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언약의 성취, 마태복음 개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마태복음 1:1-17).
오늘은 마태복음을 묵상하는 첫날입니다. 그렇기에 본문에 대한 해석을 포함해서 마태복음 서론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은 제목에서도 시사하듯 예수님의 제자 마태 사도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흥미롭게도 다른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을 소개할 때 이름만 나열하는데, 마태복음에서만 유독 "세리 마태"라고 하면서 이름 앞에 ‘세리’를 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마태 본인의 부끄러운 직업을 나타내려는 겸손한 의도로 보입니다. 그의 직업에 걸맞게 마태복음에는 17장 24절, 두 드라크마 관세, 27절, 네 드라크마 동전, 18장 24절 달란트 등 마태에게 익숙한 돈 단위에 대한 다양한 용어들이 등장합니다.
마태복음은 신약의 첫 번째 책답게 독자들을 구약으로부터 연착륙을 시키려는 듯 전반적으로 유대적 성향이 강한 분위기와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며 17절,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으로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라고 기록하는데, 세 간격이 약 1,000년, 400여 년, 600년임을 생각해 볼 때 ‘열네 대’라는 숫자에 끼워 맞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라는 숫자는 다윗 왕의 이름으로 마태복음은 시작부터 예수님이 유대의 왕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 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50회 이상 구약을 직접 인용하고, 75회 정도 구약의 사건들을 암시함으로 유대인이 대상이었음을 뒷받침합니다.
또한, 마태복음에는 유대인들이 자주 쓰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표현이 15번 나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한번, 누가복음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과 선명하게 대조됩니다. 하나님이라는 표현 대신 이러한 우회적 표현을 쓴 것도 전형적으로 하나님의 이름 부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유대적 사고를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대신 주로 ‘천국’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구조도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오경을 염두에 둔 듯,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섯 군데에 모아서 구성했습니다. 5-7장의 산상수훈, 10장의 전도 여행을 보내시며 주신 가르침, 13장의 천국에 대한 비유 모음, 18장의 공동체와 용서에 대한 가르침, 23-25장의 종말에 대한 가르침과 경고 등 다섯 개의 강의 말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가르침 사역에 초점을 맞춘 것 또한 마태복음의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 5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렇게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반복하는데, 모세는 그렇게 가르쳤지만 나는 이렇게 가르친다고 하면서 마태가 예수님을 모세보다 위대하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대비시켜, 예수님은 새로운 모세이실 뿐 아니라 구약 모세의 권위를 훨씬 뛰어넘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모세의 율법을 폐하시려는 것은 아닙니다. 5장 17절,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마태복음이 유대적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복음의 보편성" 또한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동방 즉, 페르시아에서 온 동방박사 사건은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닌 만민의 메시아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천국의 비유에서도 13장 38절, 밭은 믿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세상’을 가리킨다고 가르치십니다. 21장 4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아 다른 이들에게 주실 것이라 말씀하심으로,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열려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4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만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28장 18-20절, 모든 족속을 향한 지상명령으로 서신을 끝맺는 것 역시 복음의 보편성을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복음은 특정한 자 또는 특정한 민족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임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은 강한 유대적 요소에 복음의 보편성이 더해진 복음서라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태복음에 대한 소개를 마쳤습니다. 마태복음 대한 이러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오늘부터 마칠 때까지 마태복음을 깊이 있게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마태복음을 주시셔서 예수님을 잘 알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마태복음을 묵상하는 동안,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또한 세리 마태처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게 하시고, 널리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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