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는 교사
중국 청나라 말기에 ‘장센’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노름꾼에다가 호색한이었다. 그런 그가 중년이 되자 시력이 점점 나빠지더니 거의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날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찾아간 장센은 극적으로 시력의 일부를 회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복음을 들은 장센은 이제 자신도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하며 세례를 요청했다. 그러나 J. 웹스터 선교사는 “돌아가서 이웃들에게 당신이 변화되었다고 말하시오. 얼마 후 우리가 방문할 그때까지 당신이 주님을 따르고 있다면 기꺼이 세례를 주겠소”라고 말했다.
다섯 달 후, 그 마을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수백 명의 새로운 신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장센은 욕을 먹고 침 뱉음을 당하면서도 계속 복음을 전했다. 어느 날 의화단원들이 약 50명의 성도들을 붙잡아 처형하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들을 죽여 봐야 소용없어요. 장센이 살아 있는 한 그리스도인은 자꾸 생겨나니까요.” 의화단원들은 장센을 데려오면 50명을 살려 주겠다고 했다. 장센은 자신을 위해 대신 죽으셨던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진 출두했다. 지방 관원들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장센은 자신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며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한다고 대답하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했다.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지만 영혼의 눈으로 거룩하고 영원한 것을 보며 결국 장센은 기꺼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교회에서 청소년들이 점점 등을 돌리고 있다. 새롭고 재미있는 프로그램과 편리하고 체계적인 시설 등 많은 대안들을 이야기 하지만 가장 가까운 대안은 교사의 역할이다. 교사가 변하면 학생이 변하고 교회학교가 변하게 된다. 그러기에 교사에게 초점을 맞출 때에 우리는 질문을 해야하고 답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왜 교회교육을 해야하는가?
세계적인 아티스트인 백남준씨가 한 말이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왜 꼭 그 시간에, 그 주제여야 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즉 철학이 있어야 화가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철학이 있는 사람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정신활동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그 이유를 분명히 알면 목숨을 건다.“ 그리고 사람이 목숨을 걸 수 있다면 그 일에 대해서는 대단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목숨을 다 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신념이다.
신념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힘이며 결단을 내려야 할 때 훌륭한 지침이 되어 인생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신념을 우리는 철학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늘 확신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 것이니라”(요 5:34).
강한 신념은 먼저 삶에서 의심을 몰아낸다. 지도자는 두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6-8).
강한 신념은 또한 행동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신념을 갖는 것은 그 일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가능성에 대해 자신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 일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노력을 하게 된다.
강한 신념은 역시 철저히 헌신하게 한다. 예수님은 생사를 하나님의 뜻에 맡기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 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 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왜 우리는 교사이며 교육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확고한 답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하는 일에 목숨을 걸 수 있으며 교사가 교육에 목숨을 건다면 성공하는 교사가 될 수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복음으로만 아니라 목숨 주기를 즐겨“(살전 2:7)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먼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한다. 마 28:19-20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족속을 .....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나에게 맡겨진 영혼이라면 제자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진리를 가르쳐 실천할 때까지 가르쳐야 한다. 이 일이 끝나기 전까지 우리는 달려갈 길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이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사는가? 그저 되는대로 사는 허무주의나 쾌락주의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고 비록 감동적이기는 하나 개인의 가능성을 구현하는 자기완성주의도 아니다. 내가 잘 되면 남들이 배가 아프다. 나의 성공은 남의 실패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성공의 결과를 남과 나누는 사랑이라면 나와 주변의 우리 모두가 행복해진다. 사랑이 인생의 가장 귀한 가치이다.
그러나 이 사랑 중에서도 단계가 있다. 나의 가진 것을 적당히 나누어 주는 일, 함께 있어주고 물질을 나누어주는 것도 좋지만 나의 모든 것을 다 유산으로 주는 자녀사랑이 더 크다. 그리고 이보다 더 강력한 사랑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상대방을 나의 수준으로 훈련시키는 것이다. 생선을 달라고 하는 자녀에게 뱀을 주는 부모가 없고 대부분의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생선을 주지만 현명한 부모는 나중에 내가 줄 수 없게 될 때를 대비해서 자녀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서 언제나 생선을 먹을 수 있게 해준다.
셋째, 교육의 댓가가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살전 2:19-20절에 “주님이 오실 그 날 내가 받을 면류관이 무엇이냐 바로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나의 자랑이며 너희는 나의 기쁨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전에 자기를 핍박했던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 교회 성도들이 이제는 ‘내 자랑이다 내 기쁨이다‘라고 말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자를 키워본 사람이면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제자들을 생각하며 한번 교사는 영원한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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