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현대신학

세계선교에서의 학생들의 영향(1)

예림의집 2008. 11. 8. 23:07

세계선교에서의 학생들의 영향

폴 피어슨(Paul W. Pierson)/ 전 프러신학교 원장

 

기독교 역사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선교운동 중 대부분이 남다른 특징을 지닌 주요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특징은 바로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과 말씀의 깊은 묵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씀은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개인의 삶의 주로 새로 이 인식하게 하였으며, 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더 나아가서는 문화, 인종 및 언어를 초월한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관심을 인정하게 하였다. 그들의 이런 변화로 그들은 그들의 비전과 선교에 대한 관심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기 시작했고, 줄곧 막강한 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한 주요 지도자 중 많은 수가 학생이었다. 이런 학생들의 영향으로 많은 학생들이 지구 곳곳마다 복음을 전달하도록 동원되었던 것이다. 일부는 직접적인 전도와 교회 개척을 통하여 사역하였고, 일부는 의료사업, 문학 및 교육을 통하여 사역하였다.

 

최초의 학생선교운동은 초기의 대학에서부터 일어났다. 13세기 중세 교회의 갱신운동은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고회로 하여금 당 세기 말까지 중앙아시아로부터 중국에 이르기까지 선교기지를 설립하게 하였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로, 로마 카톨릭 전승에 의하면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1534년에 파리 대학에서 예수회를 결성한 바 있다. 그의 동역자 중 한명인 프란시스 자비에르는 다른 학생들에게 "당신들의 작은 야망을 버리고 나와 함께 아시아로 가자"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직접 인도와 말라카 그리고 일본에 가서 로마카톨릭 교회를 세웠으며, 중국으로 갈 길을 모색하다 세상을 떠났다. 탁월한 복음주의 신학자인 허버트 케인은 말하기를 자비에르는 우리와 신학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들 중 하나였다고 하였다. 이런 그도 파리의 학생운동으로부터 나왔던 것이다. 개신교도의 종교개혁은 때때로 아무런 타문화적 선교 비전을 갖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부당한 비판이다. 루터의 비텐베르크 대학 제자들에 의해 루터파 종교개혁이 덴마크, 스웨덴, 및 핀란드 등의 타문화권으로 옮겨갈 때에 루터는 그의 제자 중 몇몇을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도 파송했다. 그들은 또한 이 나라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데에도 앞장 섰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무려 100명 이상의 목사를 훈련하여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 그리고 헝가리에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순교했지만 폴란드를 제외한 모두에 개혁교회를 남겼던 것이다.

 

17세기 존 에리옷은 캠브리지 대학 청교도회의 목사로서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록스베리로 갔다. 그뿐 아니라 그는 알콘퀸족 언어를 배워 수백 명을 전도했으며 최초로 아메리카 원주님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그러나 개신교 신교운동이 실제로 시작된 것은 1706년 독일의 할레 대학에서엿다. 그곳은 독일 루터교의 갱신운동인 경건주의의 중심지가 되었다. 경건주의 운동은 처음엔 필립 스페너에 의해, 그 다음엔 대학교수 및 교회목사로 활동했던 어거스트 프랑케에 의해 인도되었다. 덴마크 왕은 식민지였던 인도 트랑크바르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는 궁정 목사의 말에 설득되었다. 왕은 할레 대학에 자원자를 요청했고, 두 명의 청년 바르돌로뮤 진젠발크와 하인리히 플루툿는 아시아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1706년에 인도로 출발했다. 진젤발크는 1714년에 잠깐 돌아와 '겨자씨모임' 이라 불리우는 최초의 개신교 학생선교회의 형성에 개기를 마련했다. 회장은 니콜라스 루드비히 진젠도르프라는 청년이었다. 몇년 후 모라비안회라는 특이한 기독 공동체의 지도자가 된 진젠도르프는 카리브해 지역의 성 도마로 두 선교사를 처음 파송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그 뒤를 이어 단지 몇 백 명밖에 되지 않던 그 공동체에서 28년 동안 28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였던 것이다. 모라비안들은 이후의 많은 개신교 선교운동에 촉매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웨슬리 형제로 하여금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바로 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이 옥스포드 대학의 열정적인 영국 국교회 청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었고, 그들을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영국의 많은 무리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