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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신약개론

예림의집 2008. 10. 25. 23:16

신약개론

 

기독교 경전에서 신약과 구약의 관계는 매우 독특하다. 힌두교 경전에는 고대의 다양한 전승들이 아무런 구별 없이 수록되어 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예수(이사)를 포함하여,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회교도들은 성경을 거룩한 책으로 여기기는 하지만, 현재 형태의 성경에 어떠한 권위도 부여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신약과 구약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다양하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보편적인 입장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성경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역사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이전에 행하신 일과 분리될 수 없다. 그렇기에 신약은 구약의 인용으로 가득 차 있고 또 구약을 근거로 쓴 것으로 보이는 구절로 가득 차 있다.
다른 한편,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초기 기독교 교회의 삶을 기록한 책들이 구약보다 더 높은 권위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예수에 의해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새롭게 이루어진 언약(또는 계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전에 맺은 언약을 "옛" 것으로 만든다(히 9:11-15).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구약을 뜻했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을 그리스도에 비추어 연구하고 이해하였다(행 17:11; 눅 24:44-45). 그들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할 때 구약의 언어를 빌려 썼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최고 정점을 이룬 하나님의 목적을 구약에서 추적하였다.
구약과 신약의 비교
구약과 신약이 기독교 경전에서는 한 권으로 묶여 있으나, 사실 서로 굉장히 다른 책이다. 구약은 히브리어(아람어로 쓰인 부분도 있으나 얼마 되지 않는다)로 기록되어 있고, 신약은 다양한 문체의 그리스어로 쓰여 있는데 신약의 그리스어는 그 당시 일반 사람들이 쓰던 평민적인 그리스어였다. 그렇지만 70인역본에서 쓰여진 그리스어가 사용된 흔적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구약의 여러 부분들은 최소한 천 년 이상을 걸치면서 기록되었다. 그러나 신약은 단기간에 기록되었다. 신약이 기록된 과정은 시간적으로 볼 때 「데살로니가전서」가 쓰여진 주후 50여년 경에 시작해서 70여년 정도가 걸렸다. 예수가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사상과 행동이 놀라울 정도로 빨리 발전하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신약에서 추적해 볼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이 기록된 시간은 양적으로 서로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약에서 구약과 같은 다양한 문헌을 기대할 수도, 찾아볼 수도 없다. 신약에는 시로 된 구절이 드물다. 그 중 몇 개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찬양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구약의 시편이나 예언서에 나오는 시와 같은 부분은 전혀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약의 복음서와 같은 것을 구약이나 다른 고대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신약의 본문은 구약의 본문 상태와는 다르게 우리에게 전승되었다. 달리 말해, 구약의 본문은 정형화된(표준화된)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 전달 과정은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들의 주된 관심은 자신들이 전승받은 본문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승받은 본문이 이미 이해할 수 없게 되었거나, 본문 가운데 탈락된 곳이 있더라도 그대로 보존하였던 것이다. 신약은, 또는 그 가운데 일부가, 다양한 시대와 질(質)로 이루어진 약 4천여 개의 필사본으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 가운데 약 2백여 개의 필사본은 대체로 완벽하다. 가장 오래된 신약 필사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작성되었고, 전문적인 필사가들이 작성한 경우는 드물다. 이 필사본들을 다른 필사본들과 세심하게 비교해 봄으로써 원문에 매우 근접하게 접근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학자들은 가장 오래된 필사본들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아울러 다른 본문 전승들 간에 일치되는 본문 형태에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필사본의 수는 필사본의 나이와 질보다 덜 중요하다.
신약의 세계
신약이 쓰여진 기간은 로마 제국이 지배하던 때였다. 로마제국은 주전 63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 로마는 때로 권한을 해당 지역의 지배자들에게 위임하였는데, 특별히 헤롯 왕가에 위임한 것은 주목받을 만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팔레스틴에서는 로마 관리가 다스렸다. 본디오 빌라도(유대 총독 주후 26-36년), 벨릭스(총독 주후 52-60년; 행 23:23-24:27을 보라) 그리고 그의 후계자 베스도(행 25-26장) 등이 로마가 파송한 관리였다.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 사이의 긴장이 헤롯 왕가와 로마 관리들의 잔학성으로 증폭되었다. 그리고 유대인의 전통과 신앙을 이교국인 로마가 제대로 이해하거나 존중하지 못함으로 인해서도 갈등은 증폭되었다. 열심당과 같은 저항운동이 활동을 강화하였고, 마침내 주후 66년에 반란이 일어났고, 주후 70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주후 70년에 로마군인들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함으로써 반란은 평정되었다. 