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참 형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요한계시록 1:9-11).
요한은 9절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형제라고 지칭한 대상은 요한의 편지를 읽고 듣고 지킬 모든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왜 요한은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 형제’란 말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까? 원래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머리에 붙은 지체들입니다.
그리고 이 머리와 지체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님의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체들은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직분을 가졌건 동일합니다. 그 하나하나가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 형제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체가 되는 모든 성도들
교회란 말은 사람의 손으로 건축한 어떤 건물을 가리키는 낱말이 아닙니다. 예배하는 장소로 만들어진 건물은 예배 처소로 사용될 때에만 성전이라고 불려집니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이처럼 한 몸을 이루는 몸의 지체는 한결같이 소중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존귀하다면 그 몸을 이루고 있는 각 지체 역시 존귀한 것입니다. 여기서 지체라고 표현한 말은 사람의 몸과 비교해서 설명하는 하나의 비유입니다.
우리의 팔이나 발이 사고로 인해 혹 잘린다 해도 목숨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져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뇌의 지극히 작은 혈관이 파열된다면 반신불수가 되거나 뇌출혈로 목숨을 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다른 지체보다 더 존귀하고 소중히 여기시어 그것을 보호하시고 그 지체의 직능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귀중하게 다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지체가 존재하고 있는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사실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 몸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지체는 그 몸의 원활한 활동을 이루기 위해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죽으면 그 지체는 그 몸에 이로운 존재가 아니라 해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체는 그 지체대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지체의 사명은 빛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빛이라고 하신 말씀은 마태복음 5:16절에서 밝혀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착한 행실을 말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지체의 사명을 이룬다는 말은 의의 병기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롬 6:13절에서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체의 사명을 이룬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활의 기준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두는 생활을 뜻합니다. 고전 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의 형제들
종말의 계시를 받고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그 내용을 편지로 보내면서 사도 요한은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야 요한의 참 형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요한은 여기서 참 형제의 자격을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자격이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 축복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일입니다. 우리가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땅 위에서의 영화보다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누릴 그 축복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의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참는다는 말은 인내를 의미합니다. 히 10:36절에서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인내가 없는 생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패배적인 생활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결론
종말에는 요한의 형제 된 그리스도인들만이 세마포로 단장하여 신부의 자격을 가지고 신랑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저 그럭저럭 믿는 믿음의 생활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되어 요한의 참 형제가 되어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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