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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예림의집 2018. 9. 28. 15:00

어떤 이는..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자만 저는 그런 방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마구잡이로 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요. 그래서 저는 원칙에 입각해서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리저리 애쓰면서 힘을 낭비하는 대신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바로 한 번에 한 가지 죄만을 다루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잘못된 죄를 꾸준히 십자가에 못 박아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죄를 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방법에는 세 가지 한계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군대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죄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은 데 비해 우리 인생은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죄를 한 가지식 다룬다는 것은 그동안 나머지 죄들은 활개 치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한 가지 특정한 죄와 전투를 벌여 봤자 그 근원적 뿌리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을 댐으로 막으면 잠시 후 물은 더 높은 곳에서 다시 흘러넘칠 뿐입니다. 죄의 경로 중 하나를 봉쇄하면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죄 성이 분출되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억눌려온 욕망들은 언젠가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어있기에, 부분적인 회심은 도덕적인 누수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영혼의 상태는 오히려 처음보다 더 나빠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란 '하면 안 되는 것'들을 이루어진 종교가 아닙니다. 신앙은 단지 이 죄를 금지하고 저 죄를 막는 것이 아닙니다. 전지용 칼로 여기저기 잘라내고 베어내는 것만으로는 결코 온전한 성품을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주장하는 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죄를 하나씩 다루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저는 한 번에 하나씩 선한 덕목들을 모방해서 쌓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선행을 모방하는 전략의 맹점은, 자칫 기계적이 되어 버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라도 진짜 그림과 판화로 찍어낸 복사본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생화와 조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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