녀왔더니 딸이 세탁을 했다 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운동화 끈 두줄을 세탁기에 넣고 한 시간 동안 돌렸던 것입니다.

순간 엄마는 '얘가 지금 나를 시험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서 야단을 쳤습니다. 하지만 딸은 왜 엄마가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춘기에는 대개 한 번에 한 가지밖에 생각을 못합니다. 세탁법은 생각 하지만 효율적인 세탁법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엄마를 골탕 먹이려 는 게 아니고 뇌의 도로망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죠.

사춘기에는 뇌세포의 회질이 일 년 사이에 두 배나 증가하는데, 경험을 하는 뇌세포는 강화되어 남고, 경험하지 않는 뇌세포는 소멸됩니다. 예를 들어 봉사활동을 통해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보는 경험을 했다면 훗날에도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고 쉽게 돌봐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지체장애인에 대한 연민이나 배려 또는 관심이 별로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춘기에 말썽을 피우고, 하지 말라는 행동도하고, 동아리활동도 하고, 여행도 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다양한 상황에서 상황 판단 에도 능하고 대처능력도 뛰어납니다. 그때 공부만 한 학생들은 학습을 관장하는 연결망은 무척 강화되겠지만 그 밖의 부은 약할 수 있습니다 관계의 기술, 연애하는 법, 스트레스 관리, 취미생활, 봉사활동 등에서는 미완성 상태일 뿐 아니라 개념조차 형성이 안 되어 있기도 합니다.

청소년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자기 뇌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기도 합니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

사춘기에는 감정과 기억, 욕구 등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한층 예민해집니다. 덕분에 식욕과 성욕도 왕성해지죠. 또한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아동기나 성인기보다 훨씬 적게 생성됩니다. 세로토닌은 감정의 기복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해서 감정조절제라고도 부릅니다.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춘기에는 세로토닌이 아동기나 성인기보다 40퍼센트 적게 생성된다고 합니다.

그 결과 사춘기에는 감정의 기복이 무척 심해집니다. 10분 전에 여자 친구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던 남자아이는 잠시 후 누군가에게 무슨 핀잔이라도 들으면 단 10분 만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기분이 됩니다. 이렇게 심한 감정의 기복이 사춘기에는 정상입니다.

수면이 굉장히 불규칙해지고 "우울해” "짜증나” 같은 말을 많이 하는 것 역시 세로토닌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자아이들 이 더 심합니다. 사춘기 남자아이들 중에 화를 벌컥 내는 충동적인 아이 들이 많은데, 이는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정상이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충동적이고 절제하지 못한다

사춘기 뇌의 특성을 조금 과장해서 '피냐스 게이지의 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피냐스 게이지(Phineas Gage))는 19세기에 실존했던 인물로, 미국에서 한창 철도 공사가 진행 중이던 19세기 중반에 철도공으로 일하던 사람입니다. 무척 성실하고 리더십도 있고 친화력도 있고 책임감이 뛰어나서 스물다섯 살에 팀장을 맡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냐스 게이지는 공사현장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서 쇠파이프가 머리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합니다. 그런 큰 사고를 겪고도 다행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이 사람이 예전과 너무 달라졌던 것이었습니다.

예의 바르고 점잖고 책임감 있던 사람이 무례해지고, 욕설도 심하게 하고, 무척 충동적이 되었습니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무작정 붙잡고 뽀뽀를 하려고 할 정도로 충동을 제어하지 못했고, 성질이 아주 고약해졌습니다. 당시로서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대 뇌과학에서 전두엽의 역할을 이해하고 나서야 그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피냐스 게이지는 사고로 전두엽이 크게 손상을 입었던 것입니다 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피냐스 게이지의 뇌와 전두엽이 공사 중인 사춘기 아이들의 뇌를 유사한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도 개인차는 있겠지만 피냐스 게이지처럼 충동적이고, 성욕과 식욕이 왕성하며, 욕도 잘하고, 무례하고, ‘짐승 같은’ 행동도 서슴없이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춘기 동안 뇌의 확장공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거실도 있고 정원도 있는 멋있는 집이 완성되겠지만, 그 시기에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깊은 갈등을 빚는다거나, 부모님이 사이가 무척 안 좋거나 헤어진다거나 하여 가정환경이 좋지 않으면 건축자재에 깨진 유리조각, 지푸라기, 휴지 같 은 것들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춘기에 집이 제대로 지어지면, 어른이 된 후 어떤 상처를 입더라도 벽지를 다시 바르는 정도로 치유가 됩니다. 하지만 집단따돌림이나 폭력을 당하거나,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깊은 갈등을 빚는다면, 그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치유하기 어렵습니다.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서 치유해야 하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요.

