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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아집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예림의집 2009. 7. 15. 18:02

[종교]적 아집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광신은 참으로 두려운 현상 입니다. 사람이 일단 맹목적인 신앙에 빠지면 가족도, 사회도, 친구도, 직업도 소용이 없습니다. 참 신앙의 정신인 사랑, 용서, 섬김, 관용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는 이러한 잘못된 신앙 때문에 극심한 피해를 입은 가족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일단 어떤 사람이 자기는 진리 쪽에 있으며, 자기가 속한 곳만이 바른 진리이며, 자기는 이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다면, 극단에 빠지게 된 그의 마음을 치유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신앙은 참된 진리를 추구하며 사랑과 덕을 발전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길이요 진리 되시는 주님을 알아 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이러니컬 하게도 역사는 기독교를 포함해서 종교의 관용을 별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 전쟁으로 인하여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죽은 사람들의 숫자보다도 많습니다. 이슬람은 칼과 정복 전쟁을 통하여 그들의 종교를 확장시켰습니다. 기독교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몇 백 년 동안의 신. 구교 전쟁으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었고, 1618년에서 148년에 이르는 독일의 30년 전쟁에서도 단순한 교리의 차이 때문에 엄청난 살상이 일어나 독일 인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11세기경에 있었던 4차에 이르는 십자군 전쟁에서는 주님이 이름으로 많은 부녀자들,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과 만행이 있었습니다. 신대륙의 발견 이후 -사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신대륙이지만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힘이 없어서 자기들의 땅을 빼앗기고 쫓겨난 것에 불과 했습니다-백인들은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황금을 캐기 위해 그들을 노예로 끌고 다녔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어떤 마을의 추장이 끝까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그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온 마을의 주민들을 모아 놓고 그를 목매달기 전에 백인들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목 매달리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죽어도 너희들이 전하는 예수를 믿지 않겠다. 너희들이 전하는 예수를 믿으면 죽어서 너희들이 간다는 천국이라는 곳에 간다는데, 나는 국어서도 너희들이 있는 곳에는 살고 싶지 않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모든 백인들이 이런 식으로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아의 교리를 알고 있으나 신앙의 진정인 사랑과 관용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로 인해서, 인류는 너무나도 많은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인 것도 다 종교인들이었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도 그의 제자들을 죽인 사람들도 다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서로 죽이지는 않지만 마음의 살인, 즉 서로 미워하고 용납하지 않는 것은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종교적 아집과 위선적이고 경직된 신앙 체계를 통렬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다가 기성 종교인들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물론 그분은 우리의 죄를 이하여 죽으신 것이지만, 그러한 경로를 통하여 돌아가신 것은 사실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들도 모이면 서로 경쟁하고 싸우고 자기 교회 중심으로 살며 교인 빼앗기 싸움과 건물 짓기, 외적 성공에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요! 우리들은 영혼의 진보와 사랑의 발전이라는 참 믿음의 목표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종교적인 아집에서 벗어나십시오. 내가 반드시 옳다는 착각을 버리십시오. 실제적인 신앙에 눈이 열릴수록, 영혼의 진보가 이루어질수록 우리의 생각은 바뀌어 지며 자유로워집니다. 형식과 아집과 묶임에서 우리들은 점점 벗어나게 되며,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의 감옥, 아집의 감옥에서 풀려나와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용납하고 사랑하며 서로 교통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