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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종교와 기독교 선교 현황

예림의집 2008. 9. 22. 07:49

몽골의 종교와 기독교 선교 현황

 

샤머니즘

  몽골은 한국과 유사한 샤머니즘의 토착적 무속 신앙을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 몽골의 샤먼들은 하늘을 최고의 신으로 삼고 인격이나 신격화된 자연계의 모든 신령들을 그 주위에 배치하여 숭배하며 주술을 외운다. 하늘 다음으로는 땅과 달과 별도 숭배하며, 몽골의 산 봉우리마다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같이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어버’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민속 신앙이 산악 신앙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불은 부정의 제거와 가계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믿고 숭배하고 있으며, 조상의 영혼도 자신이나 씨족을 지켜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하여 경배하고 있다.

  샤머니즘은 몽골의 역사 초기부터 16세기 까지 대표적인 종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였으나 몽골 제국의 확장에 따른 고등종교의 전래로 그 명맥만 유지하는 모습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머니즘은 오늘날까지도 몽골인의 심성 깊숙이 자리잡고 있고, 그 영향력도 지속되고 있다. 어느 곳이든 흔히 볼 수 있는 ‘어버’라 불리는 성황당이나, 무당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10)

 

라마불교

  몽골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1570년대이다. 몽골에 전해진 불교는 티베트에서 전래된 라마불교였다. 라마불교는 불교의 여러 종파 중에서 주로 산악과 고원지대, 유목민족들에게 강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 라마불교가 몽골에 유입된 것은 1230년대 오고타이 때였다. 그후 쿠빌라이가 1253년 티벳을 점령했을 때, 당시 라마 불교의 동자승인 파스파를 초청하였고 그가 쿠빌라이의 존경을 얻어 라마 불교는 왕실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파스파는 티벳어를 기준으로 하여 몽골 문자의 기원이 되는 파스파 문자를 제정하기도 했다.

  일찍이 라마 불교가 전래되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라마불교가 몽골에 번성하게 된 것은 16세기 후반부터였다. 1578년 군대 장관이던 알탄 칸이 티벳 불교의 황색 종파와 수뇌 회의를 갖고서 라마불교는 자신의 제위의 자격에 대한 승인을 요청하고, 그 대신 라마불교에게는 국가적 보호와 후원을 제공하겠다는 협상을 체결하였다. 알탄은 티벳 불교 지도자에게 ‘달라이 라마(바다의 스승)’ 이라는 칭호를 주게 되는데 이 호칭이 아직도 계승되고 있다. 이 후 라마 불교는 몽골의 전 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티벳 불교는 교리와 경전 연구를 중요시하는 불교의 마하야나와 탄트릭 파의 요소와 더불어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 쫓는 정통 티벳의 의식과 결합된 것인데, 개인을 고통과 환생의 싸이클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몽골의 불교는 티벳의 라마불교에 몽골의 전통 무속 신앙이 결합되어 발전한 것이다.

  라마교는 이후 오랜 시간동안 몽골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몽골인의 정신 세계와, 문화는 물론, 실제 정치에 있어서도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라마불교는 여러 가지 폐혜도 가져왔는데, 사람들의 라마승에 대한 지나친 존경으로 인해 한 때, 남자 인구의 40%가 라마승이었고 이로 인해 급격한 인구 감소가 초래되기도 했다. 또한 정권과 밀착되어 정권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고, 종교적 타락도 심각하였다. 중국 한족이 거친 몽골족을 순화시키고 자신들을 침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라마불교의 이식에 적극적이었고, 라마승이 되는 것을 장려해 몽골족의 인구가 억제되기를 바랬다.

  오랜 세월동안 번영을 누리던 라마 불교는 사회주의 문화 혁명이 있던 1930년대 들어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공산 정권에 의해 국가 부의 20% 가량을 보유하고 있던 583개의 수도원과 사찰이 폐쇄되었고, 승려들이 구속되거나, 일반 평민으로 바뀌었다.

  비록 라마불교는 억압을 받았지만 일반 대중들의 삶 속에서 그 명맥은 계속 유지 되어, 각 가정마다 불상과 달라이라마의 사진이 걸려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공산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자유화 되면서 곧바로 라마불교는 큰 힘을 얻기 시작했다. 혁명후 단 1개소만 남기고 모두 폐쇄되었던 라마 사찰이 불과 4-5년만에 250개소가 복구되었고, 불교 학교가 설립되었다. 새 정부는 라마불교를 공공연히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 국비와 일반인의 성금을 모아 높이 26m 높이의 거대한 금동 불상을 제조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해체 이후에 빚어진 국가적 위기를 종교적으로 통합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잘 부합되는 모습이다.11)   


기독교 선교 약사

  몽골에 최초로 복음이 전해진 것은 7세기경 네스토리안들에 의해 경교가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확실한 근거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별다른 선교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12세기경 고비사막의 북쪽에 살던 몽골족 케라이트에 기독교인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징기스칸 자신은 기독교에 대해서 무관심했으나 종교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12) 몽골족은 자신들의 세계 정복의 장애로 모슬렘 세력을 꼽았고, 이에 카톨릭과 연합하고자 했다. 그러나 별 성과는 보지 못하였다. 

