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사역†/하나님이기뻐하시는찬양

찬송은 소중한 예물②

예림의집 2021. 5. 8. 11:35

찬송은 소중한 예물②

 

셋째로, "앰프 만능주의"입니다. 일부 찬양사역자나 부흥사들의 경우 필요 이상으로 큰 고성능 앰프 시스템을 가지고 다니면서 소리의 크기를 최고로 높여 지붕이 들썩들썩할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그들은 찬송의 소리는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 아니냐는 단순한 생각에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의 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리를 들으면 고통과 불쾌감을 느끼고 마침내 내용과는 상관없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히려 찬양과 예배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많은 찬양사역자와 부흥사들이 소리의 크기와 영성이 비례한다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멘 소리가 작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다!"라든지, "더욱더 크게 불러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라고 합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 말은 거짓입니다. 결코 소리의 크기로 믿음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종종 조용히, 혼자서, 따로 떨어져서 하나님을 만나셨습니다.

 

넷째로, "성가곡 청문회"입니다. 어떤 교회 장로님은 주일날 성가대원들의 공포의 대상입니다. 자신이 무슨 심사위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늘 평가해서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만약 한곳이라도 틀리는 날에는 성가대원들에게 왜 죽을 쑤었느냐고 책망을 합니다. 아마 그 장로님은 틀리지 않고 제대로 하는 찬송은 밥이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죽이나 누룽지가 되는가 봅니다. 그러나 더욱 문제인 것은 성가대원들조차 대개 그 장로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찬송이 끝난 후 성도들이 아멘으로 힘차게 화답하면 흐뭇해하고, 별 반응이 없으면 속으로 '오늘도 죽 쑤었구나!'라고 탄식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생각하지 않고, 다만 예배의 분위기를 위해서, 또는 성도들의 반응을 의식하며 선곡했거나 지휘자의 편향된 성양에 따라 곡을 선택하고 가르치고, 연습하며 불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부른 이 노래가 과연 찬송이 돌 수 있을까요? 비록 곡은 화려하고, 하모니는 아름다울지라도 결코 찬양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자기 취향대로"입니다. 대개 찬송을 자신의 음악적 취향에 따라 선택하고 즐기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찬송을 주님께 예물로 드린다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정서를 위해 선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찬송을 받고 싶어 하시는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취향만을 우선하는 경우입니다. 이 역시 찬송이 예물임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제가 어느 날 한 청년부 모임에서 찬양을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함께 주님을 찬양합시다. <목마른 사슴이>를 부르겠습니다!"라고 하니까 한 자매님이 손을 번쩍 들고 대뜸 말합니다. "목사님, 그 찬양 이제 그만 좀 불러요. 너무 불러서 지겹습니다." 이것은 약과입니다. 심지어 일부 찬양사역자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에는 경쾌한 곡을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찬양곡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부른단 말입니까? 이 순간 하나님은 어떤 표정을 짓고 계실까요? 찬송이 무엇인지 그 대상인 누구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촌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속에 '도대체 왜 찬송이 예물이란 것일까 왜 침을 튀겨가며 열 번을 토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음 몇 가지를 저와 함께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앞에서 다룬 "찬송은 성도의 의무"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찬송의 시작은 하나님의 명령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찬송 받기를 기뻐하시고 간절히 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찬송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동의하든 안 하든 이것은 변치 않는 진리이며 진실입니다.

제 목숨을 내놓으라고 해도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찬송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가 아니라 주의 보좌 앞에 피어나는 향연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윗을 보십시오. 성경 인물들 가운데 다윗은 찬송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지은 시편의 대부분이 찬송입니다. 시편 69편 30,31절을 읽어봅시다. "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라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온전한 찬송이, 살아 있는 가축을 예물로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이 찬송이 예물로써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증언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와서 히브리서 13장 15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이는 찬송이 예배의 기본이 됨을 밝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끝으로 요한계시록 5장 1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우리를 위하여 속죄 제물이 되신 어린양 예수께서 찬송을 받으시기에 찬송은 소중한 예물인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찬송을 찬송 이외의 목적을 이해 사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자녀 삼아 주신 성부 하나님, 우리를 십자가로 구원하신 예수님,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시고 끝까지 인도하시는 성령님. 찬송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드리기에 합당한 소중한 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