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현대신학

선교동원가-누가 되어야 하는가?

예림의집 2008. 10. 19. 17:30

선교의 절박성과 우선순위를 알고 남은 과업의 완수를 위해 헌신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원가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 이미 지적한대로 그들은 선교적 과업을 모두 도맡는 자들이라기보다는 잠자는 이들을 깨워 일을 분담시키고 함께 짊어지는 사람들이다. 그 일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만한 이상적인 선교도원가의 자질을 살펴보자

● 비전과 추진력: 선교적 비전과 사명감이 충일하고 도처에 산재한 선교적 잠재력을 구채적인 동력으로 바꿀만한 추진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 선교적 전문성: 남은 과업의 규모와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그 일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전략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자원과 정보의 통로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 의사 전달 능력: 개인이나 대중에게 자신의 의사를 명쾌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 대인관계 능력: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양한 대상들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선교 관심자들 및 헌신자들을 효과적으로 상담하고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 현장 경험: 장기간, 혹은 단기간 긍정적이고 성공적인 선교ㄴ현장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관심자들이 선교에 구체적으로 헌신하는 과정에서 현장 경험을 가진 지도자들이 결정적인 역활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장의 선교사들도 선교운동가가 되어야 마땅하다. 윈터의 말대로 모두들 선교사역을 그만두고 돌아와 동원사역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야한다는 뜻으로 말했다기보다는 동원사역의 시급성, 우선성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귀국하지 않더라도 선교사는 국내의 유능한 선교적 인력을 선교현자으로 빨아들이는 흡인력을 발휘해야 한다. 마치 자신이 앞장서 선교지(인도)로 떠난 후 수많은 본국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도전하고 자극하여 위대한 선교의 세기(19세기)를 열었던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 처럼, 중국내지선교회(CIM)를 설립해 중국선교에 목숨을 바치기로 각오한 수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던 '내지선교시대'의 개척자 허드슨 테일러처 럼 그리고 아직도 자기네 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영적인 흑암 중에 헤매는 3천 부족, 3억 영혼들을 함께 끌어안을 동역자들을 오대양 육대주에서 불러들여 미전도종족 선교시대의 새 장을 연 타운센트 처럼 선교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정 사역에만 집착하는 근시안적 사역자세를 버리고 본국의 동역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 동력화 하는 책임까지도 감당해야 한다. 특히 현장의 선교사는 피선교지의 교회들을 선교적으로 동력화 하는 역활을 담당해야 한다.

 

이후 남가주 파다디나에서 열린 복음주의선교학회(EMS) 서부지역 모임에서 다시 만난 원터 박사는, 선교사를 통해 교회와 선교사들이 범한 가장 큰 잘못이 선교지에 교회는 심었지만(church planting) 선교를 심는 일(mission planting)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선교 초기부터 현지 교회를 세계선교의 동역자로 가르치고 세워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피선교지 교회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교회로만 머물게 해서는 안되고 받는 즉시 복음의 빚을 갚는 교회로 변신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한국 교회가 선교적 사명의 본격적으로 감당하게 된 것도 복음을 받은지 백년이나 지난 후였으니 출발이 너무 늦은 셈이었다. 오히려 초기에는 제주도와 만주, 일본, 소련 등지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엿으나. 일제의 탄압에 꺽이고 타협하면서 복음의 선명성을 상실한 결과 선교의 새싹이 제대로 결실해 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렸고, 해방과 분단과 군사독재의 격동기 속에서 양적으로는 그런대로 성장했으나 선교적인 시각은 철저히 상실한 채 너무 오랜 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뒤늦게나마 선교의 세로운 장이 열리게 된 게 퍽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지만, 성장의 전성기에 선교동원이 병행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겟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교지로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전임 사역자도 평신도도 모두 선교동원가가 되어야 한다. 세계선교의 영광스런 사명을 부여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을 선교의 일꾼으로 드리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내 몫을 마땅히 감당할 뿐 아니라 잠자고 있는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을 깨워 함께 그 일을 나눠 지도록 하는 촉매 역활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세계복음화의 비결이요, 전략이라고 믿는다. 선교사 바울은 그의 제자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바울, 바나바와 같은 영적인 거물들이 세계선교를 모두 도맡는다는 구도가 아니라, 바울이 디모데를 제자화 해서 동원하면,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들을 동원하고, 다시 충성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동원한다는 연쇄반응적 전략개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