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인내, 고난의 유익, 십자가 묵상
시편에서 전에 보지 못한 투덜거림의 정수를 보았습니다. 야고보서는 욥이 감사의 표본이 아니고 인내의 표본이라고 말합니다(욥기 5:11). 인내라는 이미지가 억지로 참는 딱딱한 모습을 연상하게 하지만, 욥을 보면 투덜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내하는 모습입니다. 억지로 참는 모습이 아니라, 묻고, 따지고, 대들고, 하소연하는 모든 행동 말입니다. 아 그 시원함!
욥을 보면서 "거듭난 사람은 "거듭난 사람은 지성을 통해 느끼고 감성을 통해 다스린다"라고 한 제임스 패커의 말을 거듭 이해했습니다. 지성이 하나님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지적인 사고를 넘어 전인격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다는 말입니다. 이성을 통해 감정을 누르고 다스리라는 것을 플라톤적 유산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투덜대고 따지고 대드는 감성적 행동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게 되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욥은 나에게 무엇보다 하나님께 따지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욥기서 9:32). 하나님은 인간이 맞짱을 뜨는데 누가 중제자가 되겠는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욥을 보면서 나도 하나님께 막 나오는 대로 지껄여댔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보셨냐고요? 결혼도 안 해보셨잖아요! 자식의 있어요?" 그런데 인간이 되어 보셨냐고 묻는 내게 갑자기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래 여기 있다. 내 아들. 나보고 결혼했냐고? 내 백성은 나와 결혼한 사람들이 아니더냐?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내 질문이 멈췄다. 얼굴이 얼어붙었다.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맞다. 그분이지, 그분. 그 십자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매를 맞으셨지. 배고파 굶주림을 당하셨고, 피곤해서 출렁이는 배에서 주무셨지.' 쓰러져 우는 아내로 인하여 아프다고 소리치며 인간이 되어 보셨냐고 묻는 내게 그분은 십자가로 응답하셨습니다. 인간이 돼다마다!
묵상 가운데 나의 불만과 억하심정이 눈 녹듯 녹는 지점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다윗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라고 노래했습니다. 즐겨 암송하는 말씀이지만, 마음 한구석에 서는 싫어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고난을 당하고서 얻는 유익이라니, 그런 유익이라면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고난 없이 얻는 유익이 더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주는 유익이 십자가를 경험하는 일이라면 고난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묵상이 깊어져 삶이 보일 듯하다가도 새로운 일을 만나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내 확신 위에 나를 세울 수 없습니다. 묵상의 견고함이 나를 삶의 십자가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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