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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의 이성 교제

예림의집 2021. 1. 26. 13:47

주 안에서의 이성 교제

 

①매스컴과 영화에서가 아닌 성경이 말씀하는 이성 교제를 해야 합니다.

②성경은 이성을 만날 때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첫째 내가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히 행복해야 합니다. 둘째, '좋아해'라는 감정을 훈련해야 합니다. 셋째, 내가 예수님에게 순종하듯 순종할 "남자/여자"여야 합니다. 넷째,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듯이 사랑할 수 있는 여자여야 합니다.

③음행을 피해야 합니다.

 

아주 인기 있는 여자 가수가 TV에 나와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야한 콘셉트의 노래를 소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야한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의 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포즈와 표정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한 가수가 음란한 영상을 보면서 춤을 연습하고, 수많은 초, 중, 고등학생들이 그 가수를 따라 한다고 생각하니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강조를 하면 나타나는 부작용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이성에 대해서 심히 사랑해야 한다는 이상한 마음의 부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성을 사랑하는 것, 이성 교제와 연애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청소년기에 가장 큰 관심을 바로 이성에게 잘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 친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성 교제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서도 훈련받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성 교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매스컴과 영화에서 본 것뿐입니다. 또 많은 사람은 야한 동영상에서 이성 교제를 배우기도 합니다. 이 시대가 알려주는 이성 교제는 이런 것입니다. 

TV와 영화에 등장하는 남녀가 서로 좋아한다. "나 너 좋아해! 너 나랑 사귀자!" "그래!" "나 너랑 자고 싶어!" "그래" "다른 사람이 생겼어! 미안!" "그래!" 요즘 청소년들이 이성 교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매스컴과 영화와 같이 세상에서 배운 것뿐입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본 야한 동영상을 통해서 그릇되고 죄에 사로잡힌 이성 교제에 대한 생각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입니다.

 

1. 성경은 이성을 만날 때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지니라 하시더라"(마가복음 10:9). 요즘 청소년들은 이성 교제를 하면서 만나는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전혀 관심 두지 않습니다. 만나서 100일을 넘기기 어렵고, 일 년에도 몇 명을 사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만남을 시작할 때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위의 말씀에 짝은 하나님이 지어 주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혼할 사람은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시는 인도하심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남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내가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히 행복해야 합니다.  

대부분 관계의 시작은 외로움에서 시작합니다. 내 옆에 누군가가 있어 주면 좋겠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면 좋겠다는 외로운 마음에서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모든 관계를 망치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로움 속에서 관계를 시작하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계의 실패를 내가 이성을 많이 만나보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많이 만나야 좋은 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관계의 실패는 내가 외로운 것 때문에 사람을 찾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사랑하는 행복한 가운데서 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이 맺어 주신 소중한 사람으로 사랑하는 것이 관심이 아니라, 나의 외로움과 나의 정서적, 육체적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이성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성 교제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도 아니고, 결혼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예수님에게만 있습니다. 죄의 시작은 예수님 아닌 것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성 교제도 마찬가지입니다.

②'좋아해'라는 감정을 훈련해야 합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는 남편이 있는 아내였습니다. 좋아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었습니다. 세상은 '좋아해'라는 감정에 마치 면죄부를 주는 것같이 말을 합니다. '좋아한다잖아, 좋아한대!'라면서 마치 어쩔 수 없는 것과 같이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감정도 분노, 음란, 시기의 마음과 같이 훈련받아야 하는 감정입니다.  

