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38번째 이야기
시간병(Time-Sickness) 직장인 10명 중 8명은 항상 시간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간병(Time-Sickness)" 증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병이란 시간이 달아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계속 가속 페달을 밟는 현상입니다. 미국 내과 의사인 래리 도시 박사는 시간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면서 시간병을 완화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권고했습니다. 첫째, 시간 계획보다 인생 계획을 세우세요. 내 인생을 통해 성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냉철히 살펴야 합니다. 둘째,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시간을 잘 활용하세요. 가끔 시계를 차지 말고 다녀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셋째, 서두르는 것은 일종의 중독 증세입니다. 천천히 해도 내 인생에 별 지장이 없다는 슬기를 터득하세요. 넷째, 조바심은 만병의 근원입니다. 때로는 돌아가는 지혜를 가져보세요. 시간에 쫓기는가, 시간을 다스리는가.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시간은 매일 누구에게나, 공짜로 주어지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주님께서 허락하신 주어진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 |
아버지의 입장이 되고 보니.. 30년간의 서울살이를 마치고 전주로 이사한 어느 날 아침, 우리 집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전날 우리 집을 방문한 부모님이 말없이 사라진 겁니다. 처음엔 평소 즐겨하시는 산책이라도 나가셨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아침밥을 먹는 시간에도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생겼나?’ 저는 다급히 아버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우리 이제 막 고속버스 탔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예기치 못한 답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날은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아버지 생신을 며칠 앞둔 무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손녀들 데리고 먼 길을 와야 하는 우리 부부를 배려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는 우리가 가는 게 낫지. 너희 사는 거 구경도 할 겸 왔어.” 그런 부모님이 갑작스레 댁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니, 저와 아내는 당혹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혹시 대접이 소홀했나? 섭섭한 일이 있었나?’ 하지만, 우리가 우려한 바와는 달리, 오히려 과한 대접이 문제였습니다. 전날 우리는 시내의 이름난 한정식 집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부모님은 메뉴판과 쉴 새 없이 나오는 코스 요리를 번갈아 보시면서 우리를 걱정하셨습니다. “집에서 간단하게 먹지. 뭐 하러 이렇게 비싼 곳에 왔어?” 더구나 다음 날부터 2박 3일간 함께 여행할 예정이었으므로, 염려는 더욱 커진 듯했습니다. ‘이 철없는 아들 부부가 밥 한 끼에 이렇게 돈을 펑펑 쓸 정도면, 여행까지 갔다가는 큰일 나겠다.’ 부모님은 밤새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들 부부가 깨기 전에 도망가자!’ 전화기 저편에서 아버지는 야반도주하다 걸린 사람처럼 미안하다는 말씀을 되풀이하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매일 그렇게 먹고 쓰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한 번 있는 일로 뭘 그러세요.” 마음 같아서는 그 길로 차를 몰고 따라가 고속버스를 막아서거나, 댁으로 달려가 다시 모셔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마음 편한 여행을 즐기기는 힘들 것 같았습니다. 저도 이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고 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떠나도록 두는 게 부모님을 위하는 길인 듯싶었습니다. 부모님께는 아들 부부의 가계에 주름지는 대접이 도리어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저의 최선이 상대방에게는 최선이 아닐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다음부터는 부모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이우영) 그렇습니다. 어른을 모시고 산다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경우에는 80이 넘으신 노모를 가까이에서나마 살펴드리려고 하는데 여건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올해 어머니 집 근처로 이사하려고 하는데 어렵네요. 그러니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도 한편으론 복입니다. 제가 부모가 아닌지라 어찌 부모님의 마음을 다 헤아리겠습니까? 요즘도 가끔 제가 한 소리하면 서운해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입니다. 그러니,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 배려의 정도가 어느 만큼이어야 마땅할지, 그것 또한 가름하기 어렵습니다. 여하튼 어머니 사랑합니다! ![]() |
우상숭배의 7가지 특성-거짓말② 우리에게는 자신의 이기적인 동기를 밝혀낼 능력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기 마련입니다. 잠언 16장 2절을 읽어봅시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개인의 행복과 안락, 부유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기도하는 방법도 잘 모르거니와, 더 심각한 것은 기도하는 법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4장 2-3절에서 원해도 받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고, 또한 구하더라도 받지 못하는 것을 잘못된 동기로 구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생활 속에 하나님이 그다지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잠재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기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며 영광을 돌리는 일은 드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도 드뭅니다. 이것은 그 사람 마음에 있는 이기적인 동기가 우상 숭배의 영과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대해서 오해하기 시작하면 그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좋은 모습만을 보며, 멋진 경험만을 하고자 하는 강한 인간의 욕망만을 채우려 합니다. 사탄은 주로 거짓말이라는 수단으로 우리를 속이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넣어 주는 것입니다. 타락 이전의 상태였던 하와조차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는데, 하물며 우리가 갈망하는 행복과 안락함을 그대로 만들어 주는 신이 있다는 그 말에 우리는 얼마나 쉽사리 빠져들겠습니까? 