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현대신학

성령세례에 대한 주장 3가지

예림의집 2009. 11. 25. 21:35

성령세례에 대한 주장 3가지

 

근자에 이슈로 떠오르는 논쟁 중의 하나가 성령론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성령론에 대한 입장 중 크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오순절 주의의 가르침이고, 둘째는 개혁주의 입장중 중도적 노선이며 셋째는 정통적인 개혁주의 입장이 있습니다.
첫째, 오순절주의(일명 순복음)에서는 성령세례가 신비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이들은 방언, 병고침등과 같은 특별한 은사를 성령세례의 모습으로 봅니다.
둘째,  개혁주의 중에서도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노선은 성령세례를 특별한 체험으로 봅니다. 오순절파가 은사에 강조점을 둔다면 이들은 그것을 포함한 포괄적인 체험에 강조점을 둡니다. 그리하여 성령세례는 반복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받아야한다고 주장합니다.(로이드죤스목사, 헤르만 바빙크, 차영배)
셋째, 정통적 개혁주의 입장(일명 장로교)으로 성령세례는 중생하여 구원받는 체험으로써 반복적이지 않고 신자의 일생 중 한 번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아브라함 카이퍼, 서철원)

이 세가지 입장 중 저는 세번째 주장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신자의 삶속에 강력하게 내주하셔서 그를 지배하고 그의 전 영역에서 역사하실 때 성령의 은사는 물론이요 성령의 의도하심의 근본 목적인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신자의 삶속에 주관적으로 역사하여 신비한 능력을 나타나게 된다 할지라도 그의 삶에 열매(사랑)가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신비적인 요소가 있고 초월적 요소가 있지만 신비주의 종교는 아닙니다. 성령님은 분명히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도를 성도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고 끝내는 열매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랑이나 교만으로 가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공론화시키고 객관화시키는 것은 나쁜짖입니다. 더 겸손해야 하며 더 낮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SilverLine (2002-11-29 17:38:12)  

이곳에서는 신학적 논쟁을 하지 않아으면 합니다. 저도 바빙크의 성령의 관한 책을 읽어보았지만 반복적 성령 세례에 관한내용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신학전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삼가해 주었으면 합니다. 남의 신학을 높여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신학자의 도리며 겸손이며 낮아짐이라 봅니다.  



얼굴 (2002-11-29 21:52:19)  

SilverLine 님, 먼저 제글이 신학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킬 만한 것으로 비춰졌다면 용서하시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가르침중에 잘못된 가르침이 있다면 그것이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성경을 바로 조명해보고 자신의 신앙의 삶에 적용하여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자는 의도에서 쓴 제 마음의 안타까움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님께서 보신 바빙크의 책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잘 보셨으면 합니다. 남의 신학을 높여주고 인정해 주는 것만이 진정 신학자의 도리일까요? 저는 작은 목회자일뿐 신학자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신학자들의 주장을 통해 우리가 바르게 성경적 안목을 가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사조가 있다고 판단 될 때 침묵하는 것은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따르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님의 말씀은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앞으로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이 갈말의 식구들이 보기에 적절하지 않았다면 사과드립니다.  



산골소년 (2002-11-29 22:32:15)  

성령님...에 대한 논의는 십인십색이더군여.

저 역시 장로교에서 자란터라 3번에 동의 하지만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한다 했을때요...
3번 뿐일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것은 성령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을때
과연 내게 말씀하시는 분은 알고서 하는 말씀일까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는거죠.
장님이 장님에게 태양을 설명하는...
표현이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얼굴 (2002-11-30 20:43:22)  

산골소년님,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한다고 했을 때 거기서 열매는 당연히 성령의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은사가 아님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님이 장님에게 태양을 설명하는..."
이 표현은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군요. 저를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님이 보실 때 제가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저도 충분히 제가 올린 글에 대해서 부분적인 면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만 님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타당성 있는 분명한 언어로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미처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알 수 있는 내용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산골소년 (2002-11-30 20:56:24)  

앗,목사님 지금 접속해 계시는가 보죠? 금방 없던 답글이...
제가 드린 말씀이 딱 오해 사기 좋게 되어잇네요. 제 글솜씨가 그렇습니다.
목사님께 드린 말씀일리가 있겠습니까? 전혀 아니구요...

그동안 성령님께 대한 여러 분들의 책과 글을 접했는데요,
어쩜 그렇게 다 다를까 라는거죠.

