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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사 중간고사 준비

예림의집 2013. 4. 10. 20:54

초대교회사 중간고사 준비

 

<고득점을 위한 Tip>

①교회사, 교리사, 수업 필기를 참고하여 6개를 선정하여 정리하였다(6번은 범위가 아닐지도~).

②채점은 교수님이 아닌 조교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답의 분량이 점수에 크게 영향을 준다.

③이 다섯 가지를 익히고 다른 문제가 나온다면 그냥 이걸 빼곡히 쓸 것이다.

④문장 전체를 외우지 말고 여러 번(100번 정도) 읽고 중요한 단어(적색>파란색>녹색)만 외운다.

⑤할 수만 있다면 녹음해서 늘 듣는 것도 좋다(B동 106호에 오면 제 목소리 드림).

⑥답안은 단답형이나 요약형으로 쓰지 말고, 서술형으로 쓰되 길지 않게 한 문장을 두 줄 이하로 쓴다.

⑦접속사(그리고, 그러나, 그러므로, 그런데 등)를 잘 활용하고, 쉼표를 적절히 활용한다.

⑧중요한 부분이나 강조점은 다른 색으로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한다.

⑨잘 모르겠다고, 백지로 내거나 짧게 답하지 말고 아는 것들을 나열해 보고 문장을 만들라.

⑩마지막으로 오타를 수정하고, 문장을 다듬으며 마지막까지 남아 최선을 다하라.

 

 

1. 초대교회의 배경을 요약하여 설명하라

예수 그리스도가 활동할 당시 유대는 복잡다단한 여러 가지 배경들이 뒤엉켜 있었다. 먼저 유대적 배경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구별된 자들이라는 뜻을 가진 바리새인들은 율법준수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불경건한 자들을 경멸하는 무리들이었다. 둘째, 로마의 통치를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 했던 사두개인들이 있었는데 주로 예루살렘 귀족들로 성전 제사장들을 배출하고 산헤드린 공의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셋째, 세롯이라 불리던 열심당원으로 무장 봉기를 통하여 조국의 해방을, 마카비의 영광스런 시대로의 희구를 갈망하던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갈릴리 언덕에서 은신하며 게릴라전을 통하여 로마를 위협하고 있었다. 넷째, 에세네파로 이들은 정치나 전쟁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광야로 숨어들어 외부와는 격리된 수도원적 공동체를 이루고 생활하며 경건을 공부하면서 주님의 왕국을 준비하였다. 마지막으로, 헤롯당이라고 하는 헤롯 왕가 충성하며 이득을 취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목적을 가진 무리들이 뒤엉켜 서로 반목하며, 위협하는 불안전한 유대 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다음으로, 철학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겠다. 당시 유대지역을 포함하여 로마가 지배하는 전 지역은 정식적으로는 헬라철학의 지배하에 있었다. 당시의 철학은 고대사회에서 심오한 종교적 역할을 하였고 이는 후에 기독교 진리를 전해주는 도구로 쓰이게 된다. 헬라철학의 종류로는 첫째, 회의주의 학파사물을 관찰하고 부정함으로 고행을 중시하였고 이는 초대 기독교의 수도원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둘째, 라톤 철학으로 후대 기독교에 가자 큰 영향을 끼쳤다. 인간은 영적, 이성적, 육적으로 형성되었다는 3분법을 주장하였고, 물질은 악한 것이며 영적인 이데아를 추구하였다. 셋째, 스토아학파인데 이들의 로고스 개념은 초기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무엇이든지 그것을 지탱해가는 핵심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로고스라고 보았다. 이로 고스라는 개념을 사도 요한은 복음을 헬라인들에게 전하는데 사용하였다. 넷째는 네오(신)플라톤주의기독교의 신비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하나님을 초월해 있는 일자로 보고 일자로부터 정신이, 정신에서 혼이 유출되었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정치적 배경을 설명하고자 한다. 당시 팔레스타인 및 그 주변을 지배하고 있던 나라는 로마이다. 로마는 인류의 통일을 원했는데, 이를 가톨릭교회가 모방하게 되었다. 또한 로마는 평화를 추구했는데 이것은 복음 선교의 도움이 되었다. 또한 제국의 우수한 도로망이 선교에 도움을 주었다. 헬라어가 공용어로 쓰이게 된 것도 성경의 정확성에 기여하였다. 사도바울의 로마시민권도 그가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도움이 되었다.

 

 

2. 기독교 신앙이 놀라운 속도로 헬라 지역에 전파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라.