우리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상 숭배의 영은 인생에 대한 우리의 목적과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궁핍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에, 다른 사물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될 때,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얼마나 현저한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매일 삶에서 경험되는 사건과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생명의 근원으로 기대할 때,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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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으로 전하는 복음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린도전서 2장 1-9절). 함께 읽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본인이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한 것 같이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깨우쳐서 복음을 전하라고 권면합니다. 7절, "만세 전"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말과 지혜로가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전했습니다. 듣는 사람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세 전에 정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통치자들이 이 지혜를 알았다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1-5절). 복음의 능력은 멋있게 포장한 말에 있지 않고 복음 자체에 있습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화려한 설교가 갈채받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십자가 복음은 화려한 수사로 포장할 필요 없는 단순 명료한 내용입니다. 지식인이 많았던 아덴 지역에서 바울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앞세워 선교했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과 십자가만 전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고린도 교회"입니다. 설교자가 말을 화려하게 꾸밀수록 복음은 빛을 잃습니다. 순전한 언어로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은 더욱 강력하게 임재하십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인간적 설들이나 기교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2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지만,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죄인을 권함을 확신했기에 가감 없이 선포했습니다. 이렇듯 십자가만을 전하는 바울의 복음 선포에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났고, 고린도 성도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3절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덜었다고 고백합니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6-9절).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한 사람이 복음 증거의 가장 확실한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와 다릅니다. 바울은 말씀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6절의 "온전한 자들"에게 지혜를 말합니다.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지혜는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으로, 비밀로 감추어져 있던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 역사 속에 계시되었습니다. 이 지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이 세대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했기에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의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보지도 듣지도 생각지도 못한 하나님의 비밀한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종교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 있는 영적 능력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인간적 지혜를 따를 때와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는 어떻게 다른지 묵상합시다. 또한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오늘날 우리가 사모하고 구하는 지혜는 어떤 지혜여야 하는지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됩시다.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기뻐하시는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세상 지혜를 달랐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모든 세대가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나게 하시옵소서. 구원을 주시는 지혜와 능력이 주님께 있음을 깨달아, 날마다 주님 앞에 서길 간구합니다. 언제나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우리를 무장시켜 주시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십자가의 복음을 세상 가운데 열심히 전파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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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마지막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마지막 시대일수록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은 다 무너집니다. 경건의 능력은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자, 믿음이 있는 자에게 경건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신앙인과 종교인은 다릅니다. 신앙인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봅니다. 나는 목회자들에게 종교 지도자가 되지 말고 신앙 지도자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종교 지도자는 종교적인 것을 가르치고, 신앙 지도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칩니다. 이 말의 차이를 아십니까? 종교 지도자는 성경을 읽고 윤리, 도덕과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설교 강단에서는 피 묻은 십자가의 예수님이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 그분의 뜻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예배하며 말씀을 듣습니다. 신앙인은 예수님 앞에서 갈아갑니다. 종교인은 교회 인맥, 종교적 습관을 따라서 살고, 문제가 터지면 교회를 떠나 종교 생활마저 나태해집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교회를 잠시 떠날 수 있다 해도 예수님을 떠나지는 않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진짜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들, 믿음을 가진 자들은 끝까지 버티고 기도하며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믿음은 "지키는 믿음"입니다. 마지막 때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드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준비하고 있으라/김남국 목사) ![]() |
