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후원 사역†/선교이야기

북 아프리카의 순교자 퍼피튜아(Perpetua)

예림의집 2008. 8. 26. 07:10

북 아프리카의 순교자 퍼피튜아(Perpetua)


3세기 초 기독교 박해가 널리 퍼진 가운데 북아프리카에선 박해가 더욱 심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죽은 영혼을 섬기는 애굽의 세라피스교 신자였던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는 주후 202년에 유대교나 기독교로의 개종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렸다. 로마령인 북 아프리카의 대도시 카르타고에서는 기독교의 큰 부흥이 일어나 관리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이들은 황제의 칙령을 개종자뿐 아니라 개종을 시키거나 가르치는 자에게까지 확대하여 시행하였다. 황제의 칙령이 시행되는 와중에 비비아 퍼피튜아와 그녀의 여종 펠리시타스는 새투러스라는 교사가 있는 카르타고의 교리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퍼피튜아는 어린 자녀가 있었고, 펠리시타스는 임신 8개월이었다. 그들은 곧 형사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존경받는 귀족이었던 퍼피튜아의 아버지는 그녀가 신앙을 부인하도록 여러 가지로 달랬다. 그녀는 결코 동요하지 않았지만 어린 자녀를 보고 근심에 빠지게 되었다. 감옥에서 그녀는 어린 자녀와 함께 있도록 허락을 받은 후 안정을 찾았다. 그녀의 처형 날이 다가오면서 가족들이 다시 그녀를 회유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았다. 새투러스와 퍼피튜아, 펠리시타스와 세 명의 남자들은 관중들이 있는 투기장에서 곰, 표범, 멧돼지 등의 공격을 받아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당했다. 퍼피튜아와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의 펠리시타스는 옷이 벗겨진 채 미친 암소가 있는 투기장에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 광경은 잔인한 관중들조차 “그만 멈춰”라고 소리칠 정도로 참혹하였다.


그들이 투기장에서의 일차 놀림감이 된 후 사형집행인에게 끌려가는 가운데 퍼피튜아는 슬픔에 잠겨있는 기독교인들을 향해 “형제, 자매들에게 전해주세요. 믿음 안에 굳게 서고 서로 사랑하며 우리가 당한 환난이 믿음의 거침돌이 되지 않게 하라고요.”라고 말했다.


이런 핍박의 격랑 이후 교회는 퍼피튜아와 그의 동료들이 당했던 핍박을 더 이상 겪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용기 있고 담대한 신앙은 많은 이들의 모범이 되었다. 이후 50여 년간 교회는 꾸준히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