복음은 급속도로 곳곳으로 확산되었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신자들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으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보았고, 지상명령을 직접 받았으며 승천의 모습과 재림의 약속을 받았다. 무엇보다 사도행전 1장의 성령의 강력한 임재 속에서 그들의 믿음의 확신은 금광석과 같이 굳건해졌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열정적이고, 조직적이며, 전투적으로 전도를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기독교의 고상한 신앙과 세계관은 헬라인들의 내심 즉, 스토아학파가 추구한 이상에 대한 추구를

기독교가 성취하였다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복음의 확산을 도운 것들로는 다양한 사회적 활동이었다. 첫째, 고아원 설립으로, 당시 고대 사회는 전쟁이 많고, 남아 선호사상으로 인해 고아가 많이 생겼는데 이들을 위한 고아원 설립은 초기 여러 가지 안 좋은 루머들을 종식시키고 호감을 갖게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둘째, 여러 가지 구제 사업으로 교회의 제정의 1/4 이상을 구제로 상용하였고, 스스로 절약을 해서 구제 헌금으로 썼다. 셋째, 병자간호로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양실조에, 전염병으로 인해 많이 죽어가고 있는 중에 환자들이 모여 있는 집단촌에 들어가 병자를 간호하였고, 그러다 죽은 사람도 많았다. 넷째, 남녀평등 사상으로 이는 상류층으로 교회가 확장되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 비교적 교회 내에서 여성의 지위를 많이 높여 주었다. 교회 성도의 70%가 여성이었고, 초대교회는 이들을 통해서 부흥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노예들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이다. 노예에게도 형제 대우를 해줌으로써 그들이 감동을 하게 되었고, 이는 로마의 구조 자체를 뒤엎는 일이었다. 로마가 침략을 당할 때, 노예들이 일어나서 교회를 지켜 주었고, 나중에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선교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복음의 확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였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 특히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복음을 지키는 고결한 순교의 장면들이 군중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3. 로마 사회에서 초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았던 이유들을 설명하라.

로마 정부와 사회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그 중 첫 번째로, 로마사회의 종교적 배경을 들 수 있다. 로마인에게 있어서 종교는 공포심을 없애기 위한 예배와 의식이며,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제사를 국사의식으로 발전시켰다. 로마인들은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신이 로마제국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또한 영토 확장에 따라 종교의 숫자도 자연히 증가하게 되었다. 그로인해 잡다한 미신적 종교들이 난발하게 되었으므로 원로원에서는 질서의 문제를 들어 로마인이 조상 때부터 섬겨오던 신만 심기게 하였다. 정복지의 주민들에게는 그들이 검증한 종교만을 인정하게 되었는데 그 기준은 역사성이 긴 종교, 종교의식이 이상하지 않은 종교,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드리는 종교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흥종교였을 뿐만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없고, 정해진 장소도 없으며, 형상 앞에서 예배하지도 않고,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심한 이기적인 종교였다. 더욱이 호전적이고 적극적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둘째로, 황제숭배와의 정면충돌이었다. 황제숭배의 기원은 로마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 정책을 펼쳤다. 로마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게 되면, 폭군으로부터 해방, 치안이 유지하게 됨으로 로마 정신에 대한 감사하게 되었고 이것이 황세숭배로 발전하게 되었다. 로마는 모든 민족에게 먼저 황제가 주님이신 것을 고백하게 하였고, 그렇게 한 자들에게는 증명서를 발급하였으며, 그 후에는 자신의 신들에게 제사하고 예배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타협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이러한 투쟁을 우주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짐승을 제국의 권력과 황제숭배로 보았다.

그러나 박해의 직접적인 원인들을 따로 있었다. 기독교는 원로원에서 승인하지 않은 불법종교였고, 그들을 무신론자로 여겼으며, 유대인의 반란을 무서워하였고, 당시 기독교인들은 성찬과 비밀집회, 거룩한 입맞춤 등으로 식인행위를 하고 성적문란하다는 오해를 받았다. 또한 그들은 기독교인의 군복무 거부하였다. 결정적으로 황제숭배 거부하고 예수를 숭배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로마에 충성을 거부한 적대적 행위라고 해석되었던 것이다.

 

 

4. 영지주의에 대해서 설명하라.

영지주의는 2세기와 3세기에 활동했던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조직을 갖추지 않은 사상 학파들의 무리들에 적용된 명칭(gnosis)이다. 이들은 혼합주의의 산물로 유대교적, 이교적, 동방 종교적인 요소들을 끌어 모았다. 성경 행 8:14-24에 나오는 시몬A. Simon Magus로 본다. 그는 기독교와 영지주의를 연결 짖는 고리 역할을 하였다. 구원이란 육체와 세상 소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가르치며, 그리스도에 대한 가현설을 주장하였다.

가현설이란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를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며 다만 도깨비처럼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인 것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공간복음의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모든 기록을 정면으로 도전했음으로 요한1서 1:1에 이단의 괴수라 칭함을 받았다.

