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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진짜를 알게 되다

예림의집 2018. 6. 20. 22:09

사랑으로 진짜를 알게 되다


①믿음의 역사가 사랑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②기도응답의 역사가 사랑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③하나님에게 복음 받는 원리가 사랑과 연결되어 있디 때문입니다.

④교회가 살마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은 손해를 보거나 바보처럼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는 모든 복과 평안과 응답이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첫재, 믿음의 역사가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용서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용서하기 전에 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태복음 18:21, 22). 우리는 용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어!", "벌써 몇 번째인지 알아요?", "왜 나만 참아야 하나요?"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기 자신도 그 누구에게도 잘못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70번에 7번을 곱하면 490번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것이 70번에 7업을 곱하는 개념이 아니라, 70번에 7에 제곱 만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576,480,100,000,000번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끝없이 용서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용서를 받았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다섯 번도 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인이시라는 분명한 믿음이 생기면 사랑하게 됩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반드시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누가복음 17:1-6).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제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전혀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우리의 믿음을 더해 달라고 예수님에게 구합니다. 예수님이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믿음을 더해 달라고 간구하는 제자들에게 '겨자시 만한 믿음'이 있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순종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기만 해서 산이 옮겨지는 깆거이 일어난다면 그 믿음을 어디에 사용하겠습니까?

내 안에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미워하는 사람이 잇고, 심지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나에게 믿기만 해서 산을 옮기는 능력과 기적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번개를 맞을 겁니다. 내 마음은 전혀 선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셨는가?'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있다면 사랑하게 됩니다.


둘째, 기도 응답의 역사가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7-12).

예수님은 구하면 받드시 얻고 찾으면 반드시 찾으며, 두드리면 반드시 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구하여도 다 얻지 못하고 찾아도 다 찾지 못하며, 두드려도 다 열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우리는 이 말씀을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황금처럼 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슴을 그대로 해석한다면, 만약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슨 대접을 받고자 하려면 먼저 그들을 대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전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도움과 요구에 기꺼이 응한다면, 하나님도 기쁜 마음으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많은 성도가 하나님에게 하는 것과 사람에게 하는 것을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충성하고 열심이지만 사람에게는 소홀히 대할 때가 많습니다. 시험 문제를 풀 대 중요한 것은 문제를 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성적이 오르는 것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도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분명한 뜻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파악해야 믿음이 커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우리가 우리에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고 용서해 주신 줄 믿는 것은 무효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에게 복을 받는 원리가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에게 복을 받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복을 빌어 주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야곱은 이것 때문에 에서와 다투었습니다. 하나님은 복 주시기 전에 먼저 기도로 요청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누가 복을 빌어 주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수기 6:23-27). 아론과 그의 아들들(제사장)이 복을 빌어 줍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0:42). 대접 받은 작은 자들이 복을 빌어 줍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12). 보모가 복을 빌어줍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누가복음 14:14). 갚을 것이 없는 이가 복을 빌어 줍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기 42:10). 친구들이 복을 빌어 줍니다.

부산에서 목회할 때, 어느 날 교회 로비가 시끄러워 나가 보았더니 경찰관이 행려자 한 사람을 끌고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욕을 섞어 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교회가 이래도 되냐? 도와 달라고 온 사람을 경찰을 불러 끌어내는 것이 교회냐?" 그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고 교회 사무실에 와서 오랫동안 행패를 부렸습니다.

이렇게밖에는 할수 없었던 교회 관리 집사나 사무원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려자의 외침은 쉽게 제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곳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인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때 한 성경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 내가 헐벗었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결국 이 일로 인하여 행려자 급식소를 시작했습니다. 1998년 여름부터는 200명이 넘게 아침마다 밥을 먹으러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일로 부산제일교회 재정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2004년 중국 코스타 때 한 자매가 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하나님이 외도로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를 용서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너무나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를 찾아가서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자매는 눈물을 글성이며 꼭 그렇게가지 해야 하느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주신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매에게 용서하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은 자매를 힘들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 만나게 될 형제와의 사랑 관계를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면 자매는 사랑하는 형제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줄 것입니다." 그 자매는 통곡하며 울었고 아버지를 용서하라는 하나님 말씀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축복과 능력, 약속이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사랑하라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되셨으니 모든 짐과 문제는 예수님에게 다 맡기고, 염려할 것 없이 우리는 오직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 중의 행복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한일서 4:12). 사도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합니다. 최근 친하지 않았던 교회 사람들과 친해진 사람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친한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차이가 있습니까? 


넷째, 교회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단지 친한 관계를 넘어선 사랑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관계입니다. 교회 사람들 중에 내가 슬플때 내 속 이야기를 1시간 동안 들어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누구입니까? 교회 사람들 중 나에게 1시간 동안 그 사람의 속 이야기를 털어 놓을 사람은 몇 명이나 있습니까? 누구입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의 관계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경험 되어야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 사람과 한 마디도 해 보지 않았으면서 그 사람의 겉모습, 행동들만 가지고 '그 사람은 싫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지막 때의 '참 교회의 증거'는 교회 안에 '참 사랑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속일 수 없습니다. 수많은 박해의 때마다 교회는 승리했습니다. 로마가 박해할 때 성도들이 지하 무덤에 살면서도 승리하였고, 지금도 북한에서는 엄청난 박해 속에서 오히려 교회의 성도들이 많아지고 승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교인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정말 가슴 설레는 말입니다. 이것은 못배워도 가능합니다. 인물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또 가난해도 가능합니다.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부엌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엄마를 향해 여섯 살짜리 꼬마가 물었습니다. "엄마! 무슨 음식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요?" "응, 옆집 아줌마 드리려고. 얼마 전에 옆집 아기가 죽었잖아. 그래서 지금 아줌마 마음에 난 상처가 많이 아파서 음식을 할 수 없단다." 잠시 후, 그 아이는 자기 방에 들어갔다 나와서 옆집으로 갔습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자 옆집 아줌마가 문을 열었고 아이는 아줌마를 올려다 보며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내밀었습니다. 아줌마가 받아보니 일회용 반창고였습니다. 

"이게 뭐니?" "전에 제 손가락에 상처났을 때 아줌마가 이걸 붙여 주셨잖아요. 이걸 붙이고 났더니 상처가 금방 나았어요. 엄마가 말슴하셨는데 아줌마 마음에 큰 상처가 생겼대요. 이걸 붙여보세요. 그러면 금방 나을 거예요." 아줌마는 눈물이 치솟는 것을 느끼며 와락 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꼬마의 사랑 덕분에 아기를 잃고 상심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알바니아라는 가난한 나라의 어느 마을에 형편이 아주 어려운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인물도 형편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녀는 어려서부터 이웃에게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녀에게 좋은 일이란, 가난해도 할 수 있고 못배워도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인도 사람들이 많이 어렵다는 뉴스를 듣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인도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 하지만 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인도에 가는 유일한 길은 신부가 되든가 아니면 수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수녀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녀는 인도에 가서 가난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모두가 우습게 여기며 그녀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온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 나라의 지도자들 모두가 그녀를 귀히 여기게 되었고 나중에는 노벨상도 안겨 주었습니다. 그녀는 온 세계의 존경을 받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테레사 수녀입니다. 그녀가 죽자 온 인류가 눈물지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온 인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는 사랑이 있습니까? 교회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구체적인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