그리고,,,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자기가 정말 아는것을 설명할때와 잘 모르는것을 설명할때,
그 설명을 듣는 이로써 어떤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아..저분은 정말 아는것을 말씀 하는구나,,,라는.
솔찍한 제 경험상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요,

음, 이런 주제를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위에 장로님처럼 혹 덕스럽지 않은 논쟁으로 불궈지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가 조금만 조심하고 주의하면 유익한 토론의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얼굴> 이라는 아이디는 어떻게 쓰시기로 하신건지 궁금합니다^^  



얼굴 (2002-11-30 22:10:39)  

산골소년님, 막 집에 가려고 하다가 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성실하고 자세하게 답변해 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직도 글쓰기밖에 할 줄 모르는 넷맹이라서 자세한것은 모르겠사오나 제가 카페에 가입할 때 어떤 모르는 분이 입력해 주셔서 그대로 그걸 쓰게 됐답니다. 하하... 좀 싱겁기도 하고 실망이지요. 그래도 자주 사용하다보니 정이 가는걸요. 산골소년님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이제 빨리 집에 가서 내일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이제 세돌 갓 지난 첫째 딸이 전화로 울고불고 난리입니다. 아빠보고 싶다고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얼굴 (2002-12-02 13:36:30)  

시골성도님, 주의 이름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사실 저와 함께 소그룸으로 Study하고 있는 저의 신학대학원 동기생들중에서도 한두명이 님의 입장처럼 로이드죤스의 성령론을 주장함으로 일전에 이 주제를 가지고 팽팽한 의견의 마찰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 로이드죤스 목사님은 학자이기 보다는 목회자에 더 가까우신 분으로 알 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제가 생각할 때 로이드죤스 목사님은 실천목회를 경험하면서 성령의 강한 임재를 많이 경험하셨던 분 같고 그런 연유에서 열정적인 목회를 하시다 보니 아무래도 성령세례(확실한 임재의 체험)쪽에 비중을 두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분의 주관적인 체험인 것이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령을 받으라"는 말은 있지만 그것이 소위 '성령세례'란 용어로 대변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성경적 표현으로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이 신자의 삶에 계속됨으로 인해서 신자는 로이드죤스목사님의 표현대로라면 '성령세례'라는 용어와 같은 그런 내주하심과 임재의 강한 체험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령세례'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다 보면 교회안에서 자꾸 그룹을 나누고 교만으로 갈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SilverLine (2002-12-02 17:12:33)  

저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S교회 장로로 은퇴하여 평교인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오순절계통의 입장은 충분히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엉급하고 싶지않지만 헤르만 바빙크에 대한 님의 잘못된 시각을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얼굴님 한 가지만 물어보고 가겠습니다. 화란어를 전공하셨습니까? 이 질문은 그리고 장로교 본고장이라고 생각하는 저의 입장에서 그곳에서 공부하셨는지를 알고 싶어서 질문을 드린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카이퍼의 제자가 헤르만 바빙크로 알고 있는데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성령의 세례 대한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무엇이 성경적이 아닌지 그리고 침묵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하셨는데 그렇다면 이단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으로 볼 수 밖에 없는데 무엇이 이단적 요소를 갖고 있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배우는 입장에서 질문하오니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신학적 이슈가 있는 것은 이곳에서 나누지 않았으면 하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이곳은 천주교에 대한 반문도 갈말식구들은 원하지 않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용이 불쾌하게 틀렸다면 용서하십시오 늙으면 그런가 봅니다.  



울엄마 (2002-12-02 19:33:42)  

좋은 의견을 주신 모든 분들께 먼저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제 소견으로는 위의 세 가지 성령론이 부분적으로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물세례와 성령 세례가 있습니다(사도행전1장5절 참조).
삼위의 하나님은 계시지만, 성경 속에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없는 것과 같은 표현일 뿐이지요.
다만 위의 세가지 이론들이 다 부분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틀에 사로잡혀버린 사람이 그 틀을 벗어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성령님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요, 참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다루어야할 것 같습니다.
질문하고 싶어요. 꼭 누구든지 답해주세요. (1)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5장19절). (2)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에베소서4장30절). (3)성령을 훼방하지 말라(마12장31-32절)의 차이점을 설명해주세요. 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분야나 인지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말하고 판단하는 폐단도 없어야하겠지요.
위의 세가지 주장이 부분적으로 다 맞다는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다 설명해드릴 수 있을까요? 이지면을 통해서.
가령, 입신을 경험해보셨나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이를 부인하려 들겁니다.
방언을 하시나요? 그렇지 않으면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나게 될 겁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제한된 지식이나 경험의 틀 속에서 얼마나 제한하고 있는지요. 딱한 일입니다.
우리가 어릴적에는 정말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들이 유치할 수 밖에 없지요.
우리는 단지 부분적으로(고전13:12)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서로 충돌없이 은혜로운 말씀 많이 나누어주시길 고개숙여 부탁드립니다. 샬롬!  



