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예림의집으로ε♡з/행복한 가정

[아이에게] 아가야..엄마가 지켜줄께

예림의집 2008. 10. 16. 07:23

얼마전 25개월된 딸아이한테 봄에 신겼던 운동화를 신기려고보니 작아서 안들어가더군요
'세진아..발 아퍼?'하고 물으니 '응, 아퍼. 안신어'하고 휙 벗어버리더군요
그 모습이 어찌나 단호하던지..잠깐 웃음이 나오더군요
엊그제 새운동화를 사서 신겨주니 그 어린녀석도 새것이 좋은건 아는지 거실을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더군요

그리고 어제, 출근해서 "얘들아, 신발이 작아서 발 아프다는데 신발 못사줘서 미안해'라고 유서를 쓰고 자살한 엄마의 기사를 봤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같은 엄마 입장에서 마음이 정말로 아팠습니다.

저에게는 6살 터울의 친언니가 있습니다
97년 IMF가 터질 당시 조카들은 6살,4살이었고 형부는 은행(투자신탁)에 다니고 있었고 30대 초반의 부부였지만 이미 내집마련해서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차도 중형차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6살 조카딸 방에는 침대,옷장,책상이 셋트로 꾸며져 있었고, 참 유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형부가 아버지처럼 의지하는 외삼촌이 계셨는데 그분 사업하는데 보증을 서줬던게 IMF가 터지면서 부도가나면서부터 저의 언니의 불행이 시작됐지요
참..끝이 없어 보이더군요
여기 막으면 저기서..저기 막으면 또 딴데서..
업친데 덮친격으로, 형부가 투자신탁에 다니다보니 자의반타의반 어쩔수없이 주식을 하던게 있었는데 IMF때문에 그게 다 휴지조각이 돼버리고..
또 형부 회사에도 구조조정에 인원감축의 바람이 불었는데..월급차압이 들어가 있는 형부가 정리해고 1순위인건 당연한 수순이었죠
실직에..끝없이 이어지는 빚독촉
양쪽집에서 힘 닿는데까지 도왔지만 결국 막을 수 없었죠
저의 엄마..집만은 건지게하고 싶어서..저의 아빠를 조르고졸라 막았지만..결국은 집까지 팔게되고..당장 갈데가 없어..아빠가 조그만 빌라를 얻어주었죠
집이 작으니 가재도구 들여놓은데가 없어서..꼭 필요한거 빼고 다 버렸습니다.
살림해본 분들은 아실 거에요..자기가 쓰던 살림살이를 다 버려야하는 맘이 어떨지..
그게 벌써 11년전 일이네요
작년 봄에..10년만에 언니가 다시 아파트로(물론 전세로) 이사를 갔습니다.
16살 된 조카딸래미가 친구들 집들이를 5번을 했답니다..얼마나 좋았으면..
6살때 지 침대,옷장,책상을 다 버릴때는 슬픈지도 몰랐겠지만 지금은 뭐가 좋은지 아는 나이인 16살이 되었으니까요

저의 언니..(이렇게 되짚어보니..또 눈물나네요) 참 숫기없고 착해빠진 순둥이..
폭풍이 몰아치듯 그 모든일이 휘몰아쳐올때..그 순해빠진 언니가 직업소개소를 찾아가 3만원을 주고 소개받아..파출부일을 시작했습니다
아침7시부터 오후 3시까지 파출부일을 하고,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식당주방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아는 김밥공장에서 연락이 오면, 식당일 끝나고가서 새벽까지 일을 하고 왔습니다
엄마가 같이 목욕갔다오셔서..엉엉 우셨었죠
등을 밀어주는데 살은 없고 뼈만 앙상하더라고...

엄마가 언니한테..이렇게 살거면 차라리 이혼하라고..했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순한 저의 언니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엄마를 흘겨보며..애들 기죽으라고 왜 그런소리 하냐고..화를 내더랍니다.

한겨울에 언니네집에 가면 입에서 김이 하얗게 나옵니다..보일러를 안 틀고 살았거든요
이불이나 요를 켜켜이 쌓아서 바닥의 냉기만 면한체..어린 조카들의 입과 코에선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걸 보는 이모의 마음도 찢어질것 같은데 저의 언니는 어떠했겠습니까
한번은 겨울에 조카들이랑 언니를 데리고 외식을 하러 갔었습니다.
근데 조카들 뺨이 너무 빨간거에요
그래서..덥냐고..물어보니까..언니 하는 말이..
하도 추운데서 살아서 볼이 얼어서 그래..따뜻한데 들어오면 볼이 저렇게 돼..하더군요
밥 먹다가 목이 메이고..눈물이 나는걸..정말 겨우 참았습니다

그렇게 살았어요
끝이 없을것 같았지만 끝은 있더군요
10년...참 긴 시간 아닌가요?
그 철없던 애기들이 자라서 고등학생,중학생이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저의 언니는 그럽니다..그래도 애들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때 겪어서 다행이라고 지금 그 일 겪으면 알거모를거 다 아는 저것들이 얼마나 방황하겠냐고..저의 언니 참 긍정적이죠?

네..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이게 이렇게 주절주절 써내려간 제가 하고싶은 말입니다
너무 힘들었겠지만..엄마니까..엄마니까...살아야죠
살아서 아기들을 지켜줘야죠.

최진실씨..또 그 애기들 엄마..
그래서 주변에 애기엄마들 다들 우울하답니다

오늘도 저는 저의 딸래미 노는걸 보며 속으로 되뇌입니다.
아가야..엄마가 지켜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