생각 에너지는 변화되어 발전합니다① 달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햇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처럼, 사람도 스스로는 살 수 없고 외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사람은 외부에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육체를 구성하고 유지하며, 외부에서 산소를 공급받아 활동 에너지를 얻습니다. 또한 외부에서 생각, 상념을 공급받아 의미와 성질 등 영혼을 형성해 갑니다. 아와같이 사람을 유지할 수 있는 음식, 공기, 생각 등은 인간 내부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공급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음식과 공기는 자연계에서 공급되는 에너지이며 생각이나 느낌, 감동 등은 영계에서 공급되는 에너지라는 것뿐입니다. 음식을 너무 적게 먹으면 몸의 유지가 어렵고 호흡이 약하면 에너지의 효율성이 떨어지므로 운동력이 부족하여 소극적, 내성적인 사람이 되며, 생각이나 감동 에너지를 너무 적게 공급받으면 영혼의 기능이 발달하지 못하여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차원에서 별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외부에서 들어온 생각 에너지는 안에서 변화되어집니다. 몸속에 들어온 음식 에너지가 일부는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되고 또한 일부는 운동 에너지가 되듯이, 사람의 뇌 속에 들어온 생각 에너지는 여러 형태로 발전되고 변형되어 갑니다. 뇌 속으로 입수된 생각, 관념이 뇌 속에 머물러 있을 때 그것은 하나의 논리, 개념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실상이 아니며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아니며 생명의 기초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지식의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뇌 속에 머물러 있는 지식의 수준, 이해의 수준을 실제의 수준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지식은 생명의 기초의 시작일 뿐 종착역이 아닙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영계의 실상을 거의 알지 못하고 복음과 진리를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데 머물러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실상을 별로 체험하지 못합니다. 별로 변화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하여 아직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 아직 실제적인 구원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들은 설교도 잘하고 가르치기도 잘하고 합리적인 이해의 논리를 잘 펼 수는 있지만, 실제로 구원의 감동과 성격의 변화를 체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이해만 할 뿐 여전히 그들의 심장은 죄를 사랑하고 죄의 쾌락을 즐거워하며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세상을 좋아합니다. 외부에서 머리에 들어온 생각 에너지의 다음 단계는 심장까지 내려와 소원, 감동, 욕구가 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됩니다.(계속..!) ![]() |
하나님의 얼굴을 그리워하게.. 우리의 반석이시요, 구원이시요, 요새이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낼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우리 자신의 기분에 따라 살아왔는데,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닫고, 죄를 거절하게 까지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침이 새롭게 시작되듯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는 사랑이 새로워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버지로 부를 때,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가족으로 세워지게 하시옵소서. 이 한 날을 시작하면서 오늘도 하나님의 얼굴을 그리워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얼굴을 그리워하게 하시옵소서. 그 얼굴이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십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에 소망을 갖는 아침의 시간을 주셔서 종일을 지내게 하시옵소서. 매일매일 하나님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만일, 지금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지체에게는 함께 하나님을 바라자고 권면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우리에게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요동하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을 믿고 감사하며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라고 하신 말씀을 실재를 우리 안에서 보게 되리라 믿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것에 마음을 두게 되어 있음을 기억합니다. 자녀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자기의 부모를 쳐다보듯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기다리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옵소서. 오늘을 아버지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는 복된 날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로써 오늘 지내는 동안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를 확인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는 하나님뿐이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와 우리의 집 안에 속해있는 지체들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나가도록 해 주시옵소서. 옥토의 심령을 지니고, 반석 같은 믿음의 처소를 이루어 가게 하시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이 땅에서의 기름진 것으로 배 불리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이에, 여호와의 은혜를 구하는 목마름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도록 하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증거가 그의 것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죄악의 유혹을 넉넉하게 물리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기도로써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그분의 방법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으로 요청됩니다. 영적으로 굶주려 죽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전하겠다는 사람은 여러 가지 자질을 갖추어야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제대로 따르려면 그분이 걸어가신 기도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기도의 길이 아닌 그 어떤 다른 길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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