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TV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의 모습이 감정을 자극하는 배경음악과 함께 등장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송하는 목적대로, 저 사람을 돕고 싶다면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그런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위로도 받고, 자신의 삶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나으니까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이런 걸로 위로받고 감사한다는 게 매우 부끄러운 일인데, 심지어 속으로만 생각했어야 할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이런 반응을 심심찮게 접했습니다. 저의 책을 읽었거나 강연을 듣고 "지선 씨는 저런 상황에서도 견디고 살았는데, 나도 힘내서 살아야지!" 하고 용기를 냈다는 반응을 접할 때면, 나름 반갑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지선처럼 다치지도 않았고, 그런 고통을 겪지 않고 있으니, ‘참, 감사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달갑지가 않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다 알만한 어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경우 조금은 갑갑하고 안타깝습니다.
물론, 너무나 절박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그 누군가를 보고 위로받을 때도 있습니다. "힘내라!"라는 말보다, 나와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또 존재한다는 사실에 힘을 얻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 힘이라도 필요하신 분이라면, 기꺼이 저(이지선)를 사용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하는 것은, 비교해서 얻게 되는 행복은 너무나 쉽게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과 비교해서 얻은 감사와 행복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비교해서 얻은 행복은, 일시적인
진통제처럼 잠깐 위안이 될지 모르나,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힘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세상에는 나보다 더 건강한 사람, 더 예쁜 사람,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똑똑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늘 다른 사람과 내 상황을 비교함으로써 남의 불행을 보고 얻은 행복은, 언제든지 자신보다 더 잘난 사람을 보게 됨으로써 너무나 쉽게 불평과 불행의 조건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이지선 한동대 교수)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발생했습니다. 그것도 형제끼리 서로 비교함으로써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형 가인은, 아우 아벨이 자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벨을 질투하다가 급기야는 동생을 죽이고 말았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혹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질 경우, 그와 나눔의 사랑을 함께 할지언정, 비교우위로 인한 행복감을 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가인의 말로를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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