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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청결의날

예림의집 2013. 3. 26. 05:18

성전 청결의날


예루살렘 입성은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의 또 다른 구원의 역사가 시작됐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수난의 시작입니다. 그동안 유대땅의 변방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들에게 하늘나라 소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한 백성에게 풍족한 먹을거리로 선물을 주신다는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병들고 소외당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기쁨의 선물을 병 고치는 기적으로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은 인간의 상식과 지혜로 볼 때 일종의 ‘기적’이라 표현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일상적인 은총일 뿐입니다. 갈릴리로 상징화된 예수님의 선교무대는 이제 권력과 부와 상류사회의 상징인 예루살렘으로 옮겨옵니다.

우선 예수님의 눈에 비친 예루살렘은 병들었습니다. 상당히 곪아버린 말기의 암환자 같았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도록 축복받은 성전이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한 때문입니다. 병든 자가 고침 받아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구원 받듯이 성전도 부패와 타락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성전으로 거듭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환전소가 되고 물건을 사고파는 악덕시장으로 변했기에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율법이라는 미명하에 기득권자들의 자기 보호 체제와 이념으로 화석화되다보니 그 속에 정작 살아움직여야 할 하나님의 영이 거할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성전 건물이 휘황찬란한 장식과 호화스런 내부시설로 가득차다보니 성전 속에 살아 있어야 할 ‘사랑’이 없어졌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귀한 인격의 인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군상의 부패 본거지일 뿐입니다. 당연히 새로 지어져야 합니다. 기도가 충만한 교회,하나님의 신령한 사람들로 가득한 교회로 변해야 합니다. 교권주의적 껍질만 앙상하게 우뚝 서 있는 성전이 변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자유가 넘실거리고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은 아니더라도 시냇물처럼 흐르는 곳으로 탈바꿈해야 옳습니다.

어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재의 교회들을 보고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적인 기복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크고작은 축복 환매 내지 구매시장으로 변질된 한국 교회의 모습은 아닐까요.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율법주의적 교만과 세속주의적 욕망이 성전 개혁을 맞았듯이 오늘의 한국 교회는 성직자와 교회 평신도 지도층의 기득권 보호속에 성령의 생동력이 말라가고 성도들의 참인간다움도,참하나님을 닮아가는 모습도 사라져버린 앙상한 세속 건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당시 사람들은 다윗왕의 후광과 지속을 바라는 정치적 메시아로 환영했고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그 예수를 환영하지는 않았습니다. 탐욕의 억압생활을 견뎌야했던 이집트에서 출애굽시킨 모세의 자손인 메시아를 바라지도 않았지요. 단지 이스라엘 민족을 통일시켜 통일왕조를 이룬 다윗,그리고 솔로몬의 영광이 재현되기를 바랐습니다. 로마의 억압 통치를 벗고 독립된 이스라엘 국가를 만들어줄 정치적 메시아를 바라며 ‘호산나’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새끼나귀를 타고 왕으로 입성하시는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포함해 전 인류,전 세계의 회개와 청결을 통한 구원의 메시아로 등극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세속적 기대치와 하나님의 성스러운 구원 계획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었습니다. 세속주의는 하나님의 성스러움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응답했습니다.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유대인의 왕’으로 굴레를 씌워서 말입니다.

나귀를 타고 오신 메시아는 십자가 사건에서 보듯이 스스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이 되어 그 위에 회개한 죄인들을 태우고 부활의 그날을 향해 가십니다. 그 죄인들 속에 우리 교회도 동승합니다. 진정 부활의 생명을 얻기 위해 십자가의 길,회개의 길을 기꺼이 걸어가야 할 시점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이시여,어서 속히 우리 가운데 오시옵소서. 호산나. 박종화 목사(경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