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한 기도(단6:10-15)
2011년 6월은 무엇보다도 나라를 위한 기도에 힘쓰는 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도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나라사랑은 기독교인의 의무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연수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나라까지 정해 놓으셨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6절에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과 나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애국자였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겨야 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그 뿐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그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되어야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세계 모든 인물들은 다 어떤 사람들이냐?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았고, 자기 조국을 사랑한 애국자였습니다.
모세는 애국자입니다.
사도 바울도 애국자입니다.
그들은 누구도보다도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신분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는 민족을 사랑하고 자신들이 히브리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천국에 소망만 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부지런하고, 절제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더욱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 하는 일입니다.
기도보다 더 좋은 애국은 없습니다.
과연 이 시대에 성도들이 구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6장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구하고 주의 말씀을 구해야 합니다.
이 민족이 하나님께서 주셨던 경제적인 축복을 소홀히 여기고 하나님앞에 방자히 행했던 것과
경제중심으로 살고 믿음중심으로 살지 못했던 죄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 어려운 난국에 우리는 믿는 자로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운동선수들은 올림픽에 나가 최선을 다해 국위를 선양함으로써 애국할 수 있습니다.
경제인들은 나라를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듦으로써 애국할 수 있습니다.
군인들은 국방의 임무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애국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연구 개발로 애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애국할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애국의 길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나라가 잘되기를 위하여 무조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민족이 다시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라 전체가 하나님께 돌아와 회계하고 예배드릴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바른 자세와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이끌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라는 반드시 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백성이 평안하고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는데 하나님의 뜻은 믿는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가는 곳까지 역사도 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면 역사도 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마음의 영적인 자긍심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힘 있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는 무슨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겐 생명 구원의 상급이 주어지며,
기도를 통해서 가정, 민족, 국가가 살려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나라를 위하여 기도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위하여
1.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중에 한사람의 역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힘, 한 사람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커서 때로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중 1차 반환분 75권이 지난 4월14일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방치돼 있던 외규장각 의궤가 반환되기까지 꼭 기억해할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국내에 처음 알리고, 그 연구에 평생을 바친 올해 83세의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입니다.
유학생 신분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1978년 도서관 창고에 방치돼 있던 <조선왕실의궤>를 처음 찾은 박 박사는
그것이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임을 확인한 후 국내에 알렸습니다.
그로 인해 도서관에서 쫓겨나는 서러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 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기에 매달려 10년 만에 의궤 297책을 모두 번역했으며,
나아가 의궤가 다시 우리나라에 돌아오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이번에 의궤가 우리나라에 돌아오게 된 것이죠.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박병선 박사가 보여준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몸무게 45kg의 가냘픈 유색인종으로서
혼자 당시 세계 인구의 2/3를 지배하던 거대한 영국 제국을 굴복시켰던 “간디” 역시 그 경우입니다.
한 사람의 힘, 그것은 세상 역사를 바꾸거나, 인류를 유익하게 하거나, 나아가 모두를 살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간 소년이었고
많은 포로들 중에 특별히 은총을 받아서 왕궁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 행운 속에서 다니엘은 결심을 했습니다.
‘망한 나라 백성으로 포로로 끌려와 어차피 죽었을 목숨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이 주어 졌으니
이제부터 하나님만 섬기며 살리라’라고 결심하고 보니
자기가 먹는 왕의 음식 속에 포도주와 고기가 전부 바벨론 신에게 제사를 드린 음식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이것을 먹지 않기로 뜻을 정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제사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기로 다짐하며 기도하는 다니엘의 독실한 신앙을 보시고
하나님은 기쁘게 여기셔서 그에게 지혜와 명철과 신령한 은총을 부어 주셔서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두 왕을 섬겼습니다.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을 섬기며 바벨론이 굳건히 서도록 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이 무너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페르시아 왕국을 세웠습니다.
