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rationalism)와 반이성주의(irrationalism)
기독교 진리를 변증함에 있어서 불신자들에게 기독교 진리의 합리성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기독교 진리의 합리성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 입장에서 합리성을 증명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기독교를 배격하는 불신자들 입장에서는 그 합리성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불신자들의 사고 체계나 세계관이 모순을 먼저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기독교 진리의 합리성을 증명해 보이는 것보다 불신자들의 세계관 혹은 사고 체계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기독교 진리를 변증하는 데 있어서 더 효과적일 것이다. 더 이상 발뺌할 수 없도록 증명해 보일 때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분명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또한 쉽게 기독교를 향해서 불합리하다거나 미신적이라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불신자의 사고 체계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찾을 수 있을까? 반틸은 아주 강력하고 효과적이고 또한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불신자의 사고 체계에 합리성과 비합리성, 혹은 이성주의와 반-이성주의가 동시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 사고 체계 안에 이성주의와 반이성주의가 동시에 들어 있다는 것은 그 사고 체계 자체가 모순임을 의미한다.
이성주의는 ‘앎’을 의미하고 반이성주의는 ‘모름’을 의미한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한 가지 사실에 대해 ‘안다’, ‘모른다’를 동시에 주장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난 2 더하기 2를 안다. 그리고 모른다”라고 동시에 말할 수 없다. 합리성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비합리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줘야 하고 비합리성을 유지하려는 사람은 자신에게 합리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심자들의 사고 체계에 합리성과 비합리성 혹은 이성주의와 반이성주의가 동시에 들어 있음을 증명한다면 불신자들은 자신의 자가당착적 모습에 무척 당황하게 될 것이다.
반틸은 다음과 같이 타락한 자의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설명한다. “불신자의 반이성주의는 실재는 우연에 의해 다스려지거나 우연에 의해 표현된다는 형이상학적 가정에 근거하며, 그의 이상주의는 주어진 실재가 전적으로 자신의 사고와 궁극적으로 일치하는 법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비-일관적이고 자가당착적인 모습이 바로 믿지 않는 자들의 사고 체계라고 반틸은 주장한다.
인간은 타락 이후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그의 계시를 궁극적 ‘준거점’으로 삼지 않는 대신 자신을 섬기고 자신의 자율성을 궁극적 준거점으로 삼아 왔다. 즉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이성주의를 추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들은 자신이 한계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반이성주의에 의존한다.
자신 외에 어떤 외부적 권위에 순복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자신의 자율성을 궁극적 기준으로 내세우는 이성주의의 모습과 자신의 자율성이 왜 궁극적 기준이 되는지 그 근거는 모르고 그냥 개인적 신념만 갖는 반이성적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어떤 때는 우연성에 의존하여 절대성을 거부하고 어떤 때는 결정론적인 자신의 판단을 의존한다. 우연성을 의존하는 것은 반이성주의며 결정론에 의존하는 것은 이성주의다.
결정론에 따르면 신도 필연적으로 인간과 같은 운명이라고 한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같은 운명이다. 이것은 이성적 세계관이다. 알려진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신을 인간과 같은 범주에 넣는 이유는 인간의 자유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즉 어떤 권위나 규범에 매이지 않는 반이성적 세계를 원하는 것이다.
인간과 신 사이에 연속성을 만드는 것은 다 같이 알자는 식으로 신을 인간과 같은 수준에 놓으므로 인간을 신과 같은 초능력자로 만드는 것이며 인간과 신 사이에 불연속성을 만드는 것은 신도 모르고 인간도 모르고 모든 것을 우연 속에 가둬 둠으로 신을 무능력자로 만드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이러한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주장한다. 자기 편리한대로 어떤 때는 하나님을 자기들과 동등하게 취급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을 우연 속에 가둔다.
어떤 쪽이든 인간의 자율성을 절대화하는 수순으로 나아간다. 자기들은 절대적인 자유를 원하면서 동시에 실재를 해석하기 위해 자기들만의 이성적 체계와 질서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의 존재도 바르게 해석되려면 그 체계에 부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체계를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절대적 자유를 앗아갈 수 있는 하나님을 부정한다. 이렇게 편리한대로 이성주의와 반이성주의를 오가는 모습이 솔직하지 못하고 자가당착적인 불신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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