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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예림의집 2021. 9. 18. 08:44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사계리 아랫마을에서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향교를 관리하는 유학자였고, 증조할머니는 밭농사를 하느라 허리 한번 펼 틈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막내딸이라고 해서 전혀 일하지 않고 놀기만 했답니다. 그러나 결혼하면서 고난이 밀려왔습니다. 남편이 돈 벌러 육지로 떠난 사이, 쌀독은 텅 비고 생활비도 떨어져 갔습니다. 자식들 굶을까 봐 절박해진 할머니는 당장 돈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생각해 봤습니다. 문득, 그날 작업한 것을 넘기고 바로 돈을 받는 ‘동네 해녀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물질을 해본 적 없지만, 따질 틈 없이 해녀를 찾아가 일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습니다. 처음 자맥질할 때의 두려움, 컴컴한 바닷속으로 들어갈 때 숨을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공포, 망사리 가득 소라를 땄을 때의 뿌듯함, 어린 해녀에서 중군 해녀를 거쳐 상군 해녀로 발돋움할 때의 자부심, 돌고래 떼가 가까이 온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물질하다가 혼비백산한 날, 물속에서 욕심껏 작업하다가 숨을 참을 수 없어서 큰일 날 뻔했던 일들.. 바다에서의 물질뿐만 아닙니다.

야학에서 한글과 노래를 배운 일, 4․3 사건 때 총 든 사람들이 와서 항아리에 숨은 일, 어린 시절부터 자식 셋을 먹여 살리고 공부시킨 것까지,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저는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의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저 내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면 되는구나. 힘들지라도 한발 한발 내딛다 보면, 그 안에 뿌듯함과 기쁨, 그리고 슬픔과 회한도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다시 일을 시작할 기운이 새순처럼 솟았습니다. 꼭 하고 싶은 작업도 떠올랐습니다. 바로 할머니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올해, 저는 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문정인)

그렇습니다. 흔히들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라고 합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전혀 일하지 않고 놀기만 했던 할머니, 그러나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하여 그 힘든 ‘해녀의 길’로 들어섰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닥치면 뭐든지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야 합니다. 글쓴이의 할머니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그 책임감이 아주 투철했던 것 같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