  징기스칸의 며느리가 기독교인이었고, 그녀에게서 쿠빌라이 칸이 태어났다. 따라서 쿠빌라이칸은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그는 원나라를 통치함에 있어서 정신적인 통일을 원했고, 세계 고등 종교 중 기독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는 것을 선호했었다. 그래서 당시 로마 교황청에 선교사 100명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유럽은 당시 100년 전쟁등의 복잡한 정세로 선교사를 보내지 못하였다. 그 대신 불교가 통치 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305년까지 로마 카톨릭이 한때 6,000명의 개종자를 얻었다는 보고가 있고, 이를 들은 교황은 1308년 극동 라틴 교회의 감독으로 취임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1335년 무렵 프란체스코의 선교회에서는 몽골의 복식과 유목민들의 마차 위에 휴대용 제단과 제기를 싣고 몽골족의 이동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수도회’를 결성해 활동했다는 보고가 있다.13)

  이 후, 원나라가 몰락하면서 기독교 선교는 막히게 되었다.


근 현대 기독교 선교 현황

  근대 선교는 1817년 스웨덴 선교사 코르넬리우스 람과 영국 선교사 부부 스타리브라스가 효시를 이루었다. 초기의 가장 대표적인 선교사는 런던 선교회 소속인 제임스 길모어(James Gilmour)로 그는 1870년 몽골에 도착하여 12년간 몽골 유목민을 대상으로 선교하였다. 그는 자신의 활동 결과를 평가하면서 서구 선교사보다 중국인 선교사가 실제적인 선교 사역을 감당하면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수명의 중국인 선교사를 훈련시켰고, 이들은 효과적인 선교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1900년경 위화단 사건때문에 선교사들에 대한 참혹한 박해가 일어나 선교활동은 일시 중단되었다.

1815년 슈미트 박사가 칼무크 방언으로 성경의 일부를 번역한 것을 시작으로 성경 번역이 시작되었다. 그 후 브리야트 방언으로 성경 전체가 번역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성경 번역 사업이 진행되었다.

1919년경 다시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으나 곧이어 1924년 사회주의 국가 설립으로 인해 모든 선교 활동이 중단되었다. 사회주의 정책 아래에서는 기독교 분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가 박해를 받았는데, 기독교의 경우에는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명목으로 더욱 극심한 탄압이 이루어졌다.14)

1989년까지 단 한명의 기독교인도 없었고15), 선교 활동도 전혀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몽골 정부가 1989년 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자본주의 국가의 외국인이 공식적으로 입국하게 되었고, 선교 활동이 재개되었다.

  2000년 4월 말 현재 몽골에는 전체 132개 교회에 12,373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조사의 결과는 1988년 5월의 몽골 선교 현황 자료집 발간시 조사된 숫자보다 교회 수로는 53개가 증가한 것이며, 성도의 숫자는 4,933 명 증가한 것이다. 1998년이나 2000년의 조사의 오차를 고려하더라도 지난 2년간 몽골의 교회는 교회의 숫자나 교인의 증가율 면에 있어서 60% 정도 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16)


표 2)  몽골의 인구와 기독교인 비율

몽골의 전체 인구 수

기독교인 숫자

전 인구 중

기독교인 비율

1998

2000

1998

2000

1998

2000

2,387,000명

2,420,500명

7,440명

12,373명

0.305%

0.512%


조사에 근거한다면 교회 숫자는 1998년 5월보다 59.5%인 54개 교회가 증가하였으며, 성도의 숫자는 1998년보다 60%인 4,933 명이 증가하였다. 또 몽골 전국민중 기독교인의 비율은 지난 1998년의 0.305% 보다 0.206% 늘어난 몽골 전 국민 중 0.512%가 기독교인으로, 몽골 전 인구 중 200명 당 한명의 기독교인이 있는 셈이다.



  현재 몽골의 교회와 교인의 숫자는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10여년간의 몽골 선교는 몽골 기독교 선교 역사에 있어 획기적 사건이 될 만큼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선교사들은 교단과 사역의 내용을 초월해서, 여러 선교사들이 좋은 연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몽골은 법적으로 선교활동이나 선교사의 입국이 금지된 ‘창의적 접근지역’ 이면서도, 한편으론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다른 창의적 접근 지역보다 덜하며 복음에 대한 반응도 매우 좋은 추수지역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곳에 이제 보다 더 다양한 사역이 요구되어지며, 현지인에게 리더십을 이양하고, 몽골의 지방 도시와 시골로 복음을 확대해야 하는 과제를 또한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