대표적인 영주주의자로 발렌티누스를 들 수 있다. 그는 사변과 신화를 융합하고 거기에 드문드문 성경의 내용들을 끼워 넣는 것을 발전시켰다. 그는 철저한 이원론적 사고로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를 철저히 구분하였고, 물질세계의 창조를 절대 신인 하나님이 아니라 열등한 신 또는 최초의 데미우르고스로 보았다. 그는 구원이란 물질로부터 해방되어 그 진정한 본향으로 올라가는 것이며, 이것을 돕기 위해 중재자가 여러 연속적인 아이온 또는 하늘들을 거쳐서 이 땅으로 내려온다고 주장하였다.

이들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인간은 지식에 의해서 구속받는다. 복음은 초현세적인 것들에 간한 지식이다”라고 정의함으로 그노시스주의(Gnosticism)라고도 한다. 그들은 영적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개인적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독특한 지식(그노시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지식이 자신들에게 전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기독교의 형식을 취함으로 교회에 쉽게 침투하여 교회를 정화시키겠다고 나서기 시작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Dualism)을 바탕으로 세상은 궁극적으로 두 개의 서로 다fms 우주적 세력으로 양분하고 있으며, 물질은 악이고 이를 창조한 조물주 신은 악한 존재로 간주한다. 태양과 광선들을 예를 들어 발산의 개념을 사용하여 창조를 설명하며, 궁극적인 선한 신이 하급 신인 그리스도를 보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환상설을 주장한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당대의 과학과 철학에 조화시키려 했던 노력 속에서 영지주의자들은 성육신의 사건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은 복음을 상실해 버렸다. 이를 대적하기 위하여 현재 사도신경으로 불리는 구 로마신경이 만들어졌다. 이 신경은 삼위일체의 신앙에 기초를 하고 있다. 이 신경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기술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고난, 죽으심, 장사, 그리고 육체의 부활 천명하고 있다.

 

 

5. 이단인 마르키온과 몬타누스에 대해 설명하고 이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라.

Marcian(마르키온)

소아시아 폰토스의 시노페에서 감독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키온구약과 신야의 하나님은 다른 존재라고 주장한 영지주의자 케르도의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로부터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치리를 당한 그는 로마로 와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140년경 그의 사상체계와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144년경 이단으로 파문당하였다.

그는 철저한 이원론자로서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고, 바울을 통한 구원만을 강조하고 구약의 신약적 전통을 무시하였다. 그는 두 종류의 하나님으로 구분하여 구약의 하나님은 율법, 악, 전쟁, 변덕의 신으로, 신약의 하나님을 선하고, 은혜와 사랑의 신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물질을 경멸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육체적 탄생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죽음, 부활을 거부함으로 삼위일체를 난도질하였다. 그는 유대적 성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마태, 마가, 요한복음, 히브리서, 사도행전, 요한계시록, 목회서신 등을 거부하고, 바울서신 10개와 누가복음 일부만을 정경으로 채택하였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이 하나님과 직통하기 때문에 자신만이 참된 진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바울을 우상화하였고, 그리스도가 두 번 가현을 했는데 한번은 예수님에게, 한 번은 바울에게 하였고, 바울은 죽어서 하나님 우편에 있는 예수님의 우편에 앉아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금욕적인 생활 태도를 취하고 영지주의와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다. 마르키온은 교회로 하여금 신약성경을 작성하도록 이끌었다.

 

Montanus(몬타누스)

몬타누스는 소아시아 교회들의 부흥에 이은 교회제도화와 사랑이 식어감에 대한 반발로 156년~172년 소아시아의 phrygia에서 발생하였다. 몬타누스는 예수님이 약속한 보혜사가 자기에게 임했다고 주장하고, 종말의 임박성 강조하였다. 그는 phrygia에 새 예루살렘 설립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었고, 당시 교회는 성령은사 떠났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엄격한 금욕과 재혼금지, 금식과 참회를 강조하였다.

그의 문제점은 자파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성부시대는 끝나고 성자 시대가 도래 했으며, 지금은 성자시대가 끝나고 성령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고 주장하며 성령이 부어지는 시점을 “말세”로 보았다. 그는 자신이 성령을 받았으므로 예수님께서 곧 오신다고 함으로 성령사역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그는 성령의 은사 특히 방언과 예언을 강조하였는데 그의 여 제자 두 명에게 엑스타시 상태에서 방언, 예언을 하게 하였다. 그들은 성령 충만이 재림의 징조로 자기들이 세운 마을 위로 정한 날짜에 재림이 이루어진다고 하였고, 정한 날짜에 일이 성사되지 않자 사랑의 하나님께서 모두를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재림을 연기하셨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선동으로 인하여 많은 교회들이 분열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성령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결정적이고 규범적인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였다. 그의 영향으로 정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 190년 무라토리 정경 목록이 정해지게 되었고, 최초로 367년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편지에서 신약 정경 27권이 소개되었고, 히포,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추인되기에 이른다.