얼굴 (2002-12-03 11:21:00)  

먼저 저의 주장이 논리적 편협성으로 비추어진 점이 있다면 시골성도님과 실버라인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시골성도님, 님의 주장은 제가 생각하기로 대단한 논리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내용에 저도 긍정합니다. 맞습니다. 로이드죤스 목사님은 대단한 목회자이셨던 것을 저도 알고 있고 저도 다는 아니지만 그분의 로마서강해와 산상설교집(상하)을 보고 많은 깨우침과 눈물이 있었고 그리고 그분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고 지금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또한 로이드죤스목사님의 성령론을 부분적으로는 수용합니다. 그리고 님의 말씀대로 죤스목사님이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그리 많이 쓰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많이 쓰지 않은 것과 안쓴것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만약에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굳이 쓰지 않고 성령충만이라는 용어속에 내포된 의미로 성령세례를 말씀하셨다면 저도 수용합니다.

실버라인 장로님, 저는 화란 신학을 공부하지도 않았으며 외국어에 대하여는 아직도 문외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목회자 이상의 레벨로 느낌받으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아브라함카이퍼와 헤르만바빙크에 대해서 연구할 만큼의 깊이있는 신학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두 사제간의 신학자에 대해서 시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처음 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오순절과 정통 개혁주의 주장에 대한 중도입장을 주장하는 신학을 고수하고 따르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서 파생된 위험성 즉, 교회안에서 신비한 체험을 한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을 나누는 듯한 편가르기와 그것이 지나쳐 신비주의로 빠지고 성령의 열매가 없는 삶과 같은 것은 분명 위험한 것이고 이단적으로 갈 수 있는 것임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것만은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울엄마님, 반갑습니다.
"전통적인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틀에 사로잡혀 버린 사람이 그 틀을 벗어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는 님의 말이 참 바른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들 신자 개개인은 자신의 고정관념을 성경이라는 잣대에 비추어 선회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령의 강한 임재, 더 직설적인 표현으로는 '신비체험'이 모든 신자들에게 주관적으로 다르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성경이라는 절대적인 권위앞에 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님이 질문하신 것에 대하여 제 나름대로의 소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성령을 소멸치말라는 뜻은 살전그 앞 구절과 관련하여 기뻐함, 기도,감사의 삶을 위해 역사하시는 성령을 부인하지 말라는 뜻이며 둘째,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성령의 내주하심과 관련하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셔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게 하시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며 셋째, 예수님이 행하셨던 병고침과 귀신을 쫒아냄과 같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성령의 특징적인 사역을 훼방하거나 조롱하지 말라(이 말씀을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주심)는 뜻으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성령님의 사역의 목적은 성도의 거룩과 하나님 나라의 임재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골성도님, 실버라인 장로님, 울엄마님,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며 또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이 글이 한 사람에게라도 유익한 것이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평안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얼굴 (2002-12-03 18:37:40)  

시골성도님도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십시오.  



박수하하집사 (2002-12-29 23:26:27)  

뒤 늦게 나마 이 글을 읽고.. 역시 갈말이 성숙한 동네구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첨예한 신학적 주장들 앞에 노출되어 있고 자기 주장을 쉽게 굽힐 수 없는 믿음의 여정에 있기 때문에 이 동네가 자기 주장으로 넘친다면 사실 폐쇄도 멀지 않을 위험을 항상 가가이에 두고 있다고 생각듭니다. 여러 님들의 절제와 현명으로 덕스러운 결말을 보게 해 주시니 독자의 한 사람으로 감사치 않을 수 없읍니다. 특히 실버라인 장로님 갈말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크게 느낄 수 있었고요 . 여러 님들의 큰 믿을 눈으로 본듯이 생생하여 감사했습니다 샬롬~ 아 참 해피 뉴 이얼~  



얼굴 (2003-01-06 17:21:42)  

박수하집사님, 감사합니다. 집사님의 답글을 보고 저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고 싶은 갈말의 사랑하는 지체들이 있는 한 갈말은 영원할 것이라 믿습니다. 벌써 새해 하고도 6일입니다. 올 한해 집사님의 기도제목이 주안에서 결실맺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