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3 29 광야에서의 꿈
신명기 8:1-10
외적인 위기는 내적인 성숙을 위한 기회이다. 이 원리를 터득해야 진정으로 탁월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위기 앞에서 약자와 강자가 분리된다. 약자는 위기 앞에서 두려움으로 인해 전락하게 되고 진정한 강자는 위기를 통해 비로소 그 안에 잠재해 있던 힘을 보여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히고 상황은 점점 불안하게 발전한다. 이 위기는 낯선 것이고 낯선 것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인한 새로운 관점과 이로 인한 변화의 가능성이다. 이 위기의 때 비로소 우리 믿는 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어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서 도래하는 소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다. 두려움과 불안이 아니라 소망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놀라운 복음이다.
꿈꾸는 자의 정체성과 광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꿈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면서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는 이 약속을 따라 나섰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 받을 때 그들은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받았고 이 약속은 그들에게 소망을 주었다. 이스라엘은 출발부터 꿈의 백성이었다. 그 꿈은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의 풍요를 자유롭게 누리는 자유민의 꿈이다. 광야 생활 내내 그들의 과정을 이끈 것은 이 놀라운 꿈이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신 8:1).”
이것이 우리의 꿈이기도 하다. 우리는 죄와 율법과 저주 아래 노예로 살던 자들이다. 그런데 주께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사 의와 자유와 축복의 삶을 누리도록 정해 놓으셨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약속의 기업을 누릴 상속자들이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7).” 우리는 아들이고 유업의 상속자들이다. 더 이상 죄도 저주도 율법의 멍에도 없다. 아들로서 자유인들이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이다.
삶에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경험적인 사실과 영적인 사실이다. 현재의 사실과 미래의 사실이다. 사람들은 경험적 사실, 현재의 사실에 근거해서 느끼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영적인 사실은 현재의 경험적 사실과 모순되기 때문에 경험적 현재의 사실에 근거해서 사는 이들에게는 거짓과 망상처럼 여겨진다. 경험적 사실을 넘어선 영적인 사실이 참된 실재이다. 하나님의 꿈은 영적인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고통이고 절망이고 두려움이지만 하나님의 꿈은 생명이고 기쁨이고 자유다. 경험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보면 소망이 생길 수 없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은 어떠했는가? 어디에 근거해서 느끼고 행동했는가? 대다수가 경험적인 사실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비현실적이게 여겨졌고 그래서 그들은 꿈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놀라운 축복의 땅 가나안에 대한 꿈을 가지고 나왔지만 실상 광야의 궁핍에 처했을 때 그 꿈은 물거품처럼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꿈을 지니지 않았던 것이 드러났다.
믿음이란 꿈꾸는 것이다. 믿음이란 광야에서 가나안을 꿈꾸는 것이다. 광야와 가나안은 서로 대조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광야에서 가나안을 꿈꾸기 어렵다. 광야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인간적인 꿈은 깨지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그 깨어짐이 새로운 꿈의 근원이 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꿈은 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 8:3).” 광야의 배고픔과 만나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꿈을 꾸게 된다. 그러니까 광야는 꿈의 반대가 아니라 꿈의 배경이다. 광야이기 때문에 꿈이 희미해지는가? 그것은 오해이다. 광야는 인간적인 꿈을 깨뜨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꿈을 꾸게 만든다.
지금은 광야의 시간이고 그렇기에 꿈꾸는 시간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광야는 꿈을 무색하게 만드는 장소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전의 세상 욕망에 근거한 허망한 꿈을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성취할 약속을 바라보게 하는 장소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광야를 옥토로 바꾸시는 분이다. 광야에서 옥토를 상상해야 한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신 8:10.”
왜 광야가 꿈의 장소인가?
광야가 꿈의 장소인 이유는 광야에서만 꿈을 이룰 그릇으로 준비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꿈은 위대한 꿈이다. 그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순종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빚어진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신 8:1).”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 이것이 약속의 땅을 차지할 조건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지금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들어가도록 예비된 우리가 그 복을 누릴 조건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꿈을 꾼다는 것은 곧 그분의 말씀을 듣고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결단하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이 원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꿈도 잃어버렸다. 꿈이 생생하게 되려면 순종의 아들들로 거듭나야 한다.
애굽에서 나온 이들이 이 조건으로 구비되어 있었는가? 만일 그랬다면 굳이 광야의 시간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서 살 동안 불순종의 삶을 살아왔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불순종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가나안의 축복으로 들어가길 원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완고히 불순종했다. “오늘 너희가 그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7-8).” 광야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드러나는 공간이며, 동시에 이 불순종이 깨지는 공간이다. 그들은 광야의 시험을 통과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불순종을 드러내어 치유하는 장소로 광야를 정하시고 40년 이 장소에서 그들을 가나안의 꿈을 위해 준비시키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광야는 순종여부를 시험하는 장소이다. 시험을 통해서 불순종의 실상이 드러났다. 광야는 불순종하는 자들을 훈련하는 장소이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신 8:5-6).” 징계를 통해 불순종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백성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지금 우리의 광야의 고난은 꿈을 이루어 가는 시간이다. 꿈과 대조되는 거친 광야는 꿈을 위해 우리의 내면의 인격을 빚는다. 우리 안의 완고함, 고집, 욕망, 이기심, 교만, 자기중심성,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기업을 누리는 것을 막고 있다. 세상의 꿈은 야망과 실력을 요구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고 그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는 인격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꿈이 더 분명해질수록 우리 안에 그 꿈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온갖 장애물들이 가득 차 있음을 본다. 이제 광야의 시간을 통해 우리 내면을 정화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꿈을 꾸는 자들에게는 광야는 너무도 귀한 장소이다. 광야의 시간이 없다면 가나안의 축복의 날도 없을 것이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가나안의 풍요로 직행할 수는 없다. 사십년 고난의 시간은 꿈이 영그는 시간이고 그 꿈에 필요한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시간이다. 이제 고난의 시간에 꿈을 더 생생히 꾸면서 그 꿈이 이루어질 그 날을 위해 순종의 삶을 훈련해야 한다.
순종하면 기적을 기대해도 된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주의하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는 동일한 상황을 다르게 만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적인 위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와 우리는 새 것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이다. 우리에게는 놀라운 약속이 있고 그래서 우리 안에는 생생한 꿈이 있다. 지금 이 고난의 시간에 꿈이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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