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요한삼서 1:2-5).
조용기 목사님의 소위 삼박자 구원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예수를 믿으면 단지 영혼 구원만이 아니라 가난으로부터의 구원, 질병으로부터의 구원도 받게 된다는 해석이다. 이런 해석이 가진 나름의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의 구원자이시고 우리를 질병과 가난에서 건지시는 분임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오늘도 실제로 주를 의지하여 기적적으로 병 고침 받고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 간증들은 이런 믿음이 귀한 것임을 실증해 준다.
주의 구원은 전인적이며 우리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총체적 구원이다. 이런 현실적인 축복을 기대하는 믿음 자체를 기복 신앙이나 번영신학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삶을 모든 저주와 고통에서 건지시는 주 은혜를 기대하는 것은 단지 초신자의 약한 믿음이 아니고 모든 신자의 건강한 믿음의 증거이다. 주를 우리를 전인적으로 건강하고 영육 간에 부요케 하심을 믿고 이를 기대해야 한다.
그런데 이 구절의 의미는 크게 오해되고 있음도 분명하다.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이 믿으면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 간다는 의미로 해석하는데 이것이 바른 해석인가? 오늘날 설교자들이 가진 영혼 구원 이해가 다수 이런 의미이다. 예수를 믿으면 죽어도 천국 간다. 그뿐 아니라 살아서는 부자도 되고 건강의 축복을 누린다. 그야말로 현세와 내세, 영과 육 모두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치명적인 오해는 영혼이 잘 된다는 말씀이 단순한 신앙고백과 죽음 이후의 영생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단지 믿음 자체도 아니고 내세의 문제도 아니다. 이어지는 3-5절의 말씀과 같이 그것은 진리 안에 행하는 것, 나그네 된 형제를 영접하여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영혼의 잘 됨은 믿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행함의 문제이고 내세 영생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세 생활의 문제이다. 진리 안에서 행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영혼이 잘 되고 있음의 결정적인 증거이다. 요한은 장로 가이오를 위해 천국 갈 믿음을 가질 것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더 온전히 순종하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믿는다고 하는데 진리를 행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가 영혼이 잘 된다고 할 수 있는가? 그의 영혼은 병든 것이다. 그의 영혼이 병들었는데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복을 기도하며 그 병든 영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전인적인 구원의 신앙인가? 영혼이 잘 됨 같이. 이것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함의 전제이다.
그런데 삼박자 구원의 설교가 성도들의 마음에 진정한 영혼의 잘 됨을 사모하여 전인적 축복에 이르게 하기보다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 복을 누린다는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 오히려 영혼에 대한 관심에서 돌이켜 육체에 대한 관심을 향하게 만든 것이다. 정말 육체의 고통, 재정의 고통을 당한 이들에게 전인 구원의 설교는 양약과 같았지만 세상 욕심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이런 설교는 치명적인 독이 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영혼 구원에 대한 오해가 영혼을 병들게 하고 신앙의 이름으로 신앙을 거스르게 만든다.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함을 마땅히 소망해야 한다. 그러나 영혼 구원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영혼 구원은 바로 진리를 행함이고 이것은 진리의 순종에 따르는 고난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진리를 순종함은 육체의 평안과 행복을 원하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자신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진리를 행함으로 세상의 미움과 소외를 당할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행함, 영혼이 잘 되는 것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영혼이 잘 되는 소망은 범사에 잘 되길 바라는 인간적인 소망을 거스른다. 주를 위해 범사에 고난을 받아도 진리를 행함을 기뻐하는 이들이 영혼이 잘 되는 것이고 이런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범사에 잘 되는 복을 주신다. 믿기만 하면 이 땅에서 고통 없이 행복을 누리고 죽어 천국 간다는 상식적인 신앙은 진리가 아니고 거짓이다. 십자가 없이 영혼의 잘 됨이 없다. 십자가 없이 진리를 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십자가의 고난 없이도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에 이른다는 거짓 복음이 널리 퍼져 있다. 진리에의 순종, 형제 사랑과 무관한 값싼 은혜로서의 영혼 구원과 현세적 축복이 강단에서 남발되고 있다. 진리를 위한 고난이라는 불편한 복음은 밀려나고 고난 없는 형통과 행복의 거짓 복음이 성도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돈과 쾌락이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하고 이것이 성도들의 마음을 빼앗아 진리를 거슬러 멸망에 이르게 하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
지금은 복을 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힘, 세상의 미움을 각오함, 욕망의 절제를 선포할 때이다. 욕망으로 눈이 어두워 치명적인 위험에 처한 이들에게 범사 형통, 성공과 행복의 비전을 말하는 것은, 이미 무절제한 욕망으로 살아 죽을 병에 든 사람에게 달콤한 말로 위안을 주고 그 삶을 지속하게 하는 돌팔이 의사의 행태이다. 이것은 치료가 아니라 범죄이다.
영혼을 구원하도록 부름받은 사역자들이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하다니! 이들의 악행으로 인한 결과가 어떠한지 한국교회의 오늘날 실상이 보여준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들에게 반드시 화가 있을 것이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영혼이 잘 되어 범사에 복에 이르도록 어두워진 진리를 밝히시고 진리를 순종할 겸손과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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