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양육(25) 성령충만과 성령세례에 관한 8가지 포인트와 8가지 문답
성령충만과 관련된 주제의 중요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8가지 포인트는 꼭 기억하도록 하십시오.
1.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2. 성령은 믿는 자에게 영원히 남아 있게 됩니다.
3. 성령은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합니다.
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5. 믿는 자의 성령 충만은 거룩한 삶과 효과적인 봉사를 위한 것입니다.
6. 성령이 충만하다는 증거는 매일의 생활 가운데서 성령의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7. 믿는 자가 성령이 충만하면 넘쳐서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가야 합니다.
8. 성령 충만은 회개, 간구, 헌신, 순종,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면 보다 심도 있는 토론을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답을 해 볼까요?
1.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성령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2.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에게 성령이 영원토록 내주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분명히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3.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는 말이 성립됩니까?
말꼬투리를 잡고 굳이 말한다면 구원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받으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이전에 있던 성령을 물리치고
새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라"는 말이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말이라면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사도행전의 여러 말씀을 보면
"믿는다는 것"과 "성령을 받는다"라는 것이 같이 취급되지 않고
구분되어 취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엡 19:2).
4. 그래서, 이제 아쉽지만 첨예한 논쟁거리로 들어가 보도록 합시다.
웨슬리안 알미니안주의 교회들(감리교,성결교,오순절교),
그중에서 특히 오순절 순복음 교회에서는 성령을 받는 것,
혹은 성령이 임하는 것 즉 "성령세례"를 중시합니다.
그리고 오순절교회에서는 성령세례 받은 증거가 필수적으로 방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장로교회와 순복음교회의 대표적인 차이 중의 하나입니다.
과연 "성령세례"가 있습니까? 그리고 "성령세례"는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까?
"성령세례"의 시점은 언제입니까? 구원받은 자도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이 문제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입니다.
장로교단도 성령세례란 용어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순복음 교회에서 말하는 성령세례와는 다릅니다.
간단히 말하면 장로교에서는 성령세례의 순간을 "성도가 믿을 때"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순복음교회에서는 "방언을 할 때"로 규정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 장로교회의 입장에서는
성령세례가 성도의 구원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순복음교회의 입장에서는 성령세례가 구원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에서는 구원받은 자가
또 다시 성령세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내주하는 성령의 활동에 의한 "성령충만"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순복음교회에서는 구원받은 자에게도 성령세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쎄컨드 블레싱(second blessing, 두 번째 축복)"이라는 용어가 중시됩니다.
성령세례가 있어야 능력 있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 의견은 참으로 어느 의견이 옳은지 밝히기 난감합니다.
요한복음에 주로 나타나는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내주"에 관한
원리적 말씀을 토대로 하면 장로교회가 맞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주로 나타나는 "믿는 자에게일지라도 주어지는 성령의 임하심"에 관한
현상적 말씀을 토대로 하면 순복음교회가 맞습니다.
이 두 가지 이론을 명쾌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혼합된 사상을 수용하는 목사님들과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애매한 입장이 오히려 더 진리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관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기에는 인간의 이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를 다 받아들이는 애매한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의 필수적인 증거가
꼭 방언이다라고 말하는 입장에는 조금 의문이 듭니다.
1900년대 초에 미국 성결교단에서 오순절교단이 갈라져 나올 때
"성령세례"의 증거로 방언을 내세우고 그것이 오순절교단의 기본적 사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성령세례"를 인정한다면
그 외적인 증거가 꼭 방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런 의견은 최근에 오순절교단 내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의견입니다.
오순절 교회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신학적으로 "신오순절주의자"라고 합니다.
최근에 한국의 순복음교회도 이런 입장을 많이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한국의 수많은 장로교 목사님들도
이제는 "성령세례" 및 "방언"을 인정하는 분이 많이 있음을 볼 때,
겸손하게 서로의 의견과 신앙을 존중해주는 자세는 참으로 아름답게 보여집니다.
5.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같은 것일까요?
굳이 구분한다면 용어 자체가 다르고 뜻도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란 외부에서 성령이 임하는 것을 말하고,
성령충만이란 내주하는 성령이 한 개인의 영적인 영역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6. 어떤 사람은 성령을 많이 받고 어떤 사람은 성령을 적게 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은 삼위일체의 세 번째 인격이기 때문에
많이 받고 적게 받고 하는 그런 차이는 없습니다.
7 그러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은 무슨 말입니까?
내주하는 성령의 영역이 넓혀지는 과정을 의미하는 말일 것입니다.
8. 성령충만의 확실한 외적인 증거는 무엇일까요?
성령의 열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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