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з교회 사역...♡з/교회학교 멘토링

결론

예림의집 2018. 4. 10. 11:09



필자는 이제 결론적으로 교리교육의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딤후3:15). 사람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함으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왜 성경 외에 교리를 배워야 할까요? 성경에 뭔가 부족한 것이라도 있단 말인가요? 오직 성경으로 충족한데 다른 어떤 것을 덧붙이려고 하는 것은 복음에 심각한 손상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요? 개혁자들이 주장했던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는 어디에 갔을까요? 성경 이외에 또 다른 어떤 권위가 세워지는 것이 아닌가요? 왜 우리는 교리를 배워야 합니까? 성경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성경을 열심히 읽을 시간도 부족한데, 교리를 배울 이유가 무엇인가요? 필자는 몇 가지의 대답으로 본 논문을 끝맺으려 합니다. 

    

첫째, 성경은 생각보다 깁니다. 전체를 다 읽으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성경의 내용 핵심을 배울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합니다. 또 어린 자녀들에게 성경을 요약해서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교리가 필요합니다. 

    

둘째, 성경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원어성경은 아무나 읽을 수 없습니다. 공부한 일부 사람만 원문을 읽고 본래 뜻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에겐 좋은 번역 성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번역이 잘 되어 있는 성경도 이해하기 쉽지 않고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신다고 믿는데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용어입니다.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이단들은 우리가 성경에 없는 것을 믿는다고 공격합니다. 예수님은 신인가, 아니면 인간인가요? 아니면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인가요?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 것인가요? 아니면 행위도 있어야 하는가요? 왜 유아세례를 드리는 교회가 있고 그렇지 않는 교회가 있을까요? 이런 것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이 정리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교회와 성도는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 말할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리인 것입니다. 

    

셋째,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에 처음 들어온 신입 교인에게 복음을 요약해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성경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성경의 핵심을 가르치기 위해 교리가 필요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의 어린 자녀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개혁가들은 로마교회를 염두에 두고 바른 교리를 정리했습니다. 요리문답 형식으로 만든 것도 있고 교리를 정리한 신앙고백 형태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교리가 더 절실합니다. 

    

넷째, 앞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우리는 이단들에 도전에 대하여 변론하고 기독교 진리의 탁월성을 증거해야 합니다.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다른 신앙을 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고 양을 탈을 쓴 늑대처럼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지금도 이런 무리들은 교회 안과 밖에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단들의 주장에 반박하고 변론하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정확하게 진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 했던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 20:29-30). 그로 인해 생겨난 신앙고백 혹은 신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신앙고백들은 성경의 내용을 탁월하게 요약하고 진술하고 있습다. 교회가 이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르쳐야만 합니다. 

    

다섯째, 우리는 교회의 하나 됨을 지켜가기 위해 교리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보편적입니다. 시대와 장소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를 이룹니다. 성경에 대해 다른 해석, 곧 다른 믿음을 가지는 이단들이 많은 시대에 교회가 보편교회의 입장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편 교회의 하나 됨을 유지하기 위해 시대와 장소를 뛰어 넘는 신앙고백이나 신조나 교리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리가 성경의 충족성에 배치된다는 생각은 교리를 오해한 까닭입니다. 교리가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을 세웁니다. 교리가 성경의 진리를 조직화 하고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는 것을 포함하는 범위에서 교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교리가 신앙 양심을 속박한다는 반론도 없지 않습니다.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고 교리적 요소를 발견하고 정리할 수 있기 전에 교리는 너무 빨리 정답을 줍니다. 또 개인 스스로 연구한 성경과 교리의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신앙양심에 속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개인적으로 교리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신중한 연구와 절차와 질서를 따라 교리의 내용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리가 성도의 신앙 양심을 구속하거나 속박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교리가 신학연구의 길을 막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 하기도 합니다. 대단히 자신 만만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꽤 오만한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해 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는 자들은 모두 이단으로 흘렀습니다. 기존 있는 교리의 일부 내용이 잘못되었다면 얼마든지 신학적 연구를 통해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31장에 위정자가 교회의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것은 후에 수정되었습니다. 같은 내용의 벨직 신앙고백 36장도 마찬가지로 변경 수정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리는 삶과는 무관한 내용들이고 지루하고 무의미한 사색이거나, 살아 있는 믿음과 경이로운 신앙적 체험과는 상관없는 메마르고 딱딱한 공식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상적이거나 활동적인 사람들은 교리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리는 지도나 매뉴얼과 같이 실제 삶과는 다를 수 있고 정보가 극히 제한적일 수 있지만,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리나 신앙고백을 통해 신앙 선배들의 귀중한 영적 유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리와 삶의 간극을 메워 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인 것입니다.

'ε♡з교회 사역...♡з > 교회학교 멘토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맺는 글  (0) 2018.04.17
일찍 일어나야 할 사명  (0) 2018.04.16
복을 부르는 순종  (0) 2018.04.09
걱정 대신 기도를   (0) 2018.04.06
교안 작성  (0) 2018.04.03