따라서 사춘기 자녀나 학생들은 성인을 대하는 것과는 다른 마음과 태도로 대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뇌가 ‘공사 중’인 청소년을 대하는 법

충분한 수면이 필요함을 이해하라

영유아기 아이들은 뇌에서 뉴런들이 도로망을 연결하느라 많은 시간의 수면이 필요합니다. 신생아들은 18시간 정도 자기도 하죠. 마찬가지로 사춘기에는 뇌에서 연결망을 새롭게 하느라 무척 피곤합니다. 그래서 잠을 많이 자야합니다 뇌 속의 도로들이 경험했던 것이 잠을 자며 쉬는 동안 연결되고 기억되고 강화되는 등의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춘기에는 평균 9시간 15분 정도는 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학생들, 특히 고3 학생들은 잠이 부족합니다. 이 시기의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뇌의 성장을 방해할 뿐 아니라 스트레스로 직결되어 우울해지고, 기억력이 감퇴됩니다. 그러면 학습에도 집중할 수 없어집니다.

사춘기에는 또한 수면패턴이 변화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수면 패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기 위해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햇빛을 차단해서 시간을 알 수 없게 만든 공간에서 며칠간 사춘기 학생들을 생활하게 하면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등 본인의 생체리듬에 따라 생활 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사춘기 아이들이 새벽 2~3시가 되어야 자고 낮 12시쯤 깼습니다.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춘기가 지나면 수면패턴은 이전으로 돌아옵니다.

대화할 때는 감정적으로 접근하라

청소년과 대화할 때 이성, 논리, 합리의 차원에서 다가가면 아이들은 거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감정과 느낌의 차원에서 "지금 기분이 어때?” 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평소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큰 학생들은 이럴 때 “몰라요”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기분을 잘 모르겠다는 말이네” 하면 됩니다. 굳이 따져 묻지 않는 게 좋습니다.

관리자가 아닌 컨설턴트 역할을 하라

청소년들에게는 관리자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컨설턴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생각하고, 좀더 큰 그림을 보여주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컨설턴트 역할을 해주면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습니다.

미국에는 '헬리콥터 맘(helicopter mom)’이라는 유행어가 있습니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주변을 맴돌며 관리해 주려는 부모들을 가리키지요. 이런 '관리자’는 아이의 일정부터 식생활, 용돈까지 관리하려 함으로 써 자녀와 학생의 자율권과 선택권을 박탈할 수 있습니다 더 잘하도록 도와주려는 좋은 의도일지라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관리와 감시, 지배를 '당 하는’ 느낌이 들어 거부감과 반발심이 들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합니다.

반면에 컨설턴트는 책임을 대신 져주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대화하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숙고한 뒤에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때까지 제안하거나 기다려주되, 궁극적인 결정과 선택은 본인이 하도록 도와줍니다. 이 경우 선택에 대한 책임은 선택한 사람이 지므로, 결과가 좋지 않다면 아이가 책임을 지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실수에 관대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 있게 하라

어른들은 완성된 두뇌의 2층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볼 수 있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아직 1층에 있기 때문에 2층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른은 인내심이 많은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새롭게 집을 짓고 새로운 도로망이 깔리려면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하는 데, 실수를 두려워하면 경험하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아이들의 실수에 관대해야 합니다. 실수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격려하라

주택의 확장공사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건축자재가 필요합니다. 청소년기 두뇌의 건축자재는 바로 다양한 경험입니다.

50년 이상 사용할 집을 지으려면 건축자재도 가능한 한 내구성 있고 좋은 것을 써야 합니다.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거나, 동아리활동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양질의 경험을 해야 합니다. 저속하고 위험 한 자재로 두뇌의 집을 짓는다면 좋은 집을 지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집은 나중에 바꾸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질서를 지켜라, 규칙을 어기면 안 된다, 서로 양보 하자,배려하자…' 아무리 말해 봐야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직접 경험해 보게 해야 합니다. 직접 체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은 고스란히 자기 집이 됩니다.

집을 제대로 지으려면 건축자재와 아울러 제대로 된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신뢰감, 독립심,겸손함,현실감각,자기통제력,자아존중감,인성과 감성 개발 등이 모두 설계도에 들어가야 합니다.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리지 만,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감정을 통해 아이에게 접근하면 그런 설계도를 그려줄 수 있습니다.

