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돌파하라
코로나19의 위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이 상황을 직면하는 우리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우리는, 스티븐 코비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말한 대로, 반응적인 사람이 아니라 주도적인 사람이다. 같은 상황이어도 누가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이 일어난다. 상황에 의해서 결정되는 자들이 있고 상황을 주도적으로 결정해 나가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상황에 의해서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상황을 거스르고 상황을 바꾸는 자들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정체성이다. 믿음이란 상황을 거스르는 능력이다. 믿음이란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삶을 살던 자들이 상황을 뛰어넘어 사는 자가 되는 능력이다. 우리 안에 이 능력이 일하고 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이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 그래서 상황으로 인한 삶의 위기들은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 아무리 거친 바람이 불고 물결이 치솟아도 우리 안에 있는 능력으로 인해서 우리는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다. 문제는 거친 바람이 불고 파도가 배를 위협하는 바다에 직면해서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기의 상황은 우리 안에 내재한 능력이 풀어지는 때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견고한 소망이다. 우리에게 위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규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주어진 상황과 우리의 삶의 평안에 의해서 평가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하셨고 이 부르심이 그의 삶을 주장했다. 그의 부르심은 탁월한 삶으로의 부르심이다. 그가 부르심을 따라나선 후 그의 삶은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 그분의 땅을 기업으로 얻고 열방을 축복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목적에 동의하는 것이고 그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런 목적론적인 삶 비추어서 우리의 삶의 위기는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면서 가나안의 유업을 약속하셨고 그들은 바로 그 약속을 믿고 따라나섰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말씀하셨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은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8).” 그리고 그 말씀대로 놀라운 능력으로 기적을 베풀어서 애굽에서 건지셨다. 이스라엘의 진행을 이끄는 것은 그들의 계획이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을 믿고 따르는 이스라엘의 믿음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목적을 계시하셨다는 것이고, 이스라엘은 그 약속을 그들의 꿈으로 받아들이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꿈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
그런데 가나안 정탐 이후에 위기가 찾아왔다. 외적인 위기가 아니라 꿈의 위기이다.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로 이스라엘을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약속을 잊어버렸고 그 땅을 악평하고 죽을 것이라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 땅은 아름다운 땅이지만 그 땅 거민으로 인해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 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꿈을 버리고 두려운 현실 상황을 붙들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고 어둠에 잠기게 된 것이다. 위기는 가나안 거민의 강대함과 이스라엘의 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꿈을 잃어버린 것에 있다.
여호수아 갈렙은 하나님의 비전을 다시 환기시킨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하나님의 비전은 위기 앞에서 빛을 발한다. 위기가 찾아올 때 사라지는 꿈이라면 하나님의 꿈이 아니다. 위기는 꿈의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위기는 꿈을 더 정결하고 명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꿈으로 인해 우리는 주어지는 위기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본다. 위기를 지나야 저 약속에 땅에 이른다. 지금 위기 상황인가? 약속의 말씀을 붙들 때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은 것처럼 소망으로 위기를 거슬러야 한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강대함에 대해서 듣고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온 회중 소리 높여 부르짖고 밤새도록 통곡했다. 그리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소리쳤다. 왜 이들은 이런 패닉에 사로잡혔는가? 상황을 본 것이다. 정탐꾼이 전한 소식은 이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과 우리가 대결하면 우리는 그들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이것이 그들이 내린 객관적인 평가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사실은 좋은 소식이었지만, 그 땅은 감히 넘겨 볼 수 없는 불가능한 목표였다. 놀라운 꿈이 현실 앞에 좌절되는 순간이다.
두려움은 소망의 적이다. 현실이 강하게 의식되고 그것의 위험이 의식되기 시작하면, 그동안 힘을 주었던 소망은 빛을 잃고 그 자리에 두려움이 자리 잡는다. 왜 두려움이 엄습하는가? 보이는 것만을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꿈을 향해 나아가려면, 하나님의 능력이 이끌어야 한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재능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그 믿음의 능력으로 이루어간다. 강한 적들 앞에 느끼는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두려움에는 믿음이 작용하지 않는다. 두려움의 어둠이 물러가려면 믿음의 빛이 들어와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출애굽 했지만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었고 강한 적들이 보이자 그 적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믿음의 결여를 보여준다. 그래서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음을 본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부정적인 사고 가운데 살았다. 메뚜기라고 의식하고 살았다. 왜 그런가? 하나님 안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지 못하고 약하고 실패하는 이전의 정체성을 붙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능히 이기리라’ 하시는데 우리는 ‘이기지 못하리라’ 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무엇을 의지하느냐이다. 자신을 보고 상황을 보면 ‘나는 진다’는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 안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인식해야 밖의 곤경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말해야 한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앞에 있는 적들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데 장애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보다 더 강하고 그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꿈의 사람들은 위기를 다르게 본다. 위기는 꿈의 장애물이 아니라 꿈을 이루는 도구이다. 꿈의 사람들은 이제까지의 한계 앞에서 주눅 들고 뒤로 물러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지고 용감해진다. 위기는 두려움을 일으키고 우리의 한계를 노정시킨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새롭게 비춰지면서 우리는 한계를 돌파하는 놀라운 경험으로 들어간다. 위기로 인한 한계의 경험은 낙망과 두려움의 이유가 아니라 용기와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이다. 한계 앞에서 그 사람의 정체가 드러난다. 굉장히 강해 보이던 이들이 한계를 만나면서 소극적이게 되고 도피할 이유와 변명거리를 찾는 것을 본다. 그런데 약하기 짝이 없던 이들이 한계를 통해 잠재되어 있던 내면의 사자의 담대함을 일깨우고 전혀 다른 존재로 거듭나기도 한다. 강한 용사들은 다 한계의 경험을 통해서 성숙한 자들이다. 그래서 용사들은 한계 상황을 두려워하면 물러날 때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용기와 힘을 증명할 기회로 삼는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탁월함이다. 남들이 다 두려워 떨 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대담하게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 바로 믿음의 영웅이다. 죽음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 강한 적들은 더 이상 적수가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믿는 믿음이 강한 용기를 배양해 주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는 한계를 돌파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는 자들, 그래서 두려워하고 도피하는 자들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들로, 한계를 돌파하는 용기를 보여주라. 지금은 믿음의 영웅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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