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카사스(Las Casas)
15세기 말에 시작된 새로운 대륙의 발견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 새로운 선교비전을 심어주었다. 신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며, 교황이나 세속 통치자들은 이 지역을 카톨릭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였다. 스페인에서 개신교도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무참히 학살했던 이사벨라 여왕은, 신부들과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에게 맨 먼저 신대륙에 정착할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수도사들의 적극적인 수용으로 신대륙에서 카톨릭은 영구적이고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자리 잡았고 현지인들의 개종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신대륙 선교의 최대의 적은 식민주의였다. 식민지의 관리들은 토착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들은 짐승처럼 혹사당했고 제도적으로 노예화되어 갔다. 이런 착취와 만행에 대해 선교사들 중에는 비판의 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라스 카사스 선교사였다. 그는 아메리카 인디오들의 위대한 지도자로 식민주의와 맞서 싸웠다. 그는 당시에는 드물게 선교의 정신과 인간 존중심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역설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늘날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인도주의적 선교사로 평가되고 있다.
라스 카사스는 1474년 스페인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했고, 성인이 된 후 정부의 법률 고문이 되어 히스파뇰라섬에 파견된다. 그 곳에서 그는 토착민들을 착취해 오던 관리들의 태도를 재빨리 수용하고 식민지 관리 사회의 부유함을 누리게 된다. 30대 중반, 그는 심각한 영적 갈등과 변화를 겪고 사제의 신분으로 신대륙으로 건너간다. 이때에도 그의 외면적인 생활 변화는 거의 없었고, 당시 사제들의 특징인 사치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토착민들에 대한 수탈이 가장 반 기독교적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40대에 자신이 누리던 온갖 특권을 버리고 토착민의 권익을 위해 전적으로 투신한다.
라스 카사스는 토착 인디오들의 인권과 복음전파를 위해 부지런히 스페인을 오가며 정부와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디오들에 관해, 또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그들에게 온전한 복음전파가 이루어져야 함을 이야기했다. 그의 사역에 인도주의적인 투쟁이 많았지만 핵심은 복음전파였다. 그는 수년 간 중앙아메리카 지역을 순회하며 개척선교를 감당하였다. 그러나 부패하고 잔인한 식민지 관리들로 인해 그의 선교사역은 순조롭지 못했다.
라스 카사스는 70세에 멕시코 남부에서 가장 가난한 교구에 임명되었다. 그는 이 지역의 사목(신도를 다스리고 지도하는 일)을 그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여겼다. 그는 이 지역에서 토착 인디오에게 자유와 저항권을 주는 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스페인 농장 주인들에게 비난과 협박을 받는 요인이 되었다. 그는 함께 사역하는 사제들도 그와 같은 마음을 갖지 않음을 알고 주교직을 사직한 후, 73세의 나이에 신대륙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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