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적이며 헌신적인 켈트교회 선교사 콜럼바(Columba)
켈트 교회는 패트릭과 후계자들에 의해 중세 최대의 성과를 거두었던 아일랜드 복음화 결과로 생겨난 선교에 대한 강렬한 사명감이 넘쳐난 교회였다. 켈트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으로 불타 선교사역을 위한 어떤 역경과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계 곳곳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들은 선교중심지 마을을 설립하여 공동체적 접근을 시도하고, 토착 언어를 습득하자마자 찬송가와 성경을 번역하고 개종자들을 양육하였다. 또 종교적 논쟁보다는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치는 데 전념하였다. 이들의 이런 사역으로 인해 중부유럽과 아이슬란드, 영국에 복음이 전파되었다.
켈트 교회의 선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콜럼바는 521년 아일랜드의 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 신앙의 영향 아래 양육 받았다. 그는 청년 시절 수도원에서 수학하고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복음전파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하였다. 그는 많은 수도원들과 교회들을 세웠고, 그가 42세가 되었을 때 해외 사역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스코틀랜드의 해안에 있는 이오나 섬에 선교본부를 정하고 사역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기간 동안 영국 복음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는 이오나에 기도, 금식, 묵상, 성경공부와 일상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수도원을 건설하였다. 그 뿐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가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세우고, 수도원을 세울 수 있는 선교사들을 훈련하여 큰 결실을 맺는다.
그는 선교사 파송 뿐 아니라 선교사역에도 열심을 내어 스코틀랜드 내지의 픽트족 복음화에 기여하게 된다. 픽트족을 다스리던 브루드 왕은 초기에 콜럼바를 배척하였으나 콜럼바의 끈질긴 기도로 결국 개종하게 된다. 그는 드루이드 교회의 거센 반발과 궤계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겨 나갔다.
역사학자 라투렛은 콜럼바가 형식적인 교리나 도덕을 강조하기보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강조하는 신학을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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