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며느리는 "좋은 며느리"입니다.
며느리가 마음을 연 것은 식사당번 때입니다. 우리 부부와 아들 내외가 모두 일을 하기 때문에,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식사당번을 하자’고, 제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당번이 어떤 밥상을 차리든지 싫은 내색 하지 말고, 당번은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하자’고 했습니다. 건강이나 칼로리는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중국음식을 배달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당번이라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는데, 며느리가 슬그머니 옆에서 채소를 다듬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너, 당번 아니잖니? 나 도와주려고? 그러려면, 당번을 왜 정했겠니? 시아버지 당번 때 도와주고, 시어머니 당번 때 나서고, 신랑 일한다고 거들면, 앞으로 너는 계속 식사 당번해야 한다.” 그러자, 며느리는 얼른 손을 털고 주방에서 나갔습니다. 아마도, 그때 며느리는 ‘아, 우리 시부모님한테는 속마음을 드러내도 되겠구나!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거절"은 서로에게 불편합니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합니다. 훈련을 통하여 거절을 잘하고, 또한 그 거절을 잘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감정에 대하여 솔직해집니다. 웬만한 거절에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시부모와 며느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 진정한 배려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려는 진정한 마음이 자동으로 나옵니다. 며느리는 지금도 저에게 거절을 많이 하는 "좋은 며느리"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외출할 일이 있어서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오늘 일산 갈 일이 있는데 차 좀 태워줄 수 있니?” “아버님,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안 되겠어요.” “그래, 알았다!” 저는 택시를 타고 일산에 갔습니다. 다른 사람 눈엔 며느리의 거절이 싹수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며느리는 저의 몸종이 아닙니다. 저도 아들내외의 이런저런 부탁을 거절한 적이 한두 번 아닙니다.(이근후)
오늘의 제목을 보면, 서로 상충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거절"과 "좋은 며느리"입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부탁하는 말에 "예"하고 순종도 잘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겠노라’고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며느리가 "좋은 며느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부탁한다고 해서, 자신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시아버지의 부탁이니, 자신의 스케줄을 조정할 수도 있으련만, 무조건 그냥 안 된다고 거절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참으로 대단한 가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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