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교회 사역...♡з/교회 학교 소식

교사의 자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

예림의집 2011. 1. 5. 09:37

교사의 자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교사를 해야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감히 교사를 할 수가 있나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교사가 되었나요? 교사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격으로 교사를 하고 있나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자격증이 있어야 취직도 하고 직장도 갑니다. 유치원 교사도 자격증이 잇어야 하고, 초등학교 교사도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차동차 정비하는데도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 어느 곳이든지 자격증이 없으면 취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격도 없고 자격증도 없는데도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불러 주시는 것이 교회하교 바로 우리 교회가 아니던가요? 자격도 없고 자격증도 없는 나를 불러 천국 백성 되게 하시고,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세워 주셨으니 얼마나 하나님 은혜가 감사한지 몰라요.

저는 47년 동안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교사를 할 수 있을까?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교사가 되었을까? 늘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 뿐입니다. 만일 지금 우리에게 높은 학력을 요구한다면 여러분들과 제가 감히 이 자리에 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교사를 그만두어야 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지금 우리에게 어느 기술을 요구한다면 앞으로 아무도 교사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또 교히학교 교사로 신체적인 조건을 따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신장 179cm 이상이어야 하고, 몸매도 예뻐야 하고, 얼굴도 잘 생겨야 한고, 목소리도 예뻐야 하고, 걷는 모습도 예쁜 사람만 교사할 자격이 있다면 현재 우리 교사들 중에 감히 몇 명이나 교사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에서 따지고 중요시 하는 것들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주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는 특구너을 주시고 능력도 함께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니던가요? 그러므로 우리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해야 하고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초등학교 6년 전 과정을 마치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부모님께 감사하십시오. 어떤 교사들은 중학교도 나오고, 고등학교도 나오고, 대학교, 대학원까지 배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하시고 끝까지 봉사하십시오.

 

저는 가난한 산촌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들처럼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때는 2차 대전 중인, 우리 나라가 너무 가난했고 무질서 한 일제 말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1년 후에 해방은 되었지만 2차 대전이 끝이 난 직후라 한국 경제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해방의 기쁨도 잠깐 6.25 전쟁인 한의 큰 전쟁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1950년 제가 학교에 가야 할 나이에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하교는 꿈도 구지 못하는 남의 것이 되고 말았지요. 집안은 너무 가난해서 가을에만 잠깐 쌀을 구경할 수 있었고, 우리의 주식은 대부분 이른 봄에 돋아나는 쑥과 산에서 얻을 수 있는 산나물이 고작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누나 따라 밭, 개천가에 나가 이른 봄에 돋아나는 푸른 잎을 뜯는 일이 일과였고, 늦은 봄에는 밭에 나가 익은 보리 이삭 자르고(보리고개), 가끔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콘깻묵, 외국에서 들여온 밀가루를 빼낸 밀지울 또 우유 가루, 강냉이 가루, 외국 선교부에서 교회를 통해서 보내는 헌 옷가지(구호물자) 등으로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어디에서든 음식을 남기는 것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가난했기에 학교는 갈 수 없었고 오로지 교회를 통해서 저는 구어책도 읽을 수 있었고, 산수도 배우고 구구셈도 외웠고, 한문조 조금 배웠고, 영어도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문명퇴치라는 구호가 나돌던 때,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배워서 아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다"라고 외치던 때, 이 모든 일들을 교회가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있는 동네는 나이 많으신 어른들부터 나이 어린 저와 같은 어린이들까지 밤마다 모여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있는 동네는 문뱅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교회가 그런 일들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예배드리고, 가르치는 일에 투자햇으니 그 때 배우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나가서 교회를 세우고, 목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권사도 되고, 집사도 되어서 오늘의 교회를 만들어 낸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교회학교에서 선생들에게 무섭게 배웠습니다. 성경구절 받아쓰기, 성경구절 외우기 등 쓰다가 틀리면 대막대로 손바닥도 맞아 보고,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종아리도 맞았습니다. 그 때 나를 가르쳐 준 선생님들이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분들 모두 다 학교에서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공부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선생님들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때 부우던 것처럼 오늘까지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이 3년 만에 휴전이 되고 끝이 났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10년도 넘게 전쟁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제가 살던 고향은 지리산이 있고 덕유산이란 큰 산 밑에 무주 구천동 어느 조그만 산촌 마을입니다.

휴전이 되자 그 동안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던 인민군 잔재들, 지방에서 만들어진 좌익 단체들이 북으로 도망하지 못하고 모두 다 이 큰 산속으로 스며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조용한 것 같지만 밤에는 마을로 내려와 소, 되지, 부녀자들을 잡아가고, 낮에도 산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으 데리고 가서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10여 년 동안이나 전쟁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여올리교회(1903년 창립)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고, 항상 예배드리고 가르치는 일에 학교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배운 저를 하나님께서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처럼 사용하여 주시니, 16살 어린 나이에 교사가 되어 오늘까지 47년 동안 능력있는 지팡이로 써 주셨습니다.

 

교사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무 자격도 없고, 자격증도 없는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셔서 교사로 써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사는 날 동안 늘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끝까지 충성 봉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