이와 같은 파국은 유대교에 전환점이 되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을 떠나 디아스포라에 합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유대교의 중심이 성전에서 회당으로 바뀌었고, 그와 동시에 유대인들은 이제 경전의 백성이 되었다(히브리어 성경이 정경으로 최종 확정된 것은 주후 1세기 말 경이었다). 신약의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환난의 때에 기독교에 대한 주요 위협이 로마보다는 유대교로부터 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행 8:1-2를 보면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을 이곳 저곳으로 흩어버린 핍박이 로마인들보다는 유대교인들에게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누가와 바울은 기독교를, 공감을 나타내는 로마인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애쓴다(「요한계시록」의 저자와는 반대되는 경우이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에게 있어서 로마는, 당시 유대교 저술가들의 글에도 나타나 있듯이, 악의 화신이었다). 로마 관리들이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한 때는 신약이 쓰여지던 끝 무렵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인들과는 달리 "합법화된 종교"에 부여되는 로마법의 특별한 지위를 누리지 못하였다. 신약 가운데 일부, 특별히 「요한복음」은 반 셈족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신약이 마무리되기 오래 전에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분열이 완전히 이루어졌고, 그 분열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신약은 대체로 기독교 유대인들에 의해 쓰여졌다. 이들은 예수를 거부한 유대인들을 자연히 "그들"로 생각했고 자신들을 "우리"로 불렀다. 물론 예수와 그의 첫 제자들이 유대인들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셈족에 대한 핍박이 끝날 무렵, 신약 시대에는 기독교인들이 희생자가 되었고 따라서 그들은 엄청난 시련에 맞서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했다.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서로 긴밀하게 단결하였고, 그리스도를 더욱 굳건히 붙들게 되었다.
정경이 된 신약
신약의 책들이 쓰여진 기간은 비교적 짧다. 그러나 신약이 정경으로서, 즉 참된 기독교를 가늠할 수 있는 규범이나 규칙을 제공하는 정경으로서 인정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정경화의 과정은 바울 서신의 수집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바울 서신 가운데 몇 개는 한 교회 이상에서 읽혀지고 있었다(골 4:16; 살전 5:27; 「에베소서」에 대한 개론도 보라). 공관복음서, 「요한복음」, 「사도행전」 그리고 다른 서신들과 「요한계시록」이 지중해 지역의 동쪽과 서쪽에 있던 교회들로부터 점차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주후 4세기 후반에 신약이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이 오랜 동안 기독교 교회는 안과 밖의 압력에 시달렸다. 로마 당국이, 예수를 주로 믿는 기독교인들은 황제에게 충성할 수 없다며, 교회를 핍박하였다. 다른 한편 수많은 글들이 유포되고 있었는데 저마다 예수와 기독교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따라서 어느 것이 권위가 있는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했다. 예를 들어 사도가 저자인 것, 기독교 교회 안에서 널리 인정된 것 등이 고려 대상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공통된 믿음을 가장 잘 대표하고 그 믿음을 가장 잘 양육해 주었다고 여겨지는 저작들과 성령의 권위로 자신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저작들을 엄선하였다.
신약의 구분
신약 안에서는 사복음서가 으뜸을 차지한다. 물론 사복음서가 신약에서 가장 오래된 저작은 아니다. 그러나 사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죽음 그리고 부활에서 비롯된 기독교의 기원을 증언하고 있다(복음서 개론은 공관복음서 사이의 관계를 논하며, 「요한복음」에 대한 개론은 요한복음의 특수한 성격을 기술한다).
누가의 두 번째 저작인 「사도행전」은 예수의 승천으로부터 바울의 로마 도착까지의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부터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는 교회로 발전해 간 단계들을 기술한다. 이 놀라운 변화와 그로 인해 발생된 긴장은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 그리고 다른 서신에서 중요한 주제이다(특히 롬 9:1-5를 보라). 이 서신들은 신약에서 가장 일찍 쓰여진 것들(「데살로니가전서」)과 가장 나중에 쓰여진 것들(「베드로후서」)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것들은 몇 명의 다른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다. 세 권의 책은 특별한 경우이다. 「요한1서」는 편지 형식을 취하지 않고, 「야고보서」는 다른 편지처럼 끝나지 않으며 「히브리서」는 편지에 보통 들어 있는 인사말이 빠져 있다.
구약에서 「에스겔」, 「스가랴」, 「다니엘」로 대표되는 묵시문학 전통이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전개된다. 그것은 기독교가 우주적인 전쟁 한가운데 참여하고 있음을 묘사한다. 이 전쟁의 끝에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은 승리하며 악은 파멸되고,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된다.
이런 다양한 신약 책들이 쓰여진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간략히 말해 본다면, 이런 책들이 쓰여진 목적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서이며,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기독교인들 사이의 불협화음을 해결하고, 기독교를 이웃에게 전하며, 예수와 기독교에 대해 잘못되거나 옳지 않은 생각들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신약의 책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이 목적을 완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