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훈련을 습관화 하라
알고 지내던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당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는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지요.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는데도
늘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신영복
훈련은 그에 상응하는 자유가 있다. 성실하게 훈련한 운동선수는 본 경기에서 훈련에 상응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훈련의 목적은 자유함이다. 영성 훈련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하는 수단이다. 훈련이 답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답에 이르는 것이다. 훈련은 목표 달성을 위한 위대한 수단이다.
영성훈련을 습관화하려면 먼저 성도의 진정한 본성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제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히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2-14). 원죄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었다면, 하나님은 이제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엑 영성 훈련을 통해 진정한 본성으로 형통하게 인도함을 받는 길을 열어 주셨다.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 10:10).
이제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거룩한 습관을 배울 수 있다.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회당에서 성경을 읽으셨다.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새벽에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산에 가서 기도하셨다. 성경은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눅 21:37-38)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습관에 대한 원리들을 구체적인 영적 훈련의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영적 성숙을 위해 무엇을 습관화해야 할까? 또 그것을 어떻게 습관화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영적 성숙을 위한 바른 방법과 바른 도구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아시는 것과 인간이 아는 것은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식은 전체를 아는 지식이지만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알뿐이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을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9)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대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우리는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 나는 7년 동안이나 집 근처 언덕길을 항상 운전하며 다녔는데도 그곳에서 바다가 보인다는 사실을 몰랐다. 바다를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친한 목사님과 같이 그 길을 지나오는데 그 목사님이 손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곳이 바다라고 하셨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지만 확신이 가지 않았다. 그 목사님은 이곳에서 54년 동안 사셧다. 전에 이곳은 시골 동네였다고 한다. 집이 많이 않은 허허벌판이었다고 한다. 그 목사님은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이 언덕을 넘을 대마다 바다를 본 것이다. 그래서 그분 눈에는 바다가 보였다. 몇 달 전, 비 온 다음 날에 이른 아침의 맑은 공기 속에서 언덕을 넘으면서 드디어 나도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방법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문제에 따라오는 해답과 같다. 모든 문제에는 해답이 따라온다. 그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이 있다. 하나님은 그것을 다 아시지만, 그 답을 바로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계적인 동작을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생각할수 있고, 선택할 수 있고, 창조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 말슴에 민감하기를 원하신다.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뜻과 섬리에 민감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과 닳은 존귀한 형상을 통해 지혜를 추구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기회와 인간의 준비가 만나는 곳에 형통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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