결혼한 후에도 다른 이성이 좋아져서 이혼하기도 하고, 좋아한다는 감정이 채 2주도 안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좋아한다는 감정도 훈련되지 않으면 내 자신을 망치는 분노, 시기, 음란과 같은 감정입니다. 또한 이성을 보면서 좋아지는 것이 세상의 눈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성을 선택하는 기준이 세상의 관점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라고 유행처럼 매스컴에 나왔습니다. 실제로 학생들도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남자를 이상형으로 생각한다는 아이가 많았습니다. 자기의 이상형이 바람둥이이며, 자기에게 함부로 대하지만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겁니다. 주 안에서 이성을 바라보는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③'내가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순종할 수 있는 남자이어야 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에베소서 5:22).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예수님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잘생긴 남자, 착해 보이는 남자, 유머러스한 남자, 돈 많은 남자, 인기 있는 남자를 선택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그 남자가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만나는 남자의 의견에 여자가 예수님에게 순종하듯 순종할 수 있는 남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 남자를 통해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그 남자가 예수님을 온전히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어야 예수님에게 순종하듯이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남자가 이성 교제를 하면서 키스, 애무, 성관계와 같은 스킨십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삐치고, 화냅니다. 

그런데 많은 여자가 헤어지는 것이 두렵고, 버림받는 것이 걱정되어서 그 관계를 유지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만남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남자에게 정말 예수님에게 순종하듯이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남자의 기준은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예수님에게 온전한 순종을 드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십 대 때 내 외로움의 자리에 남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온전한 순종을 드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이 말하는 남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남자는 예수님으로 사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이 말하는 여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④'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여자여야 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에베소서 5:25).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이, 그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기 자신을 주신 것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얼굴이 예쁘거나, 몸매가 좋거나, 인기가 많거나, 매력적이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기준은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준 것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여자여야 합니다. 여자가 남자를 판단하는 기준도 이 남자가 나를 예수님처럼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온유하시고, 먼저 떠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여야 합니다. 여자 안에 있는 모든 허물과 죄를 다 덮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 덮어 주셨듯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늘 말씀해 주듯이, 늘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보여 주는 사랑은 너무도 쉽게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거부합니다. 너무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많은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남자는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맣은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받고 이성 관계를 맺었다면 그 여자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 대 때는 예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충만하게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자는 여자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자는 예수님처럼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2. 성경은 음행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 6:18-20). 성경은 음행에 대해 단호히 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음란한 행동은 다른 죄와 달리 몸 안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몸으로도 마땅히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관계가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관계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관계 속에서 몸으로 하는 성관계는 음행의 죄가 되지만, 결혼의 관계 안에서 몸으로 하는 성관계는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마치 성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고 말을 하면서 타락과 음란한 행동에 동조를 합니다.  

하지만 졸리다고 아무 데서 자고, 아무 시간에 자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몸을 깨끗하게 씻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어서 잠을 자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배가 고프다고 먹고 싶은 것을 다 먹는 것이 아니고, 또 쉬지 않고 먹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욕도 욕구입니다. 우리가 수면욕을 절제하듯, 식욕을 절제하듯 성욕도 절제의 훈련을 해야 하는 욕구입니다. 수면욕과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삶이 망가지는 것처럼, 성욕도 절제하지 못하면 삶이 망가집니다. 

성경은 음행을 피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 관계가 아닌 상황에서의 음란한 행위와 성관계는 몸 안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관계는 결혼 안에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관계는 인격적으로 가장 깊이 알았을 때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혼입니다. 성관계가 몸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의 이성 교제는 우선 만남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만남을 신중하게 한다는 것은 내가 주님에게 순종을 드리는 삶을 살고, 예수님의 사랑을 충분히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음행을 피해야 합니다. 십 대 때는 '사귀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 대들의 가치는 '사귀는 것'이 오늘부터 스킨십 해도 된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귀는 관계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의 훈련도,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삶의 훈련도, 예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도 모두 멈춰 버립니다.

나와 예수님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 대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훈련을 해야 할 때입니다. 문제는 관심의 문제입니다. 내 관심이 이성에게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에게 순종을 드리고, 예배자의 삶을 사는 것이 관심인지 문제입니다. 나의 십 대 때의 가장 큰 관심은 이성입니까? 예수님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