두뇌의 리모델링 과정은 얼마든지 즐겁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놀아 여행, 도전, 경쟁, 협력 등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것까지 어른과 함께 하면서 서로 배우고 협력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HD 교실 학생들은 용돈을 모아서 사회봉사단체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남에게 받기만 하던 '정신적 빈곤자’들이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의 부자’로 탈바꿈하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경험은 얼마나 긍정적으로 하느냐 부정적으로 하느냐, 얼마나 통제적으로 하느냐 자발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방문 했을 때, HD 교실 학생들은 방문할 학교에 대해 직접 사전 조사를 하고 질문서를 만들었고, 기대했던 것과 실제 상황을 비교해 본 후 다음에는 어떻게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청소년기는 제대로 돌봐줄 ‘제2의 기회’

1. 사춘기의 특징적 행동, 예를 들어 굉장히 충동적이거나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은 주로 호르몬 때문이다.

一 아닙니다. 전두엽이 리모델링 중이기 때문이고.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아동기나 성인기에 비해 40퍼센트 정도 적게 분비되는 것도 원인입니다.

2. 청소년은 어른처럼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一 아닙니다. 운동화 끈 두 개를 세탁기에 넣고 한 시간 동안 세탁한 학생의 경우처럼, 대개 청소년들은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관심을 둡니다. 동시 다발적으로 노래를 들으며 컴퓨터도 하고 공부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번에 한 가지씩 잠깐씩 관심의 대상을 옮기는 것입니다.

3. 청소년은 아동이나 성인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가 훨씬 높다.

— 그렇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데, 그런 호기심이 음란물이나 폭력물 같은 것에 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식욕이 왕성한 아이에게 불량식품을 주지 말아야 하듯이,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책이나 영화를 권하고, 좋은 경험이나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4. 청소년의 부적절한 행동을 다룰 때는 경고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 효과적이다.

一 아닙니다. 어른들은 ‘내가 이런 의도를 갖고 점잖게 쳐다보면 자기가 스스로 깨닫겠지?’ 하고 기대하지만, 청소년들은 대부분 스스로 깨닫지 못 합니다. '남에게 해로운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처럼 분명하게 말로 한계를 지어주어야 합니다.

5. 청소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주로 자기주장과 고집을 반영하는 것이다.

一 아닙니다.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좀 더 포괄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는 도로망이 아직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청소년들은 도로망이 다면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경험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생각의 폭이 좁아서 그런 것입니다.

6. 사춘기에는 8시간 이상 잠을 잘 필요가 없다.

一 아닙니다. 사춘기의 뇌는 리모델링 작업 중이라 충분한 수면이 필수적 이며, 평균 9시간 15분 정도 자는 것이 좋습니다. ‘4당5락’이라고 해서 수험생이 매일 4시간 자면 대학에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속설은 전두엽의 미숙함을 조장하는 근거 없는 신화일 뿐입니다.

7. 뇌는 사춘기에 구조적으로 완성된다.

― 아닙니다. 남자는 평균 서른 살, 여자는 평균 스물네 살 정도 돼야 뇌가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사춘기는 뇌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이때 무엇을 자주 보고 먹고 생각하고 행하느냐에 따라 뇌회로의 구조와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모와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각자의 특성과 적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놀이를 이용하면 학생들의 적성이나 개성을 발견하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일을 시킬 때는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시켜야합니다. 중고생의 방은 머릿속을 반영하듯 어수선한 게 정상입니다.

두뇌의 집이 새로 지어지는 사춘기에 부모의 갈등이나 외도는 상당한 충격이 됩니다 폭력이나 집단따돌림 등도 굉장히 큰 충격이 되어 뇌에 변형을 일으키거나 큰 상처가 될 수 있으므로 그런 것으로부터 보호해 줘야 합니다. 또한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무척 강하므로, 건전하고 즐겁고 유익한 것으로 호기심을 채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대본이라 할 수 있을 설계도를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희망적 메시지도 있습니다. 부모가 미처 몰랐거나 너무 바빠서 영유아기 때 전두엽이 완성되는 걸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다면, 이때야말로 영유 아기와 아동기에 놓쳤던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제2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감정코칭을 통해 신뢰감과 유대감을 돈독히 하면서 아이가 바르고 행 복하게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 최성애 조벽교수의 청소년 감정코칭(해냄 출판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