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까지 사랑하리라
①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②언제나 나를 용서해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죄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③용서하시는 하나님에게 나의 마음을 열고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십자가에서 사랑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은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날이 가까워서 제자들을 돌아봅니다. 예수님을 곧 부인할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 마음에 들었던 제자들을 향한 마음은 "이들을 끝까지 사랑한다."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가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13:1).
예수님은 끝가지 사랑할 제자들을 위해 세족식을 준비하십니다. 종들이 주인의 발을 씻어 주는 것처럼,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당황해서 선뜻 발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곧 배신할 제자들에게도 발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발을 예수님에게 드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닦으시면서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제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베드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발을 드릴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종이 하는 것을 예수님이 하시냐고 말했습니다. 내가 감히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리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예수님이 나의 발을 씻게 하냐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계속 거부했습니다. 절대로 내 발만큼 씻지 못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입니다. 이날의 세족식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은 잡혀서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세 번째 부인을 하고 닭이 울었습니다. 닭이 울 때 베드로가 생각했던 예수님의 한 마디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발을 씻어 주실 때의 말입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곧 이런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부인할 것도 안다. 네가 나를 떠날 것도 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 달라. 베드로야! 네가 나를 부인할 때, 오늘을 기억하라! 베드로야! 네가 나를 떠날 때, 이날을 기억하라! 네가 두려워서 나의 곁을 떠날 때, 오늘 이 말을 기억하라!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내가 오늘 너의 발을 씻었으니,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너와 나는 무관한 자가 아니다. 너와 나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네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 네가 힘을 잃었을 때에, 아무런 소망을 잃었을 때에, 완전히 좌절에 빠질 때에 이것을 기억해라. 너와 나는 절대로 무관할 수 없다."
베드로는 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물로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이 말씀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한 전도사와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전 사역지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이 예수님을 만나고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사모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신학교에 간 이 학생이 주일에 교회를 안 왔다는 겁니다. 사모님은 저에게 그 학생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우선 전화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예수님을 사랑해서 신학교에 갔지만, 오히려 죄의 유혹 앞에 무너진 것입니다.
약속을 잡고 학생을 만났습니다. 큰일을 할 것 같은 아이였는데, 삶이 무너져 보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학생이 계속하는 말은 "내가 변할 수 있을까요? 내가 돌아갈 수 있을까요? 나는 다시 주의 일을 할 수 있을까요?"였습니다. 무너진 자신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면 되는데, 아예 주저앉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은혜를 받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2008년 겨울 수련회 기억나니? 그때 너 예수님을 만났잖아! 그때 전도사님한테 죄를 고백했던 거 기억나니? 그때 너 전도사님한테 말한 거 장안 아니었어.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죄짓는 거 싫어졌다고 했잖아! 아! 네가 고3 때 친구들을 10명 가까지 전도했잖아! 야! 그때 너 생각나니? 기도회 5시간 동안 했던 때. 야! 그때 생각나니? 수련회 때 선교사로 헌신하고 순교하고 싶다고 했잖아 ... "
이런 이야기가 이어지자,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주님은 너를 원래 죄인일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연약했을 때 사랑하셨어. 주님은 그때 너를 사랑하셨어. 그것이 십자가잖아!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 주님의 약속도 의심하지 마!" 이 글은 읽고 여러분의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어떤 형제와 상담을 하였습니다. 그가 기도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자신의 기도가 진심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했지만 그 뒤에 내 욕심이 가득 있었고, 기도에 수많은 이유를 댔고, 자신의 기도가 정말 주님을 사랑했던 진심의 고백이 아니라 내 욕심이 늘 뒤에 있었던 것을 보게 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기도를 한 적이 별로 없음을 깨달았으니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가득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늘 예수님을 이렇게 대하는구나."라는 마음이 들며 감출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 너의 기도가 그랬단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한다. 나는 너에게 한 번도 진심이 아닌 마음으로 기도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너에게 단 한순간도 진심이 아닌 마음으로 대한 적이 없단다." 그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에게 완벽한 사랑과 용서를 준비하시고 나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답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유명한 금문교가 있습니다. 이 높은 다리를 만들 당시에 많은 사람이 바다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고 방지를 위해 다리 밑에 안전망을 설치했더니 그 후 사고뿐 아니라 스스로 다리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수도 엄청나게 줄었다고 합니다. 용서가 꼭 이와 같습니다. '나는 용서받을 것이기 때문에 계속 죄를 짓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나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 있기 때문에 죄를 짓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내 마음에 죄를 이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람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례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5-39).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 어느 것도 우리를 예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놀라운 진리를 말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죄를 지으면 예수님이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과 멀어지게 하는 모든 마음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 어느 것도 우리를 예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는 진리 위에 서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가 반복되는 죄로 마음이 괴롭고,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을 하였습니다. 마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방처럼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 숨고만 싶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에게 기도도 못하고 마음에 기쁨도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더 죄에 빠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예배 때,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감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생각나게 하셨다고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 말씀 앞에 회개의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환상과 같이 성도의 마음 문밖에서 그를 두드리고 계시는 예수님이 머리에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줌이 돼서 들어가는 것처럼 예수님의 손에 시선이 고정되면서 손이 점점 크게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손이 다 짓물러 있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예수님의 손이 다 물러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성도가 예수님의 용서하심을 믿지 못하고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손이 다 깨질 때까지 그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마음이 정리된 후 예수님에게 문을 열어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 때문에 예수님의 손에 피가 흐르고 진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마음의 문만 열어라! 내가 가서 함께 정리해 줄게! 방도 정리해 주고, 너와 함께 밥도 먹길 원한다!"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할 것은 그 예수님에게 우리의 마음 문을 언제나 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예수님의 손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 바로 예수님에게 문을 열어 드리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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