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학습 도움이

들어가는 말①

예림의집 2010. 12. 30. 13:47

들어가는 말①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닙니다. 저는 히브리학자도 고등비평가도 아니며, 고대사학자나 고고학자도 아닙니다. 이 책은 다만 비전문가가 비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쓴 것입니다. 이러한 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있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의문점이 생겼을 경우, 선생님께 그 문제를 여쭈어 보기보다는 옆에 잇는 친구에게 물어볼 때 더 잘 해결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저마다 겪어 본 일이겠지만, 선생님께 그 문제를 여쭈어 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만 해 주시거나 다른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으실 뿐 정작 이해하고 싶은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 해결해 주시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경험해 보았습니다.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학생들이 갖고 온 문제에 답을 해 주었는데, 그들의 얼굴 표정에서 과거 제가 선생님들에게서 겪었던 절망감을 읽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함께 배우는 학생이 선생님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친구가 선생님보다 아는 게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친구에게 설명을 부탁하는 문제는 그도 최근에 고민해 본 문제입니다. 반면 전문가인 선생님은 그 문제를 너무 오래 전에 겼어서 이미 그 일에 대해 잊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그 주제 전체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학생이 대체 뭘 어려워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신 선생님의 눈에는 그 학생이 마땅히 질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는 다른 문제들이 보일 뿐입니다.

 

이 책은 아마추어로서 시편을 읽으며 경험했던 여러 어려움가 깨달음을 다른 아마추어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저처럼 비전문가 독자들에게 흥미와 유익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썼습니다. 따라서 저는 같은 학생으로서 '의견 교환'을 하려는 것이지 선생으로서 강의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시편을 재료 삼아 한 묶음의 잡문을 썼다고도 생각할 수 있껬습니다. 설영 제가 그런 식으로 책을 썼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런 종류의 책으로 생각하고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도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씀드린다면,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닙니다. 여기에 담긴 사색들은 모두 시편과 만남을 통해 제게 일어난 상념들입니다.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시들, 처음에는 좋아할 수 없던 시들과 만남을 통해 불러일으켜진 상념들 말입니다.

시편은 여러 시인들이 저마다 다른 시대에 쓴 글들입니다. 어떤 시들은 다윗 왕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시편 18편은 다윗이 직접 쓴 시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사무엘 하 22장에 조금 다른 버전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시편에 나오는 많은 시들은 '포로기(바벨론 유수라고 부르는게 옳겠습니다만)' 이후에 쓰였습니다. 학술서라면 저작 연대를 먼저 다루어야겠지만, 이 책의 성격상 연대 문제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라나 처음부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편은 시(詩)라는 사실, 그것도 노래로 부르기 위해 쓴 시라는 사실입니다. 시편은 교리서가 아니며 설교도 아닙니다. 성경을 '문학으로서' 읽어야 한다는 말을, 종종 그 주제에 유의하지 않고 읽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치에 무관심한 채 메드먼드 버크(Edmund Burke)를 읽거나 로마에 무관심한 채 아이네이스(Aeneid)를 읽는다는 말처럼 순전히 넌센스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결국 문학이기에 묵학으로서 읽어야 한다는 말에는 그보다 더 건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성경은 여러 종류의 문학으로 구성되어 잇어서 그에 맞게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시편입니다. 시편은 시로서 읽어야 합니다. 다른 서정시처럼 일정한 형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파격과 과장이 들어 있는, 논리적 연관성보다는 정서적 연관성을 갖고 잇는 시로서 말입니다. 프랑스어는 프랑스어로 읽혀야 하고 영어는 영어로 읽혀야 하듯이, 시를 이해하려면 우선 그것을 시로서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놓치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서울신학·총신신대원 > 학습 도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어가는 말②  (0) 2011.01.01
성령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  (0) 2010.12.31
왜 잠언을 읽는가?  (0) 2010.12.30
총신대학교 학점 은행제  (0) 2010.12.30
설교와 설교자   (0) 2010.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