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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제일인가?

예림의집 2018. 6. 18. 22:03

사랑이 제일인가?


①사랑은 복음의 핵심 가치입니다.

②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입니다.

③사랑이 제일 중심이 되어서, '오늘 어떻게 더 사랑할까?'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1977년 가을, 전남 영광군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준비물을 검사하다가 반장이 아무런 준비물도 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 아이는 눈물이 글썽한 채 선생님을 쳐다보았는데, 선생님은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여기고 뺨을 때렸습니다. 그다음 시간에도, 그다음 시간에도 이 아이는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이 아이를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17년 후, 이 소년은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최후 진술에 그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재판장님, 저는 그때부터 세상의 모든 사람이 미웠습니다. 모두 죽이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때 크레파스는커녕 밥을 굶으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항상 때리기만 했습니다." 이 사람이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연쇄 살인을 했던 지존파 사건의 주인공 김기환 씨입니다.

위의 글을 읽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였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말쟁이'라고 부릅니다. 교회 다니면서 말만하지, 정작 사랑하지 않는 성도들에게 실망하였기 때문입니다.

패드린 존스톤 선교사가 집필한 <세계기도정보>라는 책자를 가지고 매일 한 나라씩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 '아이티'라는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티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습니다. 그때, 나라 전체를 사탄에게 봉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땅을 빼앗고 지배하던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늘 예기했고 자기네들은 죽으면 천국 간다고 했으며, 무덤에 십자가를 세우고 어느 마을에 들어가더라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랬던 그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악독하게 짐승처럼 굴었는지, 그들이 너무 미워서 그들이 그렇게 믿는다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사탕에게 나라를 봉헌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구원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보고 싶어하고, 또 반드시 드러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랑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고 말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항상 있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사랑입니다. 세상은 바로 그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 다니고 입만 열면 사랑을 외치는 우리에게도 실제로 사랑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사랑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가요?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우리 안에 사랑이 있는지를 분별하는 기준은 우리가 사랑을 제일로 여기고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박보영 목사님의 설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습니다. 박보영 목사님의 할아버지는 감리교에서 존경받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손자가 목회를 결심했다는 것을 듣고서 목사님에게 한 마디를 꼭 들려 주시고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슴해 주셨습니다. "목회라는 것은 말이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아무런 변명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평생 지키면서 목회하려고 순종하였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박보영 목사님과 함께 생활하던 한 신학생이 어느 날 학교에 신발을 신지 않고 양말만 신고 왔습니다. 후에 알고보니 오는 길에 노숙자를 만났는데, 노숙자가 신발이 없어서 벗어주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사랑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 다니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미워하고, 학교에서 왕따를 시키는 학생이 많습니다. 부모님을 용서하지 못하고, 부모님을 저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사람으로 나누어서 싸우기도합니다. 마음에 시기심, 질투심,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놀라지도 않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하면서도 전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심각한 약점이고,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약점을 계속해서 사용합니다. 미움, 다툼, 분열, 질투, 경쟁심, 갈등 등을 겪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립보서 4:2). 사도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이 둘 사이에는 다른 마음이 생길 만큼 다투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도게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요, 빌립보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긴 성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여인은 교회 안에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서로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이 사도 바울에게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큼 큰 어려움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자지면 싸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같은 마음을 품었으면 사랑만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미워하거나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 미워하는 사람과 예수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자기 생각에 옳은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미워하는 것에도 부모님이 '자기 생각에 옳은 것'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친구는 까부는 친구를 싫어합니다. 자기 생각에 까부는 것이 올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너무 조용한 친구를 싫어합니다. 자기 생각에 사람과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기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미움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옳은 생각을 가지고 일을 옳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서 쉽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타락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판단이 너무나 부정확하고 자기중심적인 것을 알면서도 서로를 판단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깨지고 서로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많은 학생이 자신들의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님 마음의 중심까지도 내가 이미 판단을 해 버리고 부모님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나면 싸우기만 합니다.

믿음이 생기면 올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분별의 능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주님의 마음이 없고,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천대받던 세리와 청녀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성경의 내용을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하던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창녀들과 말 한 마디 섞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저주하고 버리셨던 것입니다.

선악을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우리가 할 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어떻게 더 사랑할까? 만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더 사랑을 흘려보낼까?" 입니다. 여러분은 하루 종일 판단하는 사람입니까?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본의 성자라고 불리는 가가와 도요히꼬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일본의 빈민을 돌보시는 분이었습니다. 빈민을 돌보고, 그들에게 따뜻한 목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이분이 성자처럼 된 것에는 그분의 사역을 어느 한 기자가 보고, 그분의 사역과 삶이 뉴스를 통해서 일본 전역에 나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장면은 너무나 당황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이 가가와 도요히고 목사님이 노숙인들의 항문에 자신의 혀를 대고 관장을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혀의 침과 온기로 항문을 열어서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 그들을 관장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기자가 애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노숙인들은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노숙인은 심각한 변비에 걸려 있고 그것을 관장해서 꺼내려고 할때, 손가락을 집어 넣어서 하면 항문이 다 갈라지고, 피가 터져서 관장을 한 이후에 더 큰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혀를 항문에 넣어서 관장을 한다고 합니다.

이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님은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정치인의 첩이던 어머니에서 태어나 다섯 살도 되지 못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여의 고 불행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한 선교사님에 의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듣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하지만 신학교에서 폐결핵이 걸립니다. 그 때는 이 폐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또한 전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폐결핵을 가진 사람은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엇고, 당연히 목사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에 처한 목사님은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큰 절망에 허덕일 때, 나가노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나가노 목사님은 교회 개척의 꿈을 안고 인근 100킬로미터 안에 교회가 없는 곳에서 개척을 하겟다고 하고, 북쪽 가나사와 지역에 천막 교회를 세워 전도하던 목사님이었습니다. 5년 동안 단 한명의 교인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요일 첫 번째 교인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님입니다. 예배를 드린 후 나가노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식사 도중 그만 피를 토하며 쓰러졌습니다. 폐결핵은 심각한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러나, 5년만에 처음으로 온 교인을 이 나가노 목사님은 내쫓거나,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손수 상을 닦고,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님에게 묻어 있던 모든 피까지 닦으시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같이 식자를 하셨습니다.

폐결핵에 걸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부모도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던 한 청년, 어느 한 곳 의지할 데 없던 이 가가와 도요히꼬라는 청년은 자살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리러 그곳에 갔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신이 전염될 것을 알고도 자신이 폐결핵에 걸려 죽을 것을 알고도 그 피를 손수 닦아 내는 나가노 목사님을 통해 놀라운 사랑을 경험한 것입니다.

가가외 도요히꼬 목사님은 나가노 목사님의 사랑으로 폐병이 나아 다시 신학교에 복학하여 졸업한 뒤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베와 도쿄에서 빈민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가노 목사님에게 받은 사랑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하루는 신문 기자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까지 이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까?"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배운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제 선생님은 폐결핵에 걸려 죽을 위험가지 감수하고 제가 토한 핏덩이까지 닦아 주셨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하신 것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