 

이단들의 문제점

이들 이단들이 문제점은 첫째, 교리적으로 이원론(Dualism)의 문제이다. 그들은 성경을 이탈하여 너무 영적으로 치우쳐서 문제가 되었다.

둘째, 역사에 대한 부정적 판단으로 그리스도의 역사적 존재를 거부한 점이다. 그들은 신비적 요소는 강조하면서 우리의 모든 신앙과 신학은 선배들을 통해서 받았다는 것을 무시하였다. 우리 기독교는 2000년의 역사가 있다. 기도해서 하나님과 직접 교제함이 매우 중요하지만, 역사성이 있는 신학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단들은 성경을 무시하고, 선지자, 사도들이 받은 계시를 무시한다. 현대의 신학은 지난 2000년사의 모든 신앙인들의 엑기스이다. 신약과 구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면 영적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다. 그들의 오류는 기독교는 역사성을 무시함에 있다.

셋째, 그들의 분파주의적 교만으로 자기들만 감추어진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강조함에 있다. 그들은 다른 파에는 구원이 없다며 다른 교회와 철저하게 구분을 한다.

결론적으로 초대교회 이단들로 누구보다 신앙에 열심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주관적, 편파적으로 해석하고 개인 경험만 강조한 것이 큰 오류였고, 사도나 교부들의 가르침을 무시함으로 결국 이단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6. 성경(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의 형성 과정과 성경의 영감성과 통일성을 설명하라.

교회사의 첫 100년 동안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의 성경은 오직 구약성서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신약성서로 알려지게 된 것에 속하게 될 책들은 이미 존재해 있었다. 구약성경은 90~100년에 열렸던 얌니아회의 통해서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구원의 교리에 관한 건드릴 수 없는 원천으로 받아드렸다. 신약성서가 구약성서와 대등하다고 분명하게 말한 최초의 저술가는 “이레나이우스”였다. 신약성서에 속한 책들의 확정적인 목록 또는 정경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대략 주후 2세기 중엽이었다.

정경의 형성을 촉발시킨 사람은 바로 이단 마르키온이었다. 그의 이원론은 그로 하여금 구약 성서를 거부하게 만들었다. 그는 정경 목록을 최초로 제시한 인물로, 그의 잘못된 성경목록을 대항하여 사도들의 회고록들, 사중복음, 조화로운 본문, 사도서신 등을 기초로 하여 교회 속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던 책들의 목록을 개정하게 되었다.

정경의 판별 기준으로는 첫째, 자증성으로 성경 자체가 스스로 정경임을 입증한다. 둘째, 교회에서 오랫동안 회람되었던 글들 셋째, 무엇보다 결정적인 기준으로 사도성이다. 즉 사도에 의해 집필되었거나, 그에 준하는 사도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필인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디다케, 헤르마스의 목자서, 베드로 묵시록 등 오랫동안 정경의 언저리에서 맴돌았던 책들은 결국 정경에서 제외되었고,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2서와 3서, 유다서 등은 인정받기 위해 시간을 걸려 결국 정경에 포함되게 되었다.

 

성경의 영감설

성경의 영감설은 디모데 후서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와 베드로 후서 1장 21의“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바탕으로 교부들은 성경 전체를 영감된 것으로 보았다. 성경은 오류로부터 면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것은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교부 시대의 영감은 일종의 사로잡힘을 뜻하는 것이었다.

 

신약과 구약의 통일성

신약과 구약의 통일성은 구약성서는 꺼풀이 벗겨진 눈으로 바라보면 철두철미하게 기독교적으로 보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는 이미 이스라엘의 신앙 속에 존재해 있었던 메시야, 고난 받는 종, 하나님의 나라 등등과 같은 개념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가져다가 자기 자신 및 자신의 사명에 적용하셨고, 그렇게 함으로써 구약성서를 재해석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사도들의 메시지의 핵심은 주님의 나타나심, 사역, 수난, 부활, 승천과 그 이후에 일어난 성령강림 속에서 구약의 옛 예언들이 성취되었다는 선포였다.

 

 

부록. 모형론과 알레고리

교부들 자신은 모형론을 설명하기 위해 알레고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모형론과 관련해서 가장 피해야 할 용어이다. 알레고리적인 주석에 있어서 성경 본문은 영적인 진리들에 대한 단순한 상징 또는 알레고리로 취급하였다. 모형론적 주석은 천차만별의 형태로 행해졌다. 기본적으로 모형론적 주석은 신약과 구약의 상응성을 밝혀내기 위한 기법인데, 구약의 사건들과 인물들은 신약의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한 “모형들”, 즉 예표라는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