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과. 죄의 시작
①죄의 시작은 '하나님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②곧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 죄입니다.
③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과 완전히 반대된 것입니다.
<준비물> A4용지, 펜
①인도자는 A4용지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적게 합니다. 글씨를 크게 작성해서 A4용지가 가득 차게 적습니다.
②대부분의 청소년은 TV와 관련된 것들, 돈, 친구 관계를 적습니다.
③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님'이 없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것이 죄의 시작임을 설명해 줍니다.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 번 노트에 적어보십시오. 죄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 알려면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죄의 시작은 "내가 하나님 없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사탄이 하와를 유혹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으라는 유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허락하셨지만 딱 한 가지만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선악과는 단지 '먹지 말라!'의 의미가 아닙니다. 선악과는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선악을 판단하실 분도 하나님이시고, 창조주도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선악과라는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라고 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너희들이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내가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시작이며, 원죄입니다. 내가 하나님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장 안타까운 제자는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언제나 그분과 함께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룟 유다에게 결정적으로 혼란스러운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생각했던 메시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는 이야기가 자신의 생각과 너무 달랐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깁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없어야 행복하겠다!'라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마음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은 30개에 팔아버립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방에서 이것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합니다(롬 1:21, 26, 28).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라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나님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내가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우리 마음에는 죄가 가득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하나님 두는 것'을 기뻐합니까? 싫어합니까? 로마서 1장 29-32절은 하나님 없는 우리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를 메시지 성경으로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그야말로, 지옥 판이 벌어졌습니다. 악이 들끓고, 욕망의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악독한 중상모략이 판을 쳤습니다. 시기와 무자비한 살인과 언쟁과 속임수로 그들은 이 땅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을 보십시오. 비열한 정신에, 독기에, 일구이언하며, 하나님을 맹렬히 욕하는 자들입니다. 깡패요, 건달이요, 참을 수 없는 떠버리들입니다. 그들은 삶을 파멸로 이끄는 새로운 길로 끓임 없이 만들어 냅니다. 그들은 자기 인생에 방해가 될 때는 부모조차도 저버립니다. 우둔하고, 비열하고, 잔인하고, 냉혹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얼굴에 침을 벹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나쁜 짓을 가장 잘하는 이들에게 상까지 주고 있습니다(메시지 성경)"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셨던 나의 모습을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선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71:6).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창 1: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창 1:28).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하나님이 나를 반드시 원래의 목적과 모습은 위에서 찾아본 성경 말씀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엄마 뱃속에서부터 우리를 기억하셨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기 원하셨으며, 우리가 자신이 행복한 사람임을 경험하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고, 하나님이 없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니?"라고 물으면 많은 학생이 '문상(문화상품권의 줄임말)이라고 대답합니다. 문상을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진짜 원하는 것은 공부였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곳에 취직을 해서 결혼도 하는 등 편안하며 안정되고, 여유 있게 아랫사람들을 거느리며,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지면서 여행 다니며 사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간정히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의 욕심, 안목의 정욕, 이 땅의 자랑거리로 가득 찬 모습이 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지 내가 지었던 '죄의 행동'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나의 소원이 모두 세상에 있고, 모두 육체의 자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를 지으시고, 부르시고, 선택하신 목적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육체의 욕심, 안목의 정욕, 이 땅에 살면서 자랑할 것을 구하는 '나'가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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