다리오왕은 나라를 정복하면서 왕을 도와서 지혜롭게 나라를 다스릴 3명의 총리를 두기로 했는데
그 중에 한명으로 다니엘을 선택했습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발탁한 이유는 다니엘이 지혜로운 충신이었고
백성을 사랑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정치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후 총리에 오른 다니엘은 다른 신하들의 시기와 질투로 시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메대의 귀족출신도 아니고 포로로 잡혀온 유다인의 천박한 출신이므로
다리오 왕 옆에서 출세를 꿈꾸던 신하들이 그를 시기하고 모함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4절에 보면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
당시 페르시아는 다민족 국가이며 엄청나게 넓은 땅을 정복했고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다 보니 민족마다 자기 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통일이 됐으니 자기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왕에게만 기도하라는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법을 만든 신하들은 사실 다니엘을 잡아넣기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왕의 신하들은 다니엘은 기도하는 사람이고, 저 사람은 죽어도 기도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왕은 백성들에게 이방 신을 위해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진다는 금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한 다니엘의 반응이 오늘 본문 10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왜 그들이 그런 법을 만들었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계속 기도하면 사자 밥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창문을 닫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창문의 방향을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쪽으로 내고 그 쪽을 향하여 기도하는
"성전 중심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니엘과 같은 성전 중심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 말씀 중심의 신앙, 성전 중심의 신앙,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탈출해서 가나안으로 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동식 성막을 허락하셨고 그 성막의 중심에는 법궤가 모셔져 있엇습니다.
그리고, 그 법궤 속에는 하나님 말씀인 십계명 돌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의 삶은 이 성막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나라를 세웠습니다.
나라를 세우고 3대 왕인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성막이 이제 성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성전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이 예루살렘 성전을 기억하면서 성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모든 남자들은 매년 세 차례 절기를 지키며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이 다니엘은 예루살렘에도 살지 못했고 가나안에도 살지 못했습니다.
먼 페르샤에서 지금 자기의 사랑하는 고국 이스라엘을 향해서, 자기의 사랑하던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문을 열어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하루에 세 번씩 교회를 생각하면서, 내가 속해 있는 이 교회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유럽의 도시를 가보면 옛날 도시는 전부 다 가운데 교회가 있고 그 다음에 관공서, 그 다음에 주택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도시가 바로 성경에 나오는 원리대로 생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도시가 다원화되고 사회가 다원화되다 보니까
교회와 거주하는 집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 신앙인들은 교회 중심으로 모여야 하고 교회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한것 처럼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13)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메대 방백들이 시기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찾다가 다니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줄 알고
왕을 충동하여 앞으로 30일 동안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절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금령을 정하고
다리오 왕에게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게 하여 전국에 금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은 이처럼 기도를 금하는 왕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사자 굴에 던짐을 받게 될 것을 알고도,
여전히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몰래 숨어서 적당히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루에 세 번씩 자기 집 방의 열린 창에서 무릎을 꿇고 소리를 내어서 정식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꾀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겉으로는 기도하지 않는척하고 속으로만 적당히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런 비겁한 꾀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방백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12절에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여기서 누구에게 나아갔다고 하였습니까? 왕에게 갔습니다.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즉시 왕에게 고소를 하러 갔습니다.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 내린 금령에 대해서 왕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다음에 금령의 내용이 나옵니다.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이 금령의 어길 경우 벌칙이 무엇입니까?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내린 금령을 어길 경우 사자굴에 던져넣기로 한 것에 대해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리오 왕이 "왜 신하들이 이렇게 와서 이런 말을 할까?" 마음속에 궁금하게 생각하면서도 일단 시인하였습니다.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자기가 틀림없이 금령을 정해서 내렸었던 것과
그 다음에 그 금령은 취소할 수 없는 사실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이 소리를 듣고서 드디어 다니엘을 시기하던 사람들이 다니엘을 고소합니다.
13절에 세 가지로 고소하였습니다.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첫째,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다니엘을 칭할 때 뭐라고 하였습니까?
"국무 총리 다니엘"이라고 하였습니까?
지금 다니엘은 총리 가운데 가장 왕의 총애를 받는 국무 총리였습니다.
그런데 총리 다니엘이라고 하지 않고 뭐라고 하였습니까?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유다에서 사로잡혀온 포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당초 다니엘은 자기네 나라의 총리 대신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그런 식으로 깎아내렸습니다.
두번째,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왕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무시했다는 것입니까?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잘 지켜야 왕에게 충성하는 것인데 왕이 정한 금령을 어긴 것은
왕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감히 왕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번째,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하루에 세 번이나 기도하는 죄를 범했다고 하면서 세 가지로 다니엘을 고소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저들의 이러한 고소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습관대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즉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지어져 죽을 줄 알면서도 기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은 다니엘 자신은 세상 왕의 종이 아니다라는 다니엘의 행동입니다.
다니엘이 금령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멈추지 않는 것은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지 왕의 종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총리 일을 열심히 한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그것은 왕의 신하로서 일을 열심히 한 것이 아니고 그 일을 하나님이 주신 일로 알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일한다는 것을
총리 일을 열심히 한 것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은 총리라는 일을 자기의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 총리라는 일이 다니엘에게 자신의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다면 다니엘은 총리의 신하로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금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총리라는 직책이 계속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총리라는 직책이 자기를 살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의 금령에 굴하지 않고 평소에 하던 기도를 계속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종으로 세상을 사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생존 문제에 연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주님의 종 된 모습입니다.
사람이 세상의 생존 문제에 연연해서 살아가게 되면 세상이 자기를 살린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이 됩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두려움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직업에 붙들려 있지 않습니다.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숨거나 도망하지도 않았고, 낙심하지도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나갔습니다.
다니엘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믿음을 지켰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라의 정권이 바뀌고, 누군가 나를 위협하며, 심지어 내 생명을 빼앗아 간다 해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름만 가진 성도가 아니라, 삶을 통하여 믿음을 보여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나라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왕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기도를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가 전부터 늘 하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가 늘 하던 기도는 총리의 직을 잘 감당하기 위한 지혜와 능력을 구한 것이며, 자기민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이는 다니엘의 신앙과 인품을 보아서 추측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는 말은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전혀 동요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면서도 그는 자기가 당하고 있는 생사의 문제, 사자굴 문제는 기도하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겁내기는 커녕, 문제도 아닌 것으로 취급해 버렸습니다.
다니엘의 집 밖에서는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집 앞에는 그의 행동을 망보는 이들이 들락거리고, 그를 잡아넣으려고, 국가가 동원되었습니다.
국법과 왕과 국무회의가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털끝만큼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왕에게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아직도 그가 총리이니 자기의 영향아래 있는 기관들을 동원해
자기를 모함한 사람들을 색출하고, 역공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그일 때문에 하루에 전에 늘 하던 기도를 그날은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 같았으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달랐습니다.
그는 오직 자기가 하던 일, 맡은 일에만 성실할 뿐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이란, 국가를 바르게 다스리는 일과 자기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의 할 일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밖에 난리가 나도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성실이고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받는 성도의 삶입니다.
여러분들은 직장과 교회와 가정에서 맡은 일이 있습니다.
그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최우선이고 그 일에 충성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며 훌륭한 삶인 것입니다.
다니엘이 자기에게 위기가 왔어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상대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왕은 평소에 다니엘의 성실함을 잘 알고 있었으며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왕은 자기가 실수로 다윗의 정적들의 계략에 말려든 것을 알고 가능한 한 집행을 지연시켜 저녁때까지 미루고,
공포된 법 때문에 마지못해서 던저 넣고는 밤새도록 고민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사자굴로 달려가고,
그리고 죽었을 것이 뻔한 다니엘을 사자굴 앞에서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늘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기에 능하셨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일에 충실한 다니엘을 위해 왕을 동원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왕이 오히려 그를 잃을까 봐서 걱정하고 야단하게 하셨습니다.
대개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사람은 인정받을 때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욥기를 보면, 하루는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을 자랑하셨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다며,
욥을 믿음을 인정해주셨습니다(욥1:8).
그때 사단은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허락하셨는데, 욥은 말할 수 없는 환란 중에서도,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큰 환난과 풍랑이 다가올 때,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니,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결국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은 욥은, 훗날 두 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괴로웠던 지난날의 환란들이, 마치 흘러간 물같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셨습니다.
이렇듯 인정받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주십니다.
다니엘도 왕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왕이 다니엘을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자굴에 들어갔어도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고 살려 내셨습니다.
결국 자신도 살고 민족도 살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기도로서 하나님께 인정받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다니엘의 기도처럼 나라를 위하여 기도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ε♡з하나님께로..ε♡з > 기도의횟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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