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 안에 심으신 작은 씨앗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장애 학생과 다름없었던 나, 우등반과 돌반을 두루 경험하면서 체득한 관계 중심적 가치관, 이런 것들이 나의 교육관을 만들어 갔다. 그것은 장애 학생과 일반 학생의 통합 교육으로 나타났다. 통합 교육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설 면에서도 그렇고 인력 활용 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경제적인 합리성을 포기하기로 했다.
반마다 담임선생님 한 분과 특수 교사 한 분을 함께 세웠다. 특수 교사란 명칭도 없애고 대신 통합 교육 지원실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부른다. 처음 통합 수업을 할 때 지원실 선생님들이 새로운 아이들과 반드시 함께하는 놀이가 있다. 바로 난파선 놀이다. 배가 난파했다. 배가 다 가라앉기까지는 10분밖에는 남지 않았다. 친구들을 두 팀으로 나눈다. 각 팀에는 시각 장애인과 신체 장애인이 한 명씩 있다. 놀이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분주해진다. 과연 누구를 먼저 구출하는 게 좋을까? 어떻게 해야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 누구도 이 게임의 정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누구를 제일 먼저 구해야 할지 알고 있다. “여러분, 잘했어요. 우리는 지금 한 배를 탔고, 앞으로 함께 살아갈 거예요.”
흔히들 일반 학생이 장애 학생을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장애 학생이 일반 학생의 성숙을 돕고 있다. 장애 학생은 어떤 훈계도 없이 그 존재 자체로 아이들을 돕는다. 일반 학생들의 자존을 꺾고, 고집스러움을 꺾는다. 언제나 자신이 아이처럼 되고자 하는 유치함을 버리게 한다. 그 대신 학생들이 얻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통합 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
“이 녀석들이 이 정도는 아닌데, 아주 엉망인데요!” 올 봄에 교생 선생님과 함께 쪽지 시험지를 채점하던 최병준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협동 학습을 하지 않아서 그래요!” 그 다음 시간, 최 선생님은 협동 학습을 직접 보여 주었다. “자, 여기 문제지 하나, 연필 하나 줄 테니까 한 명은 연필로 풀고 다른 한 명은 눈으로 풀어 봐.” 한 아이가 다 풀면 그 다음에는 역할을 바꾸었다. 선생님은 수학 짝을 만들어 주고 자료를 모자라게 준다. 관심과 집중도를 높이는 협동 방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수업 후에 모두 엎드리게 한 다음 물었다. “자기 짝이 이 단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렇게 해서 손을 든 아이는 짝을 데리고 나머지 공부를 한다. 그런 다음 다시 쪽지 시험을 봤다. 최 선생님도, 교생 선생님도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난번에 비해 성적이 월등히 좋아졌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개교 초기부터 케리건 박사의 협동 학습법을 시행해 오고 있다. 자발성과 적극성. 이것이 협동 학습이 갖는 최대 장점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지적 능력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협동 학습을 하는 이유가 학습 효과가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협동 학습 과정 자체가 공동체 교육이기 때문이다. ‘나만 잘하면 된다.’ ‘내가 잘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눌러야 한다.’ 이런 식의 경쟁 관계 대신, ‘함께하기 때문에 더 나은 우리가 된다.’ 아이들은 협동 학습을 통해 공동체를 알아 간다. 공동체가 세워지려면 자신의 희생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인근 중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우리 졸업생들 칭찬을 자주 듣는다. 우리 학교 졸업생들은 뭔가 좀 다르다는 것이다. 의사소통 능력, 문제 해결 능력, 협동심 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참 기쁘고 자랑스럽다. ‘잘 가고 있구나’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하고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한다.
예비 학부모들은 흔히 농담 삼아 우리 학교에 입학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1년 동안 진행되는 입학 준비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입학 허가 조건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교회 출석, 봉사, 부모님 상담 등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 모든 과정을 들을 수도 없다. 특히 3월에 있는 입학설명회에는 아버지가 꼭 참석해야 한다.
엄마가 교육을 맡아서 하면 그 집은 아빠를 빼고 엄마와 아이들만 교육의 주체가 되지만, 아빠가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 가정 전체가 교육이라는 커다란 주제로 하나가 된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이 시스템을 고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버지들이 교육의 주체가 되기는커녕 학교나 학원, 그리고 아내에게 모든 걸 맡겨 버린다. 그리고 아버지는 돈만 벌어다 준다. 그것이 아버지로서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돌려 버린다.
‘어떻게 하면 아빠를 교육 현장에 끌어들일까?’ 이 궁리 끝에 나온 것이 ‘아빠캠프’이다. 아빠캠프가 시작되면 여자들은 출입 금지다. 엄마 없이 아빠와 단둘이 있어 보는 것이 처음이라는 아이도 있었다. 아버지들은 대개 캠프 첫 시간부터 진땀을 뺀다. 친한 친구 이름 알아맞히기 게임 때문이다. 캠프가 진행될수록 아빠들은 깨닫는다. 자식들에게 얼마나 무지하고 무심한 아빠였는지.
아빠캠프의 클라이맥스는 ‘모의장례식’이다. 그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유서를 읽는 시간이 돌아왔다. 중국에서 날아온 아버지 차례가 되었다. 그 유서를 들으며 다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아,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네 모습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단다.
수많은 날들을 하늘을 원망하고,
운명을 저주하며 보냈지.
너를 무척 사랑하면서도
괴로움을 감당할 길이 없어
아빠는 너를 엄마에게 떠맡기고
바쁘다는 핑계로 밖으로만 돌았다.
......
그런데 이제 내 마음은
너와 하나가 된 것 같다.
이전에 소홀했던 아빠를 용서하고
지금의 내 마음만을 기억해 주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너를 얼마나 기뻐하는지......
하나님, 우리 아들보다 하루만,
단 하루만 더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빠캠프는 해가 거듭될수록 잘 익은 과일처럼 무르익었다. 졸업생들이 가장 인상 깊어